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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동진 칼럼 : CEO만 보세요] 세상에서 제일 비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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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세상에서 제일 비싼 게 뭐야?”

‘갑’ 위치에 있는 지인과의 대화가 부담스런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이런 식으로 불쑥 튀어나오는 엉뚱한 질문이다. 논리적인 답을 원하는 것도 아니요, 난센스 퀴즈도 아니다.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임은 물론 작은 인정이라도 받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닦아온 독서와 글 쓰기 그리고 온갖 지식적인 경험을 되짚어야 한다. 머리를 있는 대로 굴려서 나름 답을 찾는다. 하지만 그 답은 항상 빗나가기만 했다. 답은 갑의 마음 속에 정해 놓은 그 단어뿐이다.

여기에서 막혀버리면 그의 지혜를 얻을 수 없다. 때문에 최대한 신중하게 생각해야 하지만 신중하게 생각한들 그의 생각에 범접할 수 없다. 사실 제대로 된 질문이라면 어떤 조건이 부여되어야 하지만 그런 류의 테스트도 아니다. 처음 몇 번의 대화에서 이런 순간에는 침만 꼴딱꼴딱 삼키고, 눈알만 이리저리 굴릴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속으로는 ‘그냥 얘기해 주시지, 꼭 이런 시험에 들게 하시나?’하는 원망도 해 봤지만 결정권은 내게 없었다.

비슷한 사례가 있다. 옛날에 어느 왕이 경제학자들에게 경제학을 짧고 굵게 요약해 오라고 명령했다. 학자들은 심오한 내용들을 집계하여 권당 600여 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책을 여든 하고도 일곱 권으로 묶어서 수레에 싣고 와서 집대성한 결과물을 왕에게 바쳤다. 분노한 왕이 경제학자 절반 정도를 처형해 버렸다. 그러고선 남은 학자들에게 다시 짧은 경제학 지침서 만들기를 명했다. 경제학자들은 왕의 뜻에 따라 수 차에 걸쳐 줄이고 또 줄여나갔지만 왕은 맘에 들어 하지 않았다. 결국 지혜로운 한 명의 경제학자만이 살아 남아서 왕 앞에서 최후의 진술을 하게 됐다. “폐하, 세상 모든 경제학자들의 책이 담고 있는 지혜를 단 여덟 단어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1938년 엘파소 헤럴드포스트 (The El Paso Herald-Post)에 실린 ‘경제학을 여덟 단어로 표현하면 (Economics in Eight Words)’이라는 글의 내용이다.

 

숟가락 하나 더 올린다는 마음만 들고 와?!

지인이 물었던 것 중에서 기억에 남는 또 다른 질문이 있다. “여행은 언제 가는 거야?” 이럴 땐 그냥 ‘헉!’ 할 수 밖에 없다. 지금까지 그렇게 바라왔건만 제대로 된 가족여행 한번 못 가본 내게 물어본 거다. 내가 여행을 못 가는 이유는 돈도 시간도 상황도 허락하지 못했기 때문이라, “돈 있고 시간 있을 때….”라고 답했다가 혼구녕만 나고 말았다. 그런데 그런 경륜 있는 지인의 답을 듣고 보면 ‘역시’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여행은 가슴이 떨릴 때 가야 하지, 다리가 떨리면 못 가!” 이 얼마나 경륜이 묻어나는 지혜의 답인가 하는 마음에 부담은 되지만 하나 하나 배우고 싶은 맘 가득하다.

전 직장은 회사 업종도 업종이었고, 규모도 제법 컸던 데다가 최고경영자가 예전에 홍보실장을 했던 적이 있어서 언론에 대해 무척이나 신경을 많이 썼다. 덕분에 그의 출근 시간에 맞춘 언론브리핑부터 각종 수시보고를 위해 많을 때는 하루에 열 번도 넘게 사장실을 들락거렸다. 언론인과의 식사를 주기적으로 잡아야 했고, 언론사에서 진행하는 주요 행사에는 빼놓지 않고 얼굴을 내밀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다. 함께 차를 타고 이동해야 할 때는 내밀한 얘기를 주고 받기도 했지만, 행여나 대화가 끊기지 않을까 하여 자잘한 보고나 얘깃거리를 미리 준비하기도 했다.

