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 글로벌 제약사 대비 매우 부족한 R&D 투자 규모
매년 투자 규모 및 R&D 비중 확대해 포스트 ‘휴미라’ 도전

▲ 애브비의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휴미라’. 출처=한국애브비

[이코노믹리뷰=최지웅 기자] 세계적으로 잘 팔리는 의약품에는 ‘블록버스터’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영화에서 막대한 흥행 수입을 올린 대작을 일컫는 용어가 제약산업에서도 널리 쓰이고 있다.

일반적으로 ‘블록버스터 의약품’은 연 매출 1조원 이상을 기록한 제품을 말한다. 아쉽게도 국내에서는 블록버스터 의약품이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단일 의약품은 커녕 개별 기업이 매출 1조원을 올리기도 어려운 국내 제약업계의 현실을 반영하면 블록버스터 신약 개발은 꿈같은 이야기로 들린다.

하지만 모든 글로벌 제약사가 처음부터 블록버스터급 의약품 개발에 성공한 건 아니다. 끊임없는 연구개발(R&D)과 혁신을 통해 지금의 입지를 구축할 수 있었다. 국내 제약사 역시 블록버스터 신약 개발을 향한 투자를 게을리하지 않는다면 가능성은 충분히 열려 있다.

매출 23조 ‘휴미라’, R&D 저력 입증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판매된 의약품은 다국적 제약사 애브비의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휴미라’(성분명 아달리무맙)다. 휴미라는 1984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단일 클론 항체 생산기술에 관한 이론 및 개발’ 기술을 기반으로 개발된 항체 치료제다. 류머티스관절염, 궤양성대장염, 건선 등 15가지 이상의 다양한 자가면역 질환 환자 치료에 사용된다.

2002년 처음 등장한 휴미라는 수년째 전 세계 의약품 매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에만 191억6900만달러(약 23조5970억원)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최근 바이오시밀러의 등장으로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2018년 대비 매출(199억3600만달러)이 감소했지만 여전히 블록버스터 의약품의 명성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애브비는 단 하나의 의약품으로 우리나라 전체 의약품 시장 규모(23조 1175억원)와 맞먹는 판매실적을 올리고 있어 눈길을 끈다.

휴미라와 같은 블록버스터 의약품은 하루아침에 완성된 것이 아니다. 오랜 연구개발을 통해 지속적으로 치료제의 효능과 안전성을 검증한 끝에 탄생했다. 그간 투입된 R&D 비용만 수조원에 달한다.

 

제약바이오협회에 따르면 휴미라를 세상에 내놓은 애브비는 2018년 기준 매출액의 17.4%인 48억2900만달러를 R&D에 투자했다. 그해 전 세계 제약사 중 R&D에 가장 많은 비용을 투입한 곳은 스위스 제약사 로슈다. 전체 매출액의 22.0%인 91억8100만달러를 R&D에 쏟아 부었다.

존슨앤드존슨, 노바티스, 화이자 등 또 다른 상위 제약사들도 10조원에 달하는 금액을 R&D에 썼다. 이들 기업은 연간 매출액의 약 20%를 R&D에 집중할 만큼 신성장 동력 확보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제약바이오협회 관계자는 “선진국들이 신약 개발 등을 위한 투자지원에 적극적인 이유는 제약산업 발전이 거대 수익의 창출과 함께 삶의 질 향상, 양질의 일자리 창출, 기술력 향상 등으로 이어져 국가 경쟁력을 강화시키는 핵심 요인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제약사도 R&D 집중

글로벌 제약사들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미래 먹거리를 선점하기 위해 R&D 투자를 점진적으로 늘리고 있다. 특히 상위 20대 제약사가 전체 R&D 투자액 중 약 60%를 차지할 정도로 독과점 양상을 보이고 있다.

국내 제약사들도 매년 R&D 투자를 확대하며 블록버스터 신약 개발에 공을 들이고 있다. 국내 매출 상위 10개 제약·바이오 기업이 제출한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이들 기업의 R&D 총 투자비용은 1조3040억원에 달한다. 투자 규모 측면에서 글로벌 제약사와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하지만 매년 투자 규모와 더불어 매출액에서 R&D 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반응이 나온다.

 

셀트리온은 지난해 전체 매출의 26.9%인 3031억원을 R&D에 투자했다. 국내 제약사 중 투자 규모는 물론 매출액에서 R&D가 차지하는 비중 모두 1위다.

이어 기술수출 강자인 한미약품이 두 번째로 많았다. 이 회사는 전체 매출의 18.8%인 2098억원을 R&D에 사용했다. 이 밖에 GC녹십자(1507억원), 대웅제약(1406억원), 유한양행(1382억원), 종근당(1380억원) 등이 R&D 투자 규모를 매년 꾸준히 늘리고 있다. 특히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지난해 485억원을 R&D에 집행하면서 전년 대비 98% 증액했다.

이 같은 R&D 투자는 국산 신약의 기술수출이라는 성과로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주요 제약사의 기술수출액 변화를 보면 2013년 4600억원에서 2018년 5조3706억원으로 크게 늘어났다. 국내 기업이 독자 개발한 신약도 줄줄이 미국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글로벌 바이오시밀러 시장을 주도하는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유럽에 이어 미국 시장까지 진출하며 경쟁력을 입증했다.

제약바이오협회 관계자는 “제약산업의 핵심 가치는 R&D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국내 제약산업의 지속 성장을 위해 R&D 투자는 선결 조건이라고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