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미국과 중국의 충돌이 격렬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대만을 둘러싼 국제정치의 흐름이 급변하며 두 슈퍼파워의 충돌을 이해할 수 있는 키 포인트가 대만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한국이 지금과 같은 불확실성의 시대를 유연하게 대처하려면 현재 대만을 둘러싼 벌어지는 다양한 논란을 이해해야 한다는 분석도 있다.

충돌의 연속
미국과 중국은 올해 초 극적인 무역전쟁 휴전에 돌입했으나 현재 코로나19 책임론을 두고 정면충돌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의 기술굴기를 상징하는 화웨이에 대한 강도높은 압박을 이어가는 한편 유럽 등 서방국들과 함께 중국을 정조준한 상태다. 최근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중국을 향해 "시진핑 주석과는 지금 대화하고 싶지 않다" "끔찍한 독재정권"이라는 비판까지 퍼부었다.

미 백악관이 21일 ‘대중 전략 보고서’를 전격 공개한 것도 시선이 집중된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백악관은 홈페이지에 공개한 16페이지 상당의 보고서를 통해 “중국의 근본적인 경제 개혁 및 정치적 개방에 대한 기대는 실패로 끝났다”고 선언하며 “중국과 경쟁적 접근(competitive approach)에 나서야 한다”고 적시했다.

이에 맞서는 중국은 양회를 통해 막대한 자본을 쏟아붓는 경기부양책을 발표하는 한편 미국이 우려하는 홍콩 국가 보안법 제정 강행에 돌입하고 있다. 또 코로나19 중국 책임론을 적극 반박하기 위해 왕옌이 우한바이러스연구소장이 직접 언론을 통해 "중국 코로나 유출설은 완전한 조작"이라 주장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중국 인민은행은 25일 달러 대비 위안화 고시환율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 2월 27일 이래 최고치인 7.1209위안으로 제시하면서 위안화 평가절하 카드까지 뽑아들었다. 중국이 환율전쟁에 대비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한편 신흥국 통화가치의 연쇄하락 가능성이 높아지며 글로벌 금융시장까지 출렁일 조짐이다.

심상치않은 홍콩
두 슈퍼파워가 직접적인 충돌 가능성을 보여주는 가운데 현재 가장 첨예한 갈등의 무대로 부상하는 곳은 홍콩이다.

중국은 양회 전인대를 통해 홍콩 입법부를 거치지 않고 자체적으로 홍콩 보안법 제정을 강행하고 있으며, 현지에서는 이를 두고 엄청난 반발이 벌어지고 있다. 실제로 홍콩 프리프레스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수 천명에 달하는 홍콩인들이 주요 거점에 몰려와 반중국 시위를 벌이고 있으며 홍콩 보안법 철폐를 주장하고 있다.

미국 등 서방도 우려하고 있다. 뉴욕타임즈는 "중국의 홍콩에 대한 태도는 2014년 러시아의 크린반도 병합을 떠올린다"고 비판했으며 마지막 영국인 홍콩 총독이던 크리스 패튼은 25일 파이낸셜타임스 기고를 통해 "시진핑은 신뢰할 수 없다"면서 "선진 G7 국가들이 자유국가 홍콩을 위해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장에서는 홍콩 사태를 예의주시하며 특히 미국의 행보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해 홍콩 민주화 시위 당시부터 줄기차게 현지 야권 및 민주화 진영을 지원한 미국이 중국의 홍콩 보안법 제정에 반대하는 한편, 홍콩의 특수한 금융국 지위를 박탈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24일 홍콩을 두고 "중국이 보안법으로 홍콩을 장악한다면 홍콩과 중국에 대한 제재가 부과될 것"이라 말했다. 중국이 지금과 같은 강경책을 고수할 경우 1992년 제정된 홍콩정책법에 근거해 주어지던 특혜를 박탈하겠다는 뜻이다.

미국이 홍콩을 아시아 금융허브이자 중요한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아시아 전역에 심각한 나비효과가 불어닥칠 수 있다. 시장의 고민이 깊어지는 이유다.