조직 내부에서도 여타의 다른 팀장들보다 대우가 좀 달랐다. 특히, 조직 내에 전 임원들을 조를 나눠 언론사들과 매칭시켜서 전담하게 했다. 그러다 보니 어떤 임원들은 그 바쁜 와중에도 내가 잡는 언론과의 스케줄을 목 빠지게 기다리기도 했다. 내가 바빠서 그런 약속들을 많이는 잡지 못했는데, 어쩌다 자기 순번이 돌아와서 언론과의 식사 자리에 불려 나오면 회사를 위해 엄청난 일을 하는 것처럼 나름 뿌듯해 했다.

말 그대로 회사의 전 임원들이 언론에 대해서는 특별한 관심과 관계를 유지하도록 했지만, 나는 사실 그게 달갑지만은 않았다. 소위 최고 경영자가 관심을 가지고 있고, 매체와 특별한 관계를 가져가는 측면에서는 소득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득 보다는 실이 많았다.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일반 임원들은 ‘무려 임원씩이나 되는 자기가 고급 한정식 집에서 비싼 점심을 대접하고 준비한 선물을 주는 것 정도로도 언론사가 감지덕지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으로 나왔기 때문이었다. 맛있고 즐거운 점심 식사 자리에서 즐거운 마음만 가지고 와서 유쾌한 시간을 보내다가 잘 헤어지면 끝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밥 잘 먹으면 그만이라는 마음만 들고 올 뿐이었다.

그야말로 언론과의 식자 자리에 숟가락만 하나 가볍게 올린다는 마음으로 참석하는 임원들을 탓할 수만은 없었지만, 식사하는 것으로 끝나는 일이 결코 아니었다. 적어도 어떤 조직에서 상호 관계를 위해 임원이 나왔다는 것은 밥 한번으로 끝내자는 것이 아니고 그걸 시작으로 앞으로 더 잘 해보자는 의미다. 때문에 식사 자리에 참석한 임원들이야 ‘밥 잘 먹었어!’라며 이 쑤시고 나가면 그만이지만, 그 다음부터 시달리는 것은 내 몫이었다. 언론사들은 행사도 많고, 이슈도 많은데다가 광고도 해야 하고, 심지어 책을 발행하기도 한다.

커뮤니케이션이 아무리 발로 하는 것이지만 두 발로만 할 수 있는 것은 사실 없다. 움직이면 돈이 든다. 때문에 팀 예산이 다른 팀들에 비해 월등히 많다. 어떤 때는 꽃 값만해도 백만원 단위가 훌쩍 넘는다. 행사에 화환을 보내고, 경조사에도 화환이나 조화는 기본이다. 거기에 수시로 단행되는 인사이동 등등을 챙기다 보면 꽃 값 기백만원은 금방이다. 뭐 그리 많을까 싶지만, 행사철이 되면 오전에 행사 두 건 오후에 두 건 이른 저녁에 조문 그리고 저녁약속까지 이런 상황이 일상이었다. 하루에 화환만 5개를 보냈고 조의금에 저녁 값까지, 계산하자면 속만 아프다. 기본 중의 기본이라 이런 걸로 뭘 했다고 생색낸 적은 전무하다. 식사를 포함해서 그런 거 챙기는 것이 겨우 관계를 열어가는 시작에 불과하다. 김영란법이 생기면서 달라지긴 했다.

아무리 집에서 뭘 해 먹더라도 좀 갖춰서 먹을라치면 밖에서 먹는 것보다 훨씬 비싸게 먹힌다. 그래서 집에서 고생해서 장만하느니 나가서 먹든지 아니면 배달이 대세다. 하지만 우리 부모님 세대는 자식들이 외식이라도 조를라치면 집에서 먹자고 달래곤 하셨다. 기껏 돼지고기 한 근 사다가 구워 먹고 남은 걸로 찌개도 해결했다. 거의 들어가는 돈이 없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사업 깨나 하는 사람들도 비슷한 생각을 한다. 비용은 겁나지만 잘 나가는 회사에서 하는 것들은 부럽다. 때문에 애먼 직원들만 들들 볶는다. 우리도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하라는 식인데,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회사는 글로벌 또는 국내 시장에서 손가락에 꼽히는 회사들이 대부분이다. 사실은 그런 회사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머리를 짜내고 예산과 노력과 시간을 들여서 이뤄낸 것인데, 인풋은 빼버리고 그들이 이룩한 결과물만 탐낼 뿐이다.

