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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 新풍속도] 책만 팔던 시대는 지났다

사양산업 위기설에 대처하는 서점 각자도생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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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믹리뷰=박민규 기자] 어느 순간부터 서점가에서 새로운 풍속도가 그려지고 있다. 원데이 클래스를 신청해서, 식사 모임이 있어서, 힙(hip)한 장소에서 찍은 사진을 SNS에 올리기 위해, 전시회가 열려서, 책맥(책+맥주) 하러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책만 읽는 풍경은 지나가고, 책'도' 있는 풍경이 찾아왔다. 물론 예나 지금이나 오프라인 서점을 찾는 발걸음이 도서 구매로까지 이어지기는 힘들다. 조금 아이러니하지만 책을 사러 가는, 서점의 본질에 충실한 목적이 없어도 서점을 찾을 이유들이 이제는 더 많이 생겼다.

이제 서점은 책만 권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굳이 책을 사지 않는다는 소비패턴을 학습한 까닭이다. 대신 서점은 당신에게 책이 매개하는 어떤 ‘체험’을 판다. 그 체험은 필요한 물건들을 한 곳에서 쇼핑하는 ‘효율성’이 될 수 있고,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제안이나 복합문화공간에서 보내는 여가가 될 수도 있다. 새로운 놀이·기행 문화의 중심에서 서점이 ‘핫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다.

팔색조 변신, 홀로그램 매력의 공간으로

'책을 파는' 기본에 충실했던 오프라인 서점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변신하고 있다. 오프라인 서점이 높은 할인율과 방대한 상품 범위를 두루 갖춘 온라인 서점에 대적할 만한 비기는 바로 물리적 '공간'이다. 정확히는 공간을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승부가 달렸다.

   
▲ 을지로에 있는 한 서점은 카페나 식당과 따로 영역을 구별해놓지 않고 혼재된 모습이다. 사진=이코노믹리뷰 박민규 기자

서점의 '카페화'는 이미 많은 이들의 눈에 익은 변화다. 적어도 국내 대형서점의 경우 카페를 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건물을 벗어나야 하는 일은 없다. 같은 층에 분리된 코너나 가깝게는 책이 진열된 매대 바로 옆에 입점한 카페에서 사람들은 때로 계산하지 않은 책을 가져가 읽을 수도 있다. 아이스크림과 베이커리류 등을 파는 디저트가게도 종종 보인다.

카페 수요가 많은 나라답게 서점 역시 카페와 합쳐진 형태가 아직은 가장 많지만, 식사나 음주 등 다른 식문화와 결합한 모습들도 등장했다. 와인을 마시며 책을 읽을 수 있는 '북앤펍(Book&Pub)'이나 진열된 도서를 식당으로 들고 가도 문제가 없는 한 서점의 사례처럼 서점이 다른 업종과 경계가 모호해지는 모습이 포착되고 있다.

책과 함께 숙박하는 '북스테이'와 늦은 밤 시간에 모임을 진행하는 '심야책방' 같은 이색 서비스도 눈에 띈다. 지난해 여름 한 대형서점은 '북캉스(책+바캉스)' 키워드에 맞춰 북콘서트 등을 일정에 포함시킨 맞춤형 여행 상품도 제안했다. 이처럼 독서 자체를 콘텐츠화해 감성적으로 풀어낸 서비스가 꾸준한 독서가들은 물론 새로운 문화를 찾는 밀레니얼세대에게도 톡톡히 어필하고 있다.

   
▲ 서울 종로구 통의동에 있는 한 서점. 밸런타인데이 기념 재즈 공연 등 서점에서 열리는 행사를 홍보하는 포스터들이 유리벽에 붙어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박민규 기자

북토크는 서점의 규모를 불문하고 대세가 됐다. 저자 초청 강연회와 낭독회는 물론 독자들이 모여 진행하는 독서 스터디까지, 서점은 일회성 행사와 정기적 모임을 두루 개최하며 '문화적 교류'의 장으로 역할하고 있다. 이전에는 주로 일방적인 방식의 강연 형태였다면 요즘은 이용객의 능동적인 참여가 전제되는 토론회나 원데이클래스가 활성화됐다. 

재즈·와인 같은 문화 관련 수업에서는 음악을 같이 듣거나 술을 시음하는 등 공감각적인 체험들이 가능하다. 독립영화를 상영하거나 인디 가수의 공연을 여는 등 소규모 예술극장으로 봐도 무방한 서점들도 있다. 책이 세상의 모든 내용을 담을 수 있는 것처럼 서점도 강연·전시·공연·모임을 여는 복합문화공간으로서 다양한 문화영역들을 합종연횡 하는 모습이다.

