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이미지투데이

[이코노믹리뷰=권유승 기자] “보험사 임직원들은 물론 설계사들의 수도 빠르게 줄어들 거예요.”

AI가 등장하면서 무인화 바람이 거세지고 있다. 보수적인 금융권의 대명사로 알려진 보험업계도 예외는 아니다. 보험업계에서의 AI도입이 언더라이팅(보험 계약 심사), 보험계약‧청구, 자동차보험 손해사정지원 시스템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는 신속하고 정확한 업무로 보험사와 고객의 편의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AI 활용은 수익성 악화에 비용‧업무 효율화가 절실한 보험업계에선 특히 거스를 수 없는 추세라고 관계자들은 전망한다.

설계사를 통하지 않고 직접 보험에 가입하는 보험소비자들도 늘고 있다. 포화된 시장 속 보험사들은 가성비(가격대비 성능)와 편의성을 중요시 하는 2030세대 고객층의 유치가 절실한 실정이다. 이에 셀프 보장분석 서비스는 물론 온디맨드형 상품(플랫폼을 활용해 소비자가 원하는 때에, 원하는 만큼의 보험 가입이 가능토록 설계된 상품)들을 속속 선보이며 고객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 보험금 간편청구 서비스 확대

보험금 청구가 간편해지고 있다. 보험사들은 무인시스템을 활용한 보험금 간편청구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특히, 가입자 3800만 명에 달하는 실손의료보험 청구 서비스가 전국의 병원으로 확대되고 있다. 실손보험 간편청구 서비스는 전자청구부터 자동송금까지 원스톱으로 가능하다는 점이 특징이다. 실손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진료증빙자료를 앱상에서 전자데이터(EDI) 형태로 보험사에 즉각 보낼 수 있다.

2018년 말 생명보험업계 최초로 실손보험 간편 청구 서비스를 도입한 NH농협생명은 지난달 삼성SDS가 선보인 블록체인 기반 ‘실손보험금 간편청구 서비스’를 적용했다. 별도의 앱을 깔지 않아도 카카오톡으로 보험금 청구가 가능한 이 서비스는 보험금 청구절차를 대폭 줄였다는 평가다. 농협생명은 지난해 11월에도 서울성모병원과 실손보험금 전자청구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맺기도 했다.

삼성화재도 삼성SDS의 실손보험금 간편청구 서비스를 도입했다. 삼성화재는 지난해 9월 헬스케어 스타트업 ‘레몬헬스케어’와 손을 잡고 실손보험 간편청구 서비스를 선보인 바 있다. 레몬헬스케어의 간편청구 서비스는 앱상에서 간단한 본인인증만으로 보험금 청구가 가능하다. 무인 키오스크나 진료증빙자료를 사진으로 찍어 보험사 제공 앱으로 보내야 하는 번거로움을 줄인 것이다. 레몬헬스케어는 삼성화재 외에도 KB손해보험, NH농협생명, 미래에셋생명 등의 보험사들과 제휴를 맺고 있다.

교보생명은 전국 8곳의 병원에서 보험금 자동청구 시스템 시범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이 시스템은 보험 가입 시 블록체인에 진료기록 송부 승인 정보를 기록하도록 했다. 고객은 보험금 청구 안내 문자의 확인 버튼만 누르면 보험금 수령이 가능하다. DB손해보험도 지난해 상반기 핀테크 업체 지앤넷과 업무협약을 맺고 실손보험금 청구 간소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보험금 간편청구는 보험사들에게도 득이 되는 서비스다. 복잡한 서류 작업 등을 줄일 수 있어 불필요한 비용이 절감되기 때문이다. 보험금 청구 과정에서 발생하는 민원도 줄어들고, 전산화 된 진료기록으로 과잉 진료와 보험사기 예방에도 효과적이라는 평가다. 환자 개인정보가 유출되거나 악용 위험이 높다고 주장하는 의료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보험사들이 간편청구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는 이유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실손보험금 간편청구는 고객뿐만 아니라 보험사 편의성도 올라가는 서비스지만, 진료수가 노출 등의 이유로 개인병원들의 반대가 심해 대형 병원 위주로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펫보험에도 보험금 간편 청구 시스템이 도입되고 있다. 보험개발원은 지난해 상반기 ‘반려동물 원스톱 진료비 청구시스템(POS)’을 구축했다. POS를 도입한 보험사의 펫보험 가입자는 별도의 서류 제출 없이 반려동물 진료 후 보장금액에 대한 보험금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보험개발원은 올해 진료비 청구DB 구축, 비문인식 및 전자차트 활용도 제고 방안 마련 등 반려동물 진료비청구 POS의 효율성을 증대시킨다는 방침이다. 앞서 메리츠화재의 경우 인투벳 전자차트 업체와 제휴를 맺고 자체적으로 펫보험 간편 청구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 AI 언더라이팅으로 업무효율성 증가

언더라이팅도 AI도입이 활발해지고 있다. AI 언더라이팅으로 보험심사와 질의응답에 걸리던 시간이 대폭 줄어들어 고객만족도와 임직원의 업무효율성이 상승하고 있다고 관계자들은 말한다.

