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유럽 국가들이 엄청난 액수의 정부 자금을 신속하게 약속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이 이미 세계에서 가장 관대한 사회 안전망 프로그램에 자금을 조달해 왔기 때문이다.    출처= Reddit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코로나 대유행과 싸우기 위해 미국 의회는 지난 주 행정부가 제출한 2조 달러의 경제구제법안을 통과시켰다. 이와는 별도로 표준 실업 보험 제도를 확대하는 한편,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들을 돕기 위한 자금 풀을 따로 마련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주식시장 붕괴, 소비 지출의 감소, 부동산 가격 폭락 등 우리가 익히 경험해 온 경제적 고통에 직면할 때 미국 정부가 내놓는 전통적 처방이다.

코로나 확산으로 아시아에서 유럽, 북미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정부 정책에 따르느라 일자리를 잃고 있다. 근로자들은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기 위해 집에 머물러야 한다. 공중보건 비상사태에 직면해, 정부는 기업 활동을 억제시키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이전과 다름없는 일반적인 경기부양책을 되풀이한다고 해서 효과를 거둘 수 있을까?

많은 경제학자들은 현재 필요한 것은 경제활동에 대한 자극이 아니라, 정상적인 삶이 멈춰있는 동안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위한 포괄적인 구제책이라고 말한다. 정부가 개입해 이들의 급여를 지급해 실업난의 파고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곧 출간될 책 <일자리 보장론>(The Case for a Job Guarantee)의 저자인 뉴욕 바드 칼리지(Bard College) 파블리나 R트케르네바 경제학 교수는 "가능한 모든 조치를 동원해 그들이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기본적으로 정부가 그들의 1차적 고용주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한다면 추가 출혈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을 겁니다."

북유럽 국가들은 이런 정책을 실제로 실현한다. 뉴욕타임스(NYT)가 코로나에 대응하는 덴마크의 경제구제책을 소개하면서 미국과 무엇이 다른지 그 근본적 차이를 설명했다. 

덴마크에서는 코로나 대유행 상황에서 각 정당들이 이념적 스펙트럼을 초월해 노동조합과 고용자 단체와 뜻을 모아, 코로나에 직면한 기업들이 해고를 하지 않을 경우, 정부가 3개월 동안 근로자 임금의 75~90%를 부담하는 안을 확정했다.

덴마크 정부는 또 매출 하락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에 대해 임대료와 같은 일부 고정비용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이 두 가지 정책을 시행하는 데 실업보험의 절감액을 감안하면, 총 426억 덴마크 크로네(7조 8000억원)의 비용이 들 것으로 추산된다.

네덜란드도 이와 비슷한 정책을 시행한다. 정부가 매출이 20% 이상 하락한 기업들에 대해 근로자 임금의 90%를 지원하기로 한 것이다. 영국 정부도 기업 근로자 임금의 80%를 지원하기로 약속했고, 지난 주에는 자영업자들에게 동일한 지원을 제공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러한 접근법의 목적은, 기업들이 근로자들을 일단 해고한 다음 나중에 사정이 좋아지면 다시 고용하게 하는 것보다, 처음부터 직원들을 유지 보호해 대량 실업이라는 고통스러운 경험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야만 상황이 정상으로 돌아왔을 때 기업들은 신속하게 운영을 재개해 성장을 회복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정책입안자들에게 경제 조언을 제공하는 덴마크 경제위원회(Danish Economic Council) 위원장을 맡고 있는 코펜하겐대학교의 칼 요한 달가드 경제학 교수는 "기업들이 이 상황을 극복하고 파산이나 해고라는 중압감에서 벗어나게 해 줄 수 있다면, 정상으로 복귀하는 것을 앞당길 수 있다."고 말했다.

▲ 덴마크의 경우, 코로나 사태에 직면한 기업이 직원을 해고하지 않으면 정부가 급여의 75~90%를 부담한다.    출처= Norden

그러나 이러한 접근방식이 미국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미국에서 의료보험의 확대와 대학교육비 인하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이유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부유한 미국인들은 세금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는 데 능숙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워싱턴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Peterson Institute for International Economics)의 제이콥 F. 키에르케가르드 연구원은 "미국에는 포괄적 복지가 불가능하다. 그것은 정치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수준의 재분배를 의미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부자들에게 세금을 거둬 그 돈의 일부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야 한다는 의지가 없는 한, 미국에서 그런 포괄적 복지의 선택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어떤 식으로 계산하든 미국이 덴마크 방식을 도입한다면 막대한 비용이 들 것이다. 공식 자료에 따르면 2019년 미국 고용 인구는 1억 7700만 명이었다. 브루킹스 연구소에 따르면 이 중 저임금 근로자는 약 5300만 명으로 이들의 중간소득은 연간 1만 8000달러에 불과하다. 만약 정부가 이들의 임금을 6개월 동안 충당한다면 4770억 달러가 들고, 중간 소득인 6만 4000달러까지의 근로자에게 6개월간 급여를 지원한다면 5조 달러가 소요될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18년 덴마크는 연간 국가 경제 생산량의 49%에 해당하는 세수를 거둬들였다. 네덜란드는 39%, 영국은 34%로 집계됐다.

그러나 미국의 세수는 연간 국가 경제 생산량의 24%에 불과하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와 트럼프 행정부의 대규모 감세 이전인 2000년에는 그 비율이 28%였다. 그나마 감세 혜택의 대부분은 부유한 가정으로 흘러 들어갔다.

경제학자들은 세계경제를 위협하는 오늘날의 비상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정책 교본에서 근본적으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덴마크 정부가 엄청난 액수의 정부 자금을 신속하게 약속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이 이미 세계에서 가장 관대한 사회 안전망 프로그램에 자금을 조달해 왔기 때문이다.

스칸디나비아 국가에서 시행되고 있는 이른바 북유럽 경제모델에 따르면, 이들 국가의 국민들은 국민건강보험, 무료 공교육, 광범위한 육아 휴가, 직업훈련 프로그램, 실직자들을 위한 현금 보조금 같은, 이른 바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복지에 대한 대가로 세계 평균보다 훨씬 높은 세금 부담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미국은 엄격한 개인주의 개념이 철저해 경제적 어려움도 종종 혼자만의 경험이 될 뿐이며, 정부 보조라는 완충 개념이 부족하다.

덴마크에서는 4명의 가족을 부양하는 가장이 직장을 잃으면 6개월 동안 실직 이전 소득의 90%를 정부로부터 지원받는다. 그러나 미국에서 동일한 상황에 처한 가장은 대개 원래 소득의 30% 로 근근이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차이가 미국과 덴마크가 위기에 직면해 취하는 정치적 선택을 다르게 결정하게 만드는 것이다.

덴마크 정책 입안자들은 어떤 경우에든 대량 해고를 막기 위해 납세자들의 돈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비상한 행동에 합의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의 예산 논리에서 어려움을 겪는 노동자들을 돕기 위한 지출은 매우 한정되어 있어서 여분의 자금은 빌리거나 별도의 세금을 통해 징수해야 한다.

그러나 경제학자들은 전례 없는 코로나 상황에 직면해 이제 그런 계산 논리는 변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만약 미국 정부가 북유럽 국가들처럼 근로자들의 급여를 지원하는 고용주 역할을 자처한다면, 세계 시장을 안심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덴마크 같은 작은 나라는 할 수 없는 일이다.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의 키에르케가르드 연구원은 "만약 미국 정부가 그렇게 한다면 미국의 정치 경제체제에 힘과 회복력의 신호를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정부가 왜 그렇게 하지 않는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