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이코노믹리뷰DB

[이코노믹리뷰=이가영 기자] 현재 우리는 단순 여행의 시대를 넘어선 대중 관광(Mass Tourism) 시대에 살고 있다. 사회 변화로 해외여행에 대한 각종 제한이 풀리고, 세계 여러 나라가 자연스레 개방되면서 원한다면 세계 어느 곳이든 갈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여기에 경제 발전으로 인한 1인당 국민소득 향상 등도 맞물리면서 항공업과 여행업은 고공성장을 이어왔다. 

특히 88올림픽을 기점으로 급격한 도약을 이룬 국내 항공·여행업은 2000년대 들어 저비용항공사(LCC)들의 출범과 함께 본격적인 황금기를 맞이하게 됐다. 하지만 20여 년간의 가파른 성장 뒤에는 수많은 굴곡도 존재했다. 2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에 이어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등 수차례의 대외적 위기가 있었고, 고공성장에 따른 과당경쟁, 수요 감소 등 대내적 위기도 생겨났다. 코로나19를 기점으로 그 위기는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항공·여행업계는 번번이 위기를 퀀텀 점프의 기회로 바꾸며 거듭 성장을 이룩해왔다. 
 
격동의 2000년대, 항공·여행 부흥기

20년간 항공업과 여행업은 흥망의 궤를 같이 해왔다고 봐도 무방하다. 실제로 2000년대 LCC의 등장과 1인 소득의 증가, 주5일제 실시 등으로 항공업이 크게 성장했고, 이에 따른 국내외여행 수요 급증으로 여행업도 호황을 맞았다. 

시작은 한성항공(현 티웨이항공)이었다. 2004년 국내 첫 LCC로 출범한 한성항공은 양대 항공사의 절반 수준의 저렴한 운임으로 소비자를 사로잡으며 기존 항공 시장의 판을 깨는 메기 역할을 톡톡히 했다. 항공운임은 비싸다는 패러다임이 깨지면서 거대한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한성항공이 등장하기 전만해도 해외여행은 일부 부유층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하지만 LCC들의 등장으로 값싼 항공권이 나오면서 해외여행이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다른 나라에 가거나 퇴근 후 여행을 떠나는 장면도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된 것이다. 

이 같은 시류에 발맞춰 2005년 제주항공, 2007년 이스타항공이 잇따라 설립됐으며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도 각각 자회사인 진에어와 에어부산을 통해 2008년 LCC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후 LCC들은 저렴한 가격과 공격적 노선확대를 앞세워 시장 키우기에 나섰다.

해외여행 붐이 불면서 여행업계도 초호황을 맞았다. 1997년 IMF 외환 위기가 닥치면서 잠시 주춤했던 여행업은 1999년부터 살아나기 시작했다. 특히 1993년 국진여행사로 시작한 하나투어는 2000년 11월 업계 최초로 코스닥 시장에 상장하며 여행업의 가파른 성장세를 고스란히 보여줬다. 이후 여행사의 주식 상장이 열풍처럼 번지기 시작해 2005년에는 모두투어, 2006년에는 비티앤아이, 세중나모여행 등이 줄줄이 상장했다.   

그러나 2000년대 항공·여행업계가 마냥 뜨거웠던 것만은 아니다. 특히 9·11 테러, 사스(SARS), 미국발 금융위기, 신종플루, 메르스까지 돌발 변수가 워낙 많아 유독 부침이 심한 시기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공·여행업계는 20년간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왔다. 

▲ 출처=이코노믹리뷰DB

전례 없는 위기, 전례 없는 기회 될까

현재 항공·여행업은 현재 전례 없는 위기 상황에 놓여있다. 지난해 일본 불매 운동으로 촉발된 ‘보이콧 재팬’에 이어 올 들어 강타한 ‘코로나19’까지 그야말로 사상최악의 보릿고개다. 업계 안팎에서는 과거 사스나 메르스 사태 때와는 다르다고 입을 모은다. 통상 3개월 이후부터 수요가 살아났던 과거와는 달리 여행 수요 자체가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어서다. 이는 올 1분기 실적에 그대로 반영됐다. 

코로나19 여파에 6개 상장 항공사(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제주항공·진에어·티웨이항공·이스타항공·에어부산)들은 올 1분기 일제히 적자로 돌아섰다. 이들 6개 항공사들의 순손실액은 1조4824억원으로, 매출 또한 전년 동기 대비 30% 넘게 급감했다. 지난 4분기 유일하게 흑자를 냈던 대한항공도 코로나19의 여파를 피해가지 못하면서 창사 이래 처음으로 구제 금융을 신청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여행업계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국내 여행업계 양대 산맥인 하나투어와 모두투어는 올해 1분기 눈덩이 적자를 기록했다. 하나투어는 올해 1분기 275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며 적자 전환했다. 창사 이후 가장 큰 적자다. 모두투어도 올해 1분기 영업손실 14억4000억원을 기록하며 적자전환했다. 

그간 고공성장을 이어온 항공·여행업계가 외부 충격에 속수무책으로 흔들리는 모양새다. 국내 항공·여행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른 상황에서 코로나19로 시장 재편 움직임이 본격화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실제 항공업계의 경우 아시아나항공과 이스타항공의 매각이 진행 중이며, 여행업계의 경우 올해 1월 20일부터 5월 4일까지 폐업한 여행사 숫자만 283개에 달한다. 그야말로 총성 없는 전쟁터다.  

하지만 국내 항공·여행업은 위기 상황이 도래할 때마다 저마다의 저력으로 극복에 성공해왔다. 이번 위기가 업계의 전문성을 쌓고 기초를 다질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희망적인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일례로 과거 항공·여행업계는 메르스 직격탄에도 끊임없는 투자와 공격적인 혁신으로 2016년 실적 개선을 이뤄낸 바 있다. 전년의 기저효과까지 더해지면서 위기설이 무색할 정도의 경영성과를 냈다. 

항공·여행업계는 위기를 기회로 삼아 코로나19 이후의 새로운 시대를 위한 패러다임을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