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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단장하기] 뛰는 게 좋을까, 걷는 게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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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히 폭력적이었던 무더위가 드디어 가시기 시작하던 작년 9월, 나는 처음으로 러닝을 시작했다. 내게는 ‘글 쓰며 러닝 하는 사람’에 대한 로망이 있었는데, 마라톤을 예찬하는 두 작가 김연수와 무라카미 하루키로부터 받은 자극 때문이었다. 건강한 몸에 깃든 건강한 정신! 나날이 단련되는 지구력! 고통을 넘어선 러너만이 경험할 수 있다는 러너스 하이! 나는 기대와 설렘을 잔뜩 품고 러닝 매니아인 친구를 따라나섰다. 첫 러닝의 결과는 참담했다. 거뜬한 목표라고 생각했던 ‘3km 완주’는 커녕 그 반절도 뛰지 못했다. ‘이제 더는 못 뛰겠다‘는 말마저도 숨이 차서 내뱉지 못하고 허공에 손만 휘휘 가로저었다. 제대로 달리지도 못했건만 운동 후에 마시는 맥주는 염치도 없이 달고 시원했다. 나는 벌게진 얼굴로 맥주만 연신 들이키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이튿날에는 집 근처 공원을 달렸다. 한 바퀴를 다 돌면 약 4km 정도가 되는 코스였다. 늦어도 좋으니 쉬지 말고 달려보자. 나는 ‘멈춤 없는 완주’를 목표로 해 홀로 달리기를 시작했다. 굳은 다짐이 무색하게도 재빨리 고통이 몰려왔다.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 두 번째 노래가 시작되기도 전이었다. 찐득해진 침 때문에 목구멍이 턱턱 막히고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멈추지 말자. 멈춰선 안 돼. 나는 숨을 몰아쉬며 머릿속으로 ‘그릿 GRIT’을 떠올렸다.

‘그릿 GRIT’은 펜실베니아 대학교의 심리학자인 앤젤라 더크워스가 쓴 책으로, 놀라운 성취를 이뤄낸 사람들의 성공 비결을 추적하는 책이다. 그녀는 오랜 연구 끝에 성공의 비결은 재능이나 지능이 아니라 ‘끝까지 해내는 힘’에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열정과 끈기, 그것이 그릿이고, 이 그릿 지수가 높은 사람일수록 성공에 가까운 사람이라는 것이 그녀의 결론이다.

이 책에는 재미있는 실험 사례가 하나 실려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속도를 최대치로 설정한 러닝머신 위에서 130명의 학생을 달리게 한 후 기록을 체크한다.. 연구원들은 이 실험 이후 40년간 이 학생들을 추적 연구했고, 과거 러닝머신 위에서 한 걸음이라도 더 뛰어 높은 그릿 점수를 받았던 학생들은 그렇지 않았던 학생들에 비해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음을 확인했다.

멈추지 말자. 멈춰선 안돼. 나는 한 번 더 다짐했다. 지금 멈춘다면 나는 그릿 지수가 낮은 사람이 되는거고, 그렇다면 성공에서 한 발자국 멀어지지 않겠는가. 그날 나는 한 번도 멈추지 않고 공원을 완주한 뒤 금방이라도 까무러칠듯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한 번 더 공원으로 향했다. ‘어제보다는 좀 더 나아졌겠지‘라는 기대와 함께 달리기 시작한 나는 코스를 반쯤 돌고 멈춰 서고 말았다. 당장이라도 폐가 터져버릴 것 같은 고통이 몰려왔다. 아, 내 그릿 지수...! ’성공적인 인생‘이 유유히 멀어져 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허무함과 자괴감이 몰려왔지만 도무지 다시 뛸 수가 없었다. 나는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터벅터벅 걷기 시작했다. 달아오른 볼에 서늘한 바람이 달라붙자 기분이 조금 나아지는 것도 같았다. 지는 해와 떠오르는 달이 함께 수놓인 하늘을 올려다보며 결승점으로 돌아왔다. 놀라운 일은 이다음에 일어났다. 절반을 걸어서 완주한 오늘의 러닝타임과, 기를 쓰고 달린 어제의 러닝타임이 단 20초 차이밖에 나지 않았다. 20초라니! 걸어도 그만, 뛰어도 그만일 것 같은 근소한 차이였다.

이후 나는 종종 고민에 빠지곤 한다. 사력을 다해 뛸 것인가, 여유롭게 걸을 것인가. 두 선택지를 양손에 하나씩 올려놓고 무게를 잰다. 기를 쓰고 달리자니 삶의 여유를 잃어버리는 것 같고, 천천히 걸어가자니 뒤쳐져버릴것만 같다. 끈기와 열정을 강조하는 ‘그릿 GRIT’ 류의 책, 휴식과 여유를 강조하는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류의 책 사이에서, 나는 한참을 망설인다. 문득 내 ‘달리기 로망’에 불을 지폈던 두 작가가 떠오른다. 그들도 이런 고민을 했을까? 러닝 대선배인 김연수 작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고통이 아니라 경험에 집중하는 일을 반복적으로 행하는 건 삶을 살아가는 데 상당히 도움이 된다.” ‘지지 않는다는 말’ 중

아주 오랜만에 운동화 끈을 당겨 묶는다. 발등에 가벼운 압박감이 느껴진다. 공원에 들어선 나는 팔과 무릎을 이리저리 돌리고 제자리 뛰기를 하며 몸을 데운다. 고통이 아니라 경험에 집중할 것. 오늘은 그렇게 뛰어보기로 한다. 

공백 북 크리에이터 neferland@naver.com

기사승인 2020.04.04  19: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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