중국은 그러나 미동도 하지 않고 있다. 인민일보는 홍콩 시위대를 폭도로 규정하는 한편, 홍콩 보안법 제정을 반대하는 미국 및 서방의 목소리에 "내정간섭을 하지 말라"는 일관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를 두고 "중국은 외부의 목소리를 전혀 신경쓰지 않고 있다"고 개탄했다.

대만, 직접적인 충돌의 현장?
미중 슈퍼파워의 충돌이 격화되며 홍콩 국가 보안법 논란이 선명해지고 있다.

중국은 지금까지 양회를 통해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발표하며 아시아 증시를 뒤흔들었으나, 올해는 코로나19로 양회 개막 자체가 두 달이나 늦는 바람에 이미 경기부양책에 대한 기대효과는 시장에 반영됐다는 말이 나온다. 이런 가운데 중국은 양회를 통해 천문학적인 경기부양책을 뒤늦게 발표했지만, 오히려 홍콩 사태만 부각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 대목에서 홍콩을 둘러싼 논란은 몸 풀기에 불과하며, 진짜 충돌은 대만을 무대로 벌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지난 3월 미국의 대만수권법 제정 후 대만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충돌이 가시화되며, 본게임은 역시 대만에서 벌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 자체가 대표적인 반중인사다. 그는 집권 2주기를 맞아 중국에 대항하기 위한 ‘비대칭 전력’ 개발 계획을 밝힌 후 약 2214억원 상당의 미국산 중형 어뢰 구입 의사까지 밝히는 등 중국을 향해 날 선 대응을 보이고 있다. 차이 총통은 지난해 5월 대만을 포위하는 적국 군함을 저지하는 비대칭 전력의 대표주자로 잠수함을 거론한 바 있으며 20일에는 중국의 일국양제 수용을 거부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파장을 일으킨 바 있다.

최근 중국의 군사적 움직임을 분석하면 대만이 '본게임'이라는 것을 더욱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실제로 25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최근 중국 항공모함 전단이 대만이 실효 지배 중인 남중국해 프라타스 군도 인근에서 대규모 군사 훈련을 하기로 결정했다. 대만 입장에서는 중국이 홍콩과의 일국양제를 폐기한 후 대만과의 관계설정을 새롭게 할 것이라는 위기감이 팽배하기 때문에, 중국과의 대결 국면은 피할 수 없다는 말까지 나온다. 그리고 대만의 뒤에는 미국의 지원이 버티고 있는 그림이다.

본 게임을 눈 앞에 둔 대만은 홍콩 사태에도 적극 목소리를 내고 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차이 총통은 24일 페이스북을 통해 "모든 민주 진영의 동지들은 모든 홍콩인과 함께 할 것"이라며 "이 사태의 유일한 해결방안은 중국이 홍콩의 자치 약속을 지켜 홍콩의 자유민주가 확립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적었다.

최근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글로벌 파운드리 업계의 강자 TSMC의 국적이 대만이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미국은 중국의 기술굴기 선봉인 화웨이의 예봉을 꺾으려 TSMC의 미국 공장 건설을 압박했고, 최악의 경우 TSMC는 미국의 압력에 따라 중국과의 거래가 차단될 위기에 처했다. 지금까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벌이던 TSMC의 선택에, 또 대만의 선택에 시선이 집중된다.

"투트랙 전략 가동해야"
미중 슈퍼파워의 격돌이 홍콩을 넘어 대만을 무대로 본게임이 펼쳐질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이는 한국의 향후 행보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물론 대만처럼 노골적으로 반중정서를 보여줄 필요는 없지만 최소한의 투트랙 전략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온다. 우선 경제적으로 대만은 한국처럼 수출지향적, 2차 가공 중심의 경제모델을 가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도 TSMC가 보여주는 줄타기를 참고해 비슷한 전략에 나서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여기에 정치적으로 한국은 대만처럼 하나된 입장을 정하기 어렵지만, 역시 최소한의 대비가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어차피 미국, 중국과 긴밀한 정치 및 경제적 연결고리를 가진 한국은 두 슈퍼파워의 격돌에 따른 유탄을 피할 수 없다"면서 "우리와 경제적으로 비슷하지만 정치적으로는 다른 길을 걷는 대만의 상황을 참고해 앞으로의 다양한 가능성 타진에 나서는 것이 현명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