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박정훈 기자] 한때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여겨졌던 면세점 사업이 사상 최악의 위기에 직면했다. 한반도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보복성 조치가 있을 때보다 상황은 더 나쁘다. 단순히 고객이 줄어드는 수준이 아니라 고객이 ‘아예 없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대기업 면세점들도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업계 1위, 2위 사업자인 롯데면세점과 신라면세점이 인천공항 제1여객터미널 면세점 사업권을 끝내 포기했다는 소식은 이전과 다른 위기를 체감케 한다. 

사상 최악의 상황

롯데면세점, 신라면세점은 올해 초 새로운 인천공항 제1여객터미널(T1) 면세사업권 입찰에 참여해 각각 DF3권역(주류·담배), DF4권역(주류·담배)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정해진 일정대로였다면 각 기업은 8일 인천공항공사와 운영계약을 체결하고 오는 9월부터 새롭게 면세점 운영을 시작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코로나19가 점차 소강상태에 접어들고 있는 것과 달리 본격적으로 미국·일본·유럽 등지에서 코로나19가 확산됨에 따라 여행객 자체가 줄어들었다. 인천공항공사가 파악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인천공항 국제선 승객은 지난해 대비 90% 감소했다. 이에 자연스럽게 공항면세점의 고객도 줄어들었고, 그로 인해 각 면세점은 유지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졌다. 

홍남기 부총리는 지난 1일 공항 등 공공시설에서 임대 점포를 운영하는 기업들에 대한 임대료 감면 대상을 중소기업에서 대기업까지 확대하는 긴급 방안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각 면세점 사업자에게 6개월 동안의 임대료를 20% 감면해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복잡한 이해관계와 셈법

그러나 여기에는 아주 복잡한 셈법이 있었고, 인천공항공사와 각 기업들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면서 문제가 됐다. 본래 인천공항 국제선 여객터미널 면세점은 지난해 대비 여객수의 증감률에 따라 면세점 임대료를 플러스 9%, 마이너스 9% 범위에서 올리거나 내리는 등으로 조정하고 있다. 즉, 여객수가 늘어나면 그만큼 늘어나는 면세점 수익을 고려해 임대료는 가산될 수 있고 여객수가 줄어들면 그를 고려해 임대료는 감산될 수 있는 것이다. 올해와 같은 특수한 악재가 있는 경우 국제선 여객수가 급감했기 때문에 각 면세점 사업자는 내년에 인천공항 면세점 운영 임대료를 최대 9%까지 감면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인천공항공사는 정부의 긴급 방침에 따라 3월에서 8월까지 총 6개월 동안 각 기업들의 면세점 임대료를 20% 감면하는 대신, 본래 계산법의 9% 감면을 이후 6개월 동안 포기하라는 조건을 달았다. 

인천공항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 2018년 인천공항의 조사에 따르면 인천공항의 연간 운영수익 중 임대수익이 포함된 비(非)항공수익은 전체의 66.4%를 차지한다. 여객수가 줄어 인천공항의 항공수익이 급격하게 줄어든 상황에서 임대수익을 계속 줄이면 공항공사의 운영에도 무리가 생긴다. 그렇기에 20% 임대료 6개월 감면에 9% 감산까지 더하면 인천공항에도 부담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거의 수익성이 '0'으로 수렴하고 있는 면세점을 운영하는 기업들의 입장도 곤란하기는 마찬가지다. 향후 6개월 동안 임대료가 20% 감면된다고 해도 6개월 이후의 여객수가 이전 수준을 회복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이후에 여객수가 어느 정도 회복되면 각 기업들은 9% 인하의 연장이 없으면 내년에 최대 9% 인상된 임대료를 내야 할 수도 있다. 

면세업계 관계자는 “여행의 완전 정상화가 언제 이뤄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지난 두 달 동안 큰 손해를 감당해 온 면세점 기업들에게 임대료 부담감은 시기의 문제일 뿐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라면서 “정부는 아직도 국내 면세업계의 순환구조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 지난해 대비 여행객이 90% 줄어 한산한 인천국제공항. 사진= 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면세점 ‘엑소더스’ 불안감 고조 

2019년 기준으로, 업계가 파악하고 있는 국내 면세점 시장규모는 약 23조원에 이른다. 사업자들의 숫자가 다른 유통업종에 비해 많지 않음을 감안하면 규모도 크고 종사자도 많고 다른 업종에 미치는 영향도 적지 않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위기상황과 이를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정부의 대응 그리고 갈수록 깊어지는 공공시설과 면세점 기업들의 갈등으로 업계 상황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면세점 사업이 문제없이 잘 돌아가는 가운데서도, 극히 일부 대기업만이 버틸 수 있는 수익구조로 인해 지난해 한화와 두산은 면세점 사업에서 손을 뗐다. 여기에 코로나19의 여파가 지속되면서 SM면세점이 인천공항 1터미널과 서울시내 면세점 사업권을 반납했다. 그리고 이는 결국 롯데와 신라의 인천 공항면세점 사업권 포기까지 이어졌다. 

면세업계 관계자는 “위기는 언제나 올 수 있다. 그러나 업계 당사자들이 겪는 어려움에 대응하거나 갈등을 조율하는 방법에 있어 정부의 대응은 언제나 미숙한 것 같다”라면서 “업계는 정부의 대응에서 뭔가 해결책을 기대하는 것보다는 일단 빨리 코로나 정국이 끝나는 것을 기다리고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