 

프로는 프로다워야 프로다

또 다른 전 직장 얘긴데, 회사가 재무약정을 체결하고 힘든 길을 가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해야 할 것들은 해야 했다. 공장을 신축해서 오픈도 해야 했고, 사기가 떨어진 직원들을 위해 단합도 하고 대외적으로도 회사가 살아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뭔가를 계속할 수 밖에 없었다. 당연했지만 비용이 문제였다. 서류로 만드는 것이라면 몰라도 거창한 뭔가를 대외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비용이 수반될 수 밖에 없다. 그 중에서 돈 많이 잡아 먹는 것이 동영상이다.

“요즘은 영화도 핸드폰으로 찍는다는데, 핸드폰으로 홍보동영상을 제작해 봐.”

어느 날 최고경영진이 회의석상에서 뚱딴지 같은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십여 년 전쯤 얘긴데, 해외에서 스마트폰으로 찍은 영화를 상영하기도 했고, 박찬욱 감독도 당시에 영화와 광고를 스마트폰으로 찍기에 도전하기도 했다. 그런 얘기를 뉴스로 접한 경영진이 ‘그러면 우리도 스마트폰으로 홍보영상을 찍으면 돈도 들지 않고 좋겠다’는 일념에, 사람들 모아놓은 회의시간에 불쑥 말을 꺼낸 것이었다. 직원들이 시나리오 쓰고, 직원들이 연기하고, 직원들이 폰으로 찍어서, 편집해 올리면 일석사조 아니겠냐는 것이었다. 수천만원 들여야 만드는 홍보영상을 공짜로 만들 수 있는 대단한 아이디어라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속으론 ‘아이고 두야’하는 심정이었지만, 차마 그 자리에서 찬물을 끼얹을 수는 없었다.

십여 년 전 스마트폰 화질은 지금보다 훨씬 떨어졌다. 화질도 화질이지만, 글로벌 시장에 내놓는 것이라면 작은 것 하나라도 완벽해야 하고, 회사가 프로다운 모습으로 보여야 소비자든 고객이든 인정하게 된다. 그런데 저질 화질에 얼기설기 만든 영상이리니, 내가 온몸으로 거부할 수 밖에 없었다. 대신 최소 비용으로 추가 제작을 했다. 못내 아쉬웠던지, 임직원 대상 행사에서 다른 팀에서 폰으로 만든 동영상을 띄웠다. 화면도 고르지도 못했고, 오디오도 불량이었다. 하지만 돈 들지 않았다며, “괜찮네!”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 영상 내내 내 속은 끓었고, 엄지척을 보며 가슴이 무너졌다. 뒤에 들으니, 그 팀원들 전부가 그 영상 하나 만들려고 몇 주씩 매달렸다고 했다.

몇 번 들었기에, 이제는 지인과의 술자리에서 뚱딴지 같은 질문에도 제대로 딱딱 대답한다. “세상에서 제일 비싼 것은 바로 공짜입니다.” 그러면 “그럼 그렇지!”라는 리액션으로 돌아온다. 제대로 배운 것을 확인했다는 반증이다. 사실 지인이 나에게 가르쳐 주려는 것은 이 세상 경제의 가장 기본 원리였다. 마지막까지 살아 남았던 경제학자가 왕에게 알려준 여덟 단어는 ‘There is no such thing as a free lunch.’다. 집밥 보다 외식이 더 낫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어디서 훔쳐오지 않는 이상 집에서도 그만큼 먹으려면 돈이 든다는 얘기다. ‘술 마시는 손님에게 무료 식사 제공’이라는 팻말이 붙어있으면, 그 말 처음부터 읽고 생각이라는 것을 좀 해보자. 밥이 공짜라는 얘기가 아니라 술이 비싸다는 얘기라는 것을 삼척동자도 알만하지 않나?

구동진 칼럼니스트·홍보인 expert@econovill.com

기사승인 2020.06.02  11: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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