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의 석유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경제 무기 관세를 사용하겠다고 위협하고 있지만, 미국이 사우디나 러시아에서 원유를 거의 수입하지 않기 때문에 그 전략은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을 것 같다.    출처= ForceChange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작금의 석유시장 드라마에서 대활약하는 주인공들의 면면은 결코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현재의 주인공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는 곧 새로운 주인공을 위한 자리를 비워두어야 할 것이다. 바로 ‘관세맨’ 트럼프다.

자신을 '관세맨'이라고 당당히 부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번에는 사우디와 러시아의 공격으로부터 궁지에 몰린 미국의 석유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경제 무기 관세를 사용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으로 인한 석유 수요의 붕괴와 함께, 러시아와 사우디의 해묵은 갈등은 국제 석유 가격을 18년 만에 최저치로 추락시켰고 수십 개의 미국 석유회사들을 파산 위기에 몰아 넣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일 언론 브리핑에서 "우리는 이 위대한 산업을 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목표는 푸틴 대통령과 빈 살만 왕세자가 9일 회동에서 대량 감산을 합의해 돌파구를 마련하도록 하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만약 그들이 또다시 합의를 하지 못하면 높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미국이 사우디아라비아나 러시아에서 원유를 거의 수입하지 않기 때문에 그 전략은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을 것 같다고 CNN이 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국 석유회사들은 관세를 원할까?

CNN은 트럼프의 관세 위협이 미국 석유 산업에 깊은 분열만 노출시켰다고 분석했다.

값싼 원유에 대항하기 위해 설립된 대형 석유회사들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관세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고 촉구했다.

미국 최대 생산업체인 엑손모빌(ExxonMobil)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자유시장이야말로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극심한 수급 불균형을 해소하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라고 말했다. 엑슨모빌은 8일, 배당을 유지하기 위해 퍼미안 분지(Permian Basin) 셰일 유정 투자를 축소하는 등 지출을 30% 줄일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대부분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독립 석유회사들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고비용의 미국 생산자들을 겨냥하고 있는 사우디와 러시아를 응징하기 위해서는 수입 석유에 관세를 부과해야 한다고 청원했다. 이런 움직임은 미 셰일 산업의 개척자라고 할 수 있는 해롤드 햄(Harold Hamm)이 이끄는 석유회사 연합체 미국 에너지 생산자 연합(DEPA)이 주도하고 있다.

DEPA는 지난 달 미 상무부의 조사를 촉구하는 성명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가 미국의 에너지 독립을 짓밟고, 옛날처럼 미국과 세계를 높은 석유 가격에 볼모로 잡아두기 위해 불법 투기에 공모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햄의 회사 컨티넨탈 리소시스(Continental Resources)도 유가 하락에 고통 받고 있다. 컨티넨탈은 8일, 생산을 30% 줄일 것이라면서 배당도 중지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햄은 지난 3일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동에 참석한 석유회사 CEO들중 한 명이다. 역시 이 회의에 참석했던 아메리칸 페트롤륨 인스티튜트(American Petroleum Institute)의 마이크 소머스 CEO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회의에서 관세 부과 의지를 표명했다"고 말했다.

관세 무용론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해서만 표적 관세를 부과할 지 아니면 모든 수입 석유에 대해 포괄적으로 관세를 할 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애널리스트들은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관세가 석유 산업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 에너지부 고위관리를 지낸 헤지아이 리스크 매니지먼트(Hedgeye Risk Management)의 조 맥모니글 에너지정책 애널리스트는 "산업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안 중, 관세는 최하위 우선순위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미국은 지난 1월 기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수입한 원유는 하루 40만 배럴에 불과했다. 이는 1년 전보다 44% 감소한 것이며 1980년대 중반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같은 기간 러시아로부터 수입한 원유는 9만 5000배럴에 그쳤다. 러시아와 사우디 아라비아를 합쳐도 미국 전체 석유 수입양의 8% 밖에 되지 않는다.

원유 컨설팅 업체인 라이스타드 에너지(Rystad Energy)의 파올라 로드리게스-마이수 애널리스트는   "관세는 마법의 지팡이가 아니다. 만일 관세를 부과한다면 곧 소용없는 짓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수입 석유 필요 없다고?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를 미국이 에너지 시장을 장악하기 위한 방편으로 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5일 언론 브리핑에서 "우리는 완전히 독립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석유를 가지고 있다"며 “내가 관세를 부과한다면 그것은 본질적으로 '우리는 수입 석유를 원하지 않는다’는 의미다"라고 말했다.  

미국 세일 생산의 확대는 확실히 수입 석유를 줄이는 데 큰 진전을 이루었다. 하지만 진정을 독립이라고 할 수 있을까.

미국은 여전히 매일 600만 배럴 이상의 석유를 수입하고 있다. 그런데 그 대부분은 이웃 나라인 캐나다와 멕시코에서 수입한다.

RBC 캐피털 마켓(RBC Capital Markets)의 글로벌 에너지전략 책임자 마이클 트랜은 "미국이 에너지 독립국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정치적 선거 연설에서나 쓰는 말일 뿐"이라고 꼬집었다.

중간에 끼인 정유업체

미국의 석유 수입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수십 년을 운영해 온 미국의 정유 시스템은 미국 셰일만으로는 운영될 수 없다. 휘발유, 항공유, 경유 등을 수익성 있게 배출하기 위해 정유회사들은 해외에서만 구할 수 있는 상당한 양의 중유(heavy oil)를 필요로 한다. 게다가 베네수엘라는 미국의 제재로 인해 중유 수입에서 제외되었다.

이는 모든 수입 원유에 대한 전면적인 관세가 미국 정유업자들에게는 재앙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코로나바이러스 대유행으로 인한 휘발유와 항공유 수요의 전례 없는 붕괴는 이미 정유 회사의 수익을 크게 손상시켰다.

휘발유의 경우 정유 마진이 마이너스 영역을 넘나들고 있다. 이는 정유회사들이 휘발유를 팔수록 손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관세는 정유사들의 고통을 더욱 시킬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가을 대선에서 텍사스 생산업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관세를 선택할 수도 있겠지만 관세 부과는 고스란히 정유업계의 피해로 돌아갈 것입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를 선택할 것이냐 아니냐는 9일 OPEC 회의에 달려 있다. 사우디와 러시아가 휴전을 선언하고 대량 감산할 것이라는 희망으로 지난주 원유 가격은 사상 최대폭인 32%나 급등했다.

"OPEC플러스가 이번에 합의에 이르지 못한다면 유가는 20달러 대가 붕괴되고 10달러 대까지 떨어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