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위기 당시 은행들의 담합이 드러나면서 신뢰가 훼손된 리보금리가 뉴욕 연준이 제시한 SOFR로 대체되어가고 있다.   출처= RIMES Technology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리보금리(Libor)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면서도 우리가 잘 모르는 금리다. 주택담보대출, 학자금 대출, 신용카드 대출, 일반 소비자대출 등 전세계 200조 달러에 이르는 금융계약에 영향을 미친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세계 금융거래를 지배해 온 리보금리 시대가 이제 저물어가고 있다고 CNN이 1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60년간 뿌리 깊은 리보

리보(London Interbank Offered Rate)는 은행들이 서로 돈을 빌려줄 때 적용하는 일일 계산 이자율이다. 리보금리는 변동금리 주택담보대출 같은 수조 달러의 달러화표시 대출 계약의 기준금리 역할을 한다.

은행이 거래 상대방을 얼마나 믿는지에 따라 금리가 결정되기 때문에 리보가 과도하게 오르면 금융권의 신용이 불안해지고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인다. 리보금리의 변화는 또 변동금리 대출을 받은 일반투자자들이 단기간에 어느 정도의 변화를 겪게 될 것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나 2007~2009년 금융위기 당시, 여러 금융회사(바클레이즈, 도이치방크, UBS, 라보뱅크,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 소시에테제네랄, 로이드, JP모건 등 글로벌 은행들이 다수 연루됐다)들이 수익률이 높은 것처럼 보이게 하고 부실 채권을 은폐하기 위해 리보금리를 조작했음이 드러났다. 이로 인해 신뢰가 훼손된 이 제도에 대한 개혁이 요구됐지만, 1960년대부터 세계 금융시스템에 오래 동안 뿌리박고 있는 이 제도를 대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주요 은행간 설문조사 방식으로 산출되는 리보금리의 한계점이 노출되면서 세계 각국은 새로운 대안 마련에 나섰다. 대표적인 것이, 은행들이 미국 정부 채권(환매조건부채권)을 담보로 현금을 차입하는 실제 일일 거래에 근거해 뉴욕 연방준비은행이 2017년 6월 제시한 SOFR(Secured Overnight Financing Rate)이다.

SOFR의 한 가지 장점은 리보금리와 달리 실제 거래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조작이 더 어렵다는 것이다.

뉴욕 연방준비은행과 글로벌 규제당국들은 리보금리를 이제 과거의 유물로 간주하기 원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존 윌리엄스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지난해 연설에서 "사람들은 우리 삶에서 확실한 것이 죽음과 세금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거기에 한 가지 덧붙이고자 한다. 바로 ‘리보의 종말’이다”라고 말하며 리보의 폐기를 강력히 주장했다.  

그러나 많은 은행들은, 월리엄스 총재의 주장이 리보가 오늘날 왜 그렇게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는 지에 대한 근본적 속성을 놓치고 있다며 SOFR이 리보를 대체하는 것을 탐탁치 않게 생각하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Bank of Merrill Lynch)의 마크 카바나 미국 금리전략팀장은 "현재 시장이 리보금리를 당장 폐기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며 “우리는 전환기의 6이닝쯤에 와 있다”고 말했다."

리보금리가 사라질 것으로 예상되는 2021년 말까지 2년도 채 안 남은 시점에서 금융계는 새로운 체제에 동참할 준비를 해야 한다.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이 의장으로 있는 금융안정감독위원회(Financial Stability Oversight Council)는 2019년 연례보고서에서 "SOFR을 시장 참여자들이 적절히 적응하도록 널리 보급하지 못하면 수많은 금융계약을 위한 유동성 경색을 가져오고 금융안정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 SOFR은 리보금리와 달리 실제 거래에 기반을 두고 있어 조작이 더 어렵다는 장점이 있지만 시장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여러가지 방식으로 불안정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출처= Risk Span

SOFR의 문제점

시장 참가자들은 SOFR이 오래동안 시장에 정착해 온 리보에 비해 여러가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BoA의 카바나 팀장은 "시장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여러가지 방식으로 불안정을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 회의론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SOFR이 급등하자 뉴욕 연준은 유동성 강화를 위해 수십억 달러의 현금을 시중에 쏟아 부었다.

시장 참가자들은 또 SOFR이 대출에 충분히 민감하지 않다고 말한다. 이는 SOFR이 미래에 예상되는 차입비용보다는 실제 거래에 기초하기 때문에 대출시장 상황의 변화에 밀접하게 대응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은행들은 또, SOFR이 금리의 ‘기간 구조’(term structure)를 간과하고 있다고 불만을 제기한다. 기간구조야말로 투자자들이 향후 금리가 어떻게 될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기능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리보의 경우, 3개월 금리는 90일 이내에 차입비용이 얼마나 될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이는 대출자인 은행과 차입자 모두에게 현금흐름을 계획하는 데 있어 중요한 속성이다. 리보 금리 체제 하에서는 대출자들(금융기관이나 개인대출자)이 향후 그들의 금리가 어떻게 될지를 정확히 가늠해 볼 수 있다. 하지만 SOFR에서는 이것이 불가능하다. 리보 같은 기간 구조가 없어 미래의 차입비용을 추정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뉴욕 연준은 오는 3월 2일부터 30일, 90일, 180일짜리 평균 SOFR을 발행하기 시작할 예정인데, 이는 리보의 선도 금리와는 다르게 계산된다.

리보와 SOFR의 가장 큰 차이는 금리산출방식이다. 리보는 주요 은행들이 예상한 금리에 의존하지만 SOFR은 증권중개인과 딜러, MMF·자산운용사·보험회사·연기금 등의 펀드매니저 등 다양한 시장 참여자의 실제 거래에 근거해 산출된다.    

UBS 글로벌 자산운용의 레슬리 팔코니오 채권투자전략가는 "이 지침을 도입한 것은 좋은 생각이지만 아직 완벽하지는 않다"고 지적했다.

변화는 어려워

그동안 SOFR 채택이 더디게 진행돼, 시장이 이를 받아들일 시간이 촉박하다는 점도 우려스러운 점이다.

BoA의 카바나 팀장은 "고객들은 리보금리가 완전히 사라지고 SOFR만이 유일한 대안이 되는 시대에 대비해야 한다. 하지만 다른 대안도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카바나의 그런 조언은 새로 발행되는 대출과 계약들이 전적으로 SOFR에 의존하기 보다는 여전히 리보금리를 많이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상환 리보금리 계약이 늘어나는 것은 더 큰 문제가 있다.

200조 달러에 달하는 리보금리 기반 금융계약의 대부분은 파생상품으로, 마찬가지로 국제스왑파생협회(ISDA)가 만든 동일한 규제 틀인 ISDA 표준계약(ISDA Master Agreement)에 영향을 받는다. ISDA 표준계약이 SOFR로 전환되면 SOFR이 수 조 달러의 미상환 파생상품 계약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5조 달러 대출 시장은 기존의 혜택을 받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수 많은 대출 서류들이 다시 작성되어야 할 수도 있다.

변동금리 대출이나 주택담보대출을 갖고 있는 소비자들에게 조만간 그들의 대출금리가 바뀔 것이라는 것을 통보하는 편지를 받게 될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