   
▲ 을지로에 있는 한 서점은 어떤 음악을 테마로 하여 책과 헤드폰, 방향제를 함께 제안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박민규 기자

서점에서 책 읽다가 지겨우면 필기구를 구경하러 들리곤 했던 문구코너. 문구나 디지털용품 등 책 이외의 '부가적'인 것으로 취급 받던 상품들이 이제는 책과 비등할 정도로 서점을 장악했다. 뿐만 아니라 의류와 주방용품 등 생활 전반을 아우르는 상품들을 포섭하면서 서점은 '라이프스타일 편집숍'으로 변모했다. 볼 게 많아지고 살 게 많아질수록 사람들이 오래 머무르는, 개미지옥 전략이다.

서점의 변화에 대해 2018년 기준 관련 소셜 데이터 기반으로 분석한 보고서(서점의 변신: 책을 매개로 한 취향 '공간'으로의 재탄생)를 발표한 기관인 이노션 월드와이드 데이터커맨드센터의 이수진 팀장은 "이제 서점은 단순히 '책을 팔고 사는 공간'이 아닌 '책을 매개로 한 다양한 경험을 파는 공간'으로 변신했다"며 "새로운 콘텐츠가 늘어나고 소비문화 트렌드가 변화함에 따라 서점의 변신도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점 위기설'은 계속 나왔지만…

서점이 이렇게 주목받기 시작하다니, 독서율이 늘기라도 한 걸까? 현재까지 나온 통계치로 따지면 아니다. 

문체부가 2년마다 실시하는 '국민독서실태조사', 그 중 가장 최근 발표된 2017년 결과에 따르면 이 해 일반 도서(교과서, 학습참고서, 수험서, 잡지, 만화를 제외한 종이책)를 1권 이상 읽은 사람의 비율은 성인 59.9%, 학생 91.7%로 직전 조사 해인 2015년보다 각각 5.4%, 3.2% 감소했다. 성인 10명 중 4명은 책을 1권도 읽지 않았다는 소리다. 이 해 독서율은 조사가 처음 시작된 1994년 이후 역대 최저치다.

요즘 핫스팟으로 각광받고 있는 독립서점이 뜬 것도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동네책방들이 독립서점의 이름으로 트렌디하게 부활하고 있지만, 사실 이전까지는 사라지는 추세였다.

독서율 하락으로 출판 관련 산업 자체가 위기를 직면한 데다, 대형서점·인터넷 서점·전자책 등 가격과 다양성 면에서 따라갈 수 없는 경쟁상대들의 등장까지 맞물리자 영세한 동네서점들은 아연히 물러나야 했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1999년 4595개였던 동네서점이 2017년 2050개로 18년 만에 반토막 났다.

대형서점은 여전히 잘 될까?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출판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4년 기준으로 이미 온라인 서점이 대형서점을 넘어섰다. 이 해 출판사 거래처별 매출액에서 온라인 서점 비중은 28%로, 26%를 차지한 대형서점을 처음으로 제쳤다. 전년만 해도 대형서점 매출이 30%로, 온라인 서점이 차지하는 27%보다 높았다.

2016년 결과에서는 오프라인 서점 1802곳의 매출 총합과 온라인 서점의 매출액이 각각 1조3842억원과 1조3696억원으로 규모는 비슷했지만, 이는 전년 대비 0.3%와 15.7% 늘어난 수치로 온라인 서점이 오프라인 서점의 50배 넘는 증가폭을 보이며 두드러졌다.

그런가 하면 온라인 서점업계가 마냥 탄탄대로의 미래를 그릴 수 있는 건 또 아니다. 지난 11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9년 연간 온라인쇼핑 동향'에서 온라인 서적 구매 거래액은 약 1조9천억원으로 2017년과 2018년에 이어 늘긴 했으나, 증가율은 3.5%로 전년(8.3%) 대비 둔화한 모습을 보였다.

동네책방은 대형서점에 밀리고 대형서점은 온라인 서점보다 처지는 듯하지만, 사실 출판·유통업계 전체가 독서율 감소 추세와 도서정가제 등 안팎의 우환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 상황에서 침체된 출판시장의 점유율을 두고 치열한 내부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모 대형서점 관계자가 "내부에서도 사양산업임을 인정하는 분위기"라고 귀띔할 정도면 도서산업의 전망이 그리 밝아 보이지는 않는다. 여전히 출판영역은 사양산업이라는 냉소가 나오고, 독서인구 감소와 도서정가제 시행 등 출판·유통업계에 불리한 상황은 계속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서점들은 외연을 넓히는 모습이다.

책방이 언제부터 핫했나, 2016년부터 서점 수·관심↑

지난해 10월 정부가 대기업이 운영하는 서점 대상으로 신규 출점을 한 해 1개로 제한하는 규제 철퇴를 내리긴 했으나, 그 전까지 대형서점들은 출점 '전쟁'을 연상시킬 정도로 공격적인 확장세를 보였다. 특히 2016년 이후 2년여 간 교보문고와 영풍문고는 32개 점포를 열었는데, 이는 2018년 기준 이들 전체 매장 수인 71개의 무려 45%에 해당한다. 주로 복합쇼핑몰이나 대학교 내에 입점하는 방식으로, 당시 스타필드 하남 등 대형 복합쇼핑몰들이 잇따라 생기기 시작한 영향도 있을 것이라 풀이된다.

