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이 닫혀 있는 런던 시가지 상점들.    출처= Shutter Stock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전 세계 국가들이 코로나로 인한 대격변의 불황에서 벗어나려고 애쓰고 있는 가운데 특히 EU를 탈퇴한 영국이 혼자 힘으로 고군 분투하고 있다고 CNN이 최근 보도했다.

영국은 지금 코로나 19로 인한 경제적 재앙과 동시에 보건 위기에 처해 있다. 영국은행은 영국이 300년 만에 최악의 경제 붕괴로 치닫고 있다고 전망했다. 게다가 영국은 코로나 19 사망자가 세계에서 미국 다음이고 유럽에서 가장 많다.

영국은 자국의 최대 수출시장인 유럽연합(EU)과 브렉시트 이후 무역협정을 연말까지 체결하게 되어 있다(이것은 영국 스스로 정한 마감시한이다). 영국은 그 마감 시한을 향해 질주하고 있지만 코로나로 인한 경제적 타격은 예상을 뛰어넘고 있고 협상은 잘 진행되지 않고 있다.

베렌버그은행의 칼룸 피커링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선진국 전체가 불황에 빠져 있다"며 "게다가 영국은 하반기에 영국과 유럽연합(EU) 협상의 추가 문제를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역사적 경기침체

브렉시트가 아니더러도 영국 경제는 심각한 곤경에 처해 있다.

영국은행은 이달 초, 올해 영국 경제가 14% 위축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는 1706년 15% 감소 이후 가장 큰 연간 위축이다. 6월 말로 끝나는 2분기 GDP는 25%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영국 정부가 최근 며칠 동안 발표한 데이터는 더 참혹하다. 지난달 실업급여 청구 건수는 210만건으로 69%나 급증했다. 4월 물가상승률은 0.8%로 3개월 연속 하락세를 보여 디플레이션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식당과 비필수 상점들은 두 달째 문을 닫고 있고, 경제학자들은 상점들이 다시 문을 연다 해도 회복될 것이라고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영국 정부가 지난 주 사상 첫 마이너스 수익률 채권을 발행하면서 시장의 암울한 분위기가 반영됐다. 마이너스 금리 국채 발행은 투자자들이 채권을 만기까지 보유하면 처음에 산 값보다 더 적은 돈을 돌려받게 된다는 의미다. 정부가 사실상 돈을 빌리면서 이자를 지불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돈을 받고 돈을 빌린다는 것이다. 응찰률은 2.15배로 투자자들의 불안 심리가 그만큼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국 국채는 미국, 일본, 독일 국채와 함께 안전자산으로 여겨지고 있다. 국채 수요 증가는 투자자들이 경제성장이 계속 침체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는 신호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영국 이코노미스트 로버트 우드는 "시장이 경제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국 파운드화는 연초에 비해 8% 이상 하락해 1.22달러 미만으로 떨어졌으며 유로화 대비도 5% 이상 하락했다. 미국의 S&P 500 지수는 약 9% 하락한 반면, 영국의 FTSE 100 지수는 21% 하락했고, 중견기업 그룹인 FTSE 250 지수는 26% 이상 하락했다.

경제적 피해를 막기 위해 영국 정부는 지난 4월 621억 파운드(95조원)를 빌렸는데 이는 1993년 이후 최고 수준이다. 정부는 2021년 3월까지 세계 금융위기 때의 거의 두 배인 2984억 파운드(450조원)를 빌려야 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앤드루 베일리 영국은행 총재는 이번 주 현재 0.1%인 공식 금리가 영국 역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로 떨어질 수 있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그의 발언으로 시장은 영국은행이 2021년에 마이너스 금리를 선택할 수 있다는 추측을 하고 있다.

▲ 영국 자동차 판매는 4월 97% 떨어지면서 1946년 이후 최악의 달을 기록했다.     출처= News Break

멈추지 않는 브렉시트 시계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지난 1월 유럽연합(EU)을 공식 탈퇴하면서 2020년 말까지 영국과 유럽연합(EU)의 새로운 관계 조건을 확정 짓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영국이 마주하게 될 위험은 더 커졌다.

만일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영국 기업들은 대폭 인상된 새로운 관세를 적용 받아야 하고 공급망 위협으로 최악의 순간에 그들의 제품과 서비스를 더 비싸게 만들 수도 있다. 영국은 내년 6월 30일까지 기한 연장을 요청할 수 있지만 존슨 정부는 여러 차례 이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해 왔다.

그러나 회담은 잘 진행되지 않고 있다. 미셸 바르니에 EU 브렉시트 협상 대표는 지난주 “영국과 협상 타결이 낙관적이지 않다"면서 “EU는 올해가 끝나기 전에 새로운 교역조건이 마련되도록 준비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밝혔다.

기한 내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이미 코로나로 큰 타격을 입은 영국 산업은 더 큰 타격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국제정치경제센터(European Centre for International Policy Economy)의 영국 무역정책 프로젝트 책임자인 데이비드 헤닉은 26일,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유럽연합으로 수출되는 자동차에 당장 10%의 관세가 부과될 것"이라며 “이는 최소 150억 파운드(23조원)의 수출이 위태로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베렌버그은행의 피커링 이코노미스트는 “브렉시트 협상 시한이 코로나에서 벗어나 회복하려는 하반기 영국 경제에 큰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는 “영국 GDP의 약 70%를 차지하는 가계 지출이 영국 경제 회복의 궤도를 결정할 것”이라면서 “봉쇄가 끝나도, 직업에 대한 불안감이나 코로나의 제2 확산에 대한 우려로 영국인들은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릴 것이기 때문에 정부와 중앙은행 구제 노력도 한정적 효과에 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거기에 브렉시트와 관련된 불확실성은 저축을 더욱 부추길 것이다.

설사 영국이 유럽연합과 새로운 무역협정을 체결한다고 해도 과거만큼 서로 우호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영국은 미국 등 다른 교역 상대국과도 별도의 무역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영국 정부는 이번 주 발표한 제안서 초안에서 “영국이 EU 단일시장의 일부가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점을 재확인하고, EU가 캐나다나 일본과 맺고 있는 협정을 기준으로 EU와의 협상 추진을 모색하고 있다.

BoA의 우드 이코노미스트는 "영국이 자국 수출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EU와의 교역 조건을 악화시키는 것은 경제적 자살 행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이 영국이 이번 위기에서 회복되더라도 V가 아닌 매우 긴 U 모양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는 이유입니다."

리오 버라드커 아일랜드 총리는 26일 “브렉시트가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브렉시트의 고통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제 전반전이 지났을 뿐입니다."

英도 조세피난처?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유럽에서 벌어진 법인세 논쟁에도 영국의 브렉시트가 도마 위에 올랐다. EU 행정부인 집행위원회는 지난달 29일 “EU가 정한 ‘조세피난처 블랙리스트’(조세 비협조국)에 소재한 기업을 대상으로 구제금융을 제공하지 않을 수 있다”고 밝혔는데, 이는 브렉시트 이후 법인세를 낮춰 투자를 유치하려는 영국을 겨냥한 것이다. 일부 EU 회원국들이 법인세 실효세율이 낮은 영국 등도 조세피난처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EU가 지정한 조세피난처는 미국령 사모아·괌·버진아일랜드, 영국령 케이맨제도, 피지, 사모아, 오만, 트리니다드토바고, 바누아투, 팔라우, 파나마, 세이셸 등 12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