교보생명은 자연어처리 및 머신러닝 기술(인간의 학습 능력과 같은 기능을 컴퓨터에 접목시킨 기술)을 적용한 인공지능 언더라이터 ‘BARO'를 개발해 활용하고 있다. 이 시스템은 언더라이터를 대신해 정해진 기준에 따라 보험계약의 승인 및 거절을 처리한다.

삼성화재도 지난해 9월 장기보험에 AI 계약 심사시스템을 적용했다. 기존에는 고객이 장기인보험 가입 시 가벼운 질병 이력만 있어도 심사자가 일일이 확인해 승인을 했어야 했는데, 이 시스템 도입으로 계약 심사자들의 추가적인 확인 없이 전산심사만으로도 가입 가능한 건들이 늘어났다.

장기재물보험에도 삼성화재가 보유한 수십 만 장의 사진을 바탕으로 학습된 AI 이미지 인식 모델이 적용돼, 가입설계 시 업종과 관리 상태에 대한 판단을 AI가 스스로 내릴 수 있게 됐다.

보험개발원은 AI기술을 이용한 자동차 수리비 청구, 손해사정 업무를 지원하는 AOS알파(자동차보험 손해사정지원시스템) 서비스 개발도 추진 중이다. AOS알파는 교통사고로 파손된 차량의 사진을 기반으로 AI가 손상된 부위를 판독해 수리비 참고견적을 자동으로 산출해 주는 시스템이다. 올해에는 1단계로 구축된 AOS알파 시범서비스를 보험사에 제공해 보상업무의 효율성 강화와 손해사정 품질 제고를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보험개발원 관계자는 “아직 확정은 안됐지만, AOS알파 시범서비스는 4월 이후에 적용 될 것으로 보인다”며 “손해사정 단계에서 비용을 절감하고 보다 효율화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 AI 보장분석 ‘활발’… 설계사들 사라질까

비대면 채널을 이용한 보험 가입자들이 늘어나면서, 셀프 보장분석 시스템도 등장하고 있다. 삼성화재는 보험 컨설팅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알파랩’을 운영 중이다. 알파랩의 ‘질병위험분석’은 고객의 생활습관‧가족력 등을 분석해 이에 맞춘 보험정보를 제공해준다. 인슈어테크 플랫폼 업체인 보맵, 리치플래닛, 디레몬 등도 보험사와 제휴를 맺고 자동 보장 분석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가성비와 간편함을 추구하는 2030 고객층을 잡기 위한 온디맨드형 보험상품도 잇달아 출시되고 있다. 온디맨드형 상품은 플랫폼을 활용해 소비자가 원하는 때에, 원하는 만큼의 보험 가입이 가능토록 설계된 상품을 말한다. 보험 개시‧종료를 스위치처럼 끄고 켜는 상품이 대표적이다. KB손보 ‘시간제 배달업자이륜자동차보험’, NH농협손해보험 ‘On-Off 해외여행보험’ 등이 해당한다. 디지털손보사 캐롯손보도 최근 ‘스마트ON 펫산책보험’ ‘스마트ON 해외여행보험’ 등 온디맨드형 상품을 선보였다.

이처럼 보험업계에 AI도입이 활발해지면서 보험사 인력감축이 심화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기준 생명보험협회에 등록된 설계사수는 10만9723명으로 2010년 3월(16만3532명) 대비 약 33% 줄었다. 손보협회에 등록된 설계사수 역시 지난해 10월 기준 17만1486명으로 2010년 3월(17만4380명) 대비 약 3000명 감소했다.

AI설계사의 출현도 예고되고 있다. 손보협회는 지난달 20일 기자간담회에서 가입설계부터 계약체결까지 보험판매 전 과정을 지원할 수 있도록 AI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당국이 AI를 활용한 보험설계·가입이 가능하도록 AI 프로그램의 활용요건 정의 등 운영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는 설명이다. 내년 초부터 규제샌드박스와 연계해 AI설계사를 통한 보험 모집 근거가 마련될 것으로 전망된다.

고정욱 한국보험보장연구소 소장은 “설계사들이 고객들의 질병, 재정 상태 등을 분석해 맞춤형 보장을 추천해 주는 것은 적지 않은 시간이 드는 일인데, 이 모든 것을 AI가 대체하게 되면서 향후 설계사들이 설 자리도 점점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