한편 '취향 저격' 독립서점들을 주목하라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현재 독립서점 수는 전국 500여 곳에 이르며 이 중 60%가 2016년 이후 문을 열었다. 애플리케이션 개발업체 퍼니플랜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운영 중인 독립서점 수는 2016년 180개에서 2018년 416개로 2배 넘게 증가했다. 또 신한카드 빅데이터 연구소는 작년 카드 이용내역 분석 결과 한 번이라도 독립서점을 찾은 인원은 5만명으로 2014년 1만3000명에 비해 4배 가까이 증가했다고 밝혔다.

   
▲ 서점에 대한 온라인 버즈량 추이. 제공=이노션 월드와이드 데이터커맨드센터

지난해 이노션 월드와이드 데이터커맨드센터의 분석에 따르면 서점에 대한 온라인 버즈량(언급 횟수)이 2017년부터 급격히 상승하면서 서점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지속되고 있다. 2016년에는 대형 온·오프라인 서점에 대한 언급이 많은 반면, 2018년에는 독립서점과 동네서점에 대한 언급량이 상대적으로 많아졌다.

   
▲ 서점에 대한 온라인 버즈 중 감성어 분석. 제공=이노션 월드와이드 데이터커맨드센터

특히 서점에 대한 온라인 버즈량에서 감성어를 분석한 결과 '예쁘다', '꿈꾸다', '가고 싶다', '행복하다' 등과 같은 표현들이 두드러졌다. 서점은 예쁘고, 가고 싶고,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꿈의 공간이 됐다.

큐레이션? 차별화된 컨셉이 답

   
▲ 서점 유형별 분류. 표=이코노믹리뷰 박민규 기자

지난해 신한카드 빅데이터 연구소가 발표한 '서점 유형별 이용고객 연령대 비중(2018년 기준)'에 따르면, 독립서점은 이삼십대가 79%의 압도적인 비율로 주 고객층을 형성했고 일반·대형서점은 이삼십대 51%, 40대 이상의 장노년층은 49%로 고른 연령대 분포를 나타냈다.

대형서점 경우 고정 고객도 물론 있겠지만 주로 주요 상권이나 번화가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유입되므로 고객층이 유동적이다. 독립서점은 SNS를 통한 인적 네트워크 형성으로 어느 정도 단골을 확보한 동시에 입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새로운 손님들도 많은 편이다. 대학가나 중고등학교 앞에 자리한 서점은 주로 인근 학교의 학생들이 찾기 때문에 고정된 고객층을 대상으로 한다고 볼 수 있다.

맞춤형 서비스를 찾는 시류에 따라 서점의 '큐레이션'도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대형서점은 전 영역의 서적을 유통하는 만큼 책 한 권 한 권에 대해 심도 있는 소개를 제공하진 못하지만, 대신 전 직원이 서비스 차원에서 얕고 폭 넓은 큐레이션을 제공하도록 교육하고 있다. 대략적인 제목, 저자, 내용 등 파편화된 정보로 책을 찾는 중노년층 고객이 독립서점이나 학교 앞 서점보다 훨씬 많은 편이기 때문이다.

   
▲ 충무로에 있는 한 서점은 '스페인 여행' 컨셉으로, 스페인에 관한 책이 90%를 차지한다.  사진=이코노믹리뷰 박민규 기자

독립서점은 그야말로 큐레이션에 사활을 걸었다. 서점 주인의 안목이 고스란히 반영되는 큐레이션은 그 서점만의 콘텐츠, 즉 가장 강력한 차별화 전략이다. 독립출판물·그림책·반려동물·도시생활·뮤지션 등 특정 분야 도서 위주로 취급해 서점의 컨셉을 정하고, 그 안에서 큐레이션을 극대화하고 있다.

학교 앞 서점 경우 책에 대한 큐레이션은 대형서점과 비슷하거나 보다 간결한 수준이다. 젊은층은 인터넷으로 미리 검색해 책 정보를 숙지하고 오기 때문에 책 추천이나 큐레이션을 따로 원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다. 대신 북카페를 겸하며 근처 학교의 동아리에 세미나 공간을 대여하는 등 주 고객층인 학생들을 겨냥한 특화전략을 펼치고 있다.

타깃층과 규모에 따라 서점들의 세부 전략이 갈리고 있지만 결국은 '차별화된 컨셉'을 구축하는 큰 노선에서 각각 살 길을 도모하고 있다.

박민규 기자 minq@econovill.com

기사승인 2020.02.19  13:17:54

<경제를 리뷰, 미래를 본다 © 이코노믹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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