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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동진 칼럼 : CEO만 보세요] 마케팅 불변의 원칙 1 : 헷갈리면 이미 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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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최고의 제품을 사는 것이 아니라 ‘최고로 빨리 이해할 수 있는’ 제품을 산다. 마케팅 컨설팅 기업인 ‘스토리브랜드 StoryBrand’의 CEO인 도널드 밀러는 이렇게 말한다.

맞는 말이다. 특히나 나이가 들면서 더욱 그런 경향이 강해진 것 같다. 하다 못해 집 근처 마트에서 장을 볼 때도 좋아 보이기는 한데 뭔가 복잡하게 설명을 장황하게 해야 되는 그런 제품에는 잘 손이 가질 않는다. 우유, 치즈, 버터, 음료수, 맥주, 소주 같은 식료품들에 있어서도 미투 제품이나 라인 확장이 된 제품들이 너무 많다. 지방을 조금 줄였다거나, 탄산을 더 많이 첨가했거나, 알코올 도수를 좀 더 낮춤으로써 다양해진 고객의 입맛을 고려하고 있지만, 예나 지금이나 나의 쇼핑 패턴은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쇼핑의 목적은 필요한 좋은 물건을 싸게 사는 것이지만, 거기에는 여러 가지 옵션이 따른다. 그 옵션 중에서 오십 대 아재들의 첫 번째 사항은 빨리 끝내는 것이다. 일단 마트에 들어서기 전에 사야 할 제품들을 머릿속으로 떠올린다. 우유, 맥주, 치약, 세제, 고기 등등의 품목들을 고려하면서 재빠르게 매장을 한번 스캔 한다. 그 이유는 어떻게 이동하는 것이 최소한의 동선이 될까 하는 것을 염두에 둔다. 지나간 매대에 다시 되돌아오는 것이 사실 아무 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짧은 시간 꼼꼼하게 스캔을 하게 된다.

카트든 바구니든 간에 하나를 집어서는 생각했던 최소한의 동선으로 방향을 잡는다. 수없이 많은 매대가 펼쳐져 있고, 그 매대에는 같은 품목이라도 여러 기업의 제품들과 동일 기업의 라인 확장된 제품들이 집어가 주기를 학수고대하며 진열되어 있다. 하지만 아재의 손은 눈 보다 빠르다. 우유는 이거, 맥주는 저거, 치약은 그거, 세제는 요거 하면서 순식간에 상품들이 매대에서 카트 위로 떨어진다.

 

마트에서 아재의 손은 눈 보다 빠르다

아무 생각 없는 기계적인 선택처럼 보일 지 모르겠지만, 그 짧은 찰라의 시간에도 아재의 머리는 재빠르게 굴러간다. 그런 상황에서 ‘고소함은 그대로 살렸지만, 지방은 대폭 줄여 건강함을 …….’ 같은 복잡한 설명은 과감히 패싱된다. ‘지방이 반으로 줄었는데, 고소함이 어떻게 유지가 되나?’ 같이 번뜩이는 상황 판단에 지배된다. 거기서 살아 남는 제품은 한 눈에 확 들어오는 제품이요, 한번에 읽히고 재빨리 뇌리에 콱 박히는 상품이다.

가장 어려운 코스는 생선이나 육류를 파는 곳이다. 양파를 먹여 키운 돼지라든지, 콩을 먹인 소라든지 각 매대에서 확성기를 들고서 아우성치는 사람들이 맛을 보라고 권하지만, 아재의 눈은 육질이 붉고 선명하고 지방질이 골고루 잘 퍼져 있으면서도 가격이 저렴한 것을 향한다. 지리산에서 키웠네, 제주도에서 잡았네 하면서 빗발치는 그 속에서도 아재의 민첩함은 꺾이지 않는다. 단 몇 초간의 스캔으로 단위 무게당 가격을 속으로 비교하면서 매대 위에 진열된 고기의 상태를 점검하고선, 과감하게 접근한다.

“삼겹살 두 근만 주세요!” 아니면 “5명이 먹을 건데 수육용 고기는 얼마가 적당한 양인가요?” 정도면 멘트가 끝난다. 봉지에 담아서 카트에 던져지기까지 시간이라고 해 봐야 불과 이삼 분이면 상황 끝이다. 그런데 아재들은 그 짧은 시간마저도 엄청 긴 시간이라고 느낀다. 그래서 차라리 한우 등심 같은 포장육 코너가 더 홀가분하다. 특히 한우코너에서는 플러스가 몇 개나 되네 하면서 코너 직원이 열심히 떠들어대지만 아재의 귀에는 전혀 들어오지 않는다. 고기 상태를 보고 싸고 양 많으면 바로 선택이다.

그렇게 쇼핑을 후다닥 끝내고 사가지고 온 맥주 한 캔을 들고 TV 앞으로 앉는다. CF에서 선남선녀들이 ‘목 넘김이 좋다’는 둥, ‘천연 암반수로 물이 좋다’는 둥, ‘거품이 미세하고 풍부하다’는 둥 온갖 유혹의 맛을 눈과 귀로만 느낄 뿐이다. 그런 맛을 보기 싫어서가 아니다. 마트에서 고를 때나 식당에서 주문할 때도 몰라서 주문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가장 간단하고 확실하게 실행할 수 있는 것이기에 거기에 익숙할 뿐이다. 그래서 아재들은 오늘도 식당에서 이렇게 외친다. ‘카스처럼’ ‘테라처럼’ ‘이슬테라’ ‘이슬카스’ 귀차니즘의 결과일 뿐이다.

내가 맡았던 프로배구단이 요즘 연전 연승으로 수위를 달리고 있다. 승리했을 때의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자신감’이다. 하지만 졌을 때에는 그 변명 거리가 차고 넘치게 된다. 기본기에 충실히 훈련을 했지만 몇몇 선수들이 리시브가 불안해서 세터가 제대로 연결이 되지 못했다. 속공, 오픈, 퀵오픈, 파이프, 서브 등등 각각의 부분에서 체크해야 될 부분들이 생겨서 실패의 이유가 되는 말도 장황해진다.

독실한 배구팬의 입장에서 바라는 것은 딱 하나다. 수비와 공격 패턴은 어떤 것을 쓰더라도 이기는 경기를 하는 것이다. 실제로 아무리 찰거머리 같은 수비를 하거나 미사일 같은 서브에 상대 코트를 찢어버리는 스파이크를 때리더라도 패배한 경기를 원하는 팬들은 없다. 그 간단 명료한 숙제를 하기 위해 선수들, 코치진, 프론트가 골머리를 싸매고 오늘도 비지땀을 쏟고 있다.

 

욕심 때문에 자꾸 깜박하게 되는 ‘불멸의 진리’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은 좋은 스토리란 ‘인생에서 지루한 부분을 덜어낸 것’이라고 했다. 고객에게 전달되는 메시지 역시 지루함을 덜어내고 간단하면서도 와 닿고 반복 가능한 것일수록 좋은 것이라는 것은 불멸의 진리다.

쌍천만의 영화로 인기를 끌었던 ‘신과 함께’가 웹툰의 스토리 골격은 그대로였지만, 등장인물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특히 웹툰에서 스토리를 끌고 가는 주요 인물은 ‘염라국 국선 변호사 진기한’이다. 사람이 죽어 저승으로 가서 49일간 재판을 받게 되는데 그 재판 승패의 키를 쥔 인물이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이 중요한 캐릭터가 사라지고 그 역할을 강림도령 포함 삼차사가 함께 맡게 된다. 영화 개봉 직후 인터넷은 뜨거웠다. 가장 중요한 인물인 진기한이 영화에서 왜 빠졌냐는 것이었는데, 자칫 중복과 지루함이 될 수도 있는 부분을 과감히 덜어낸 김용화 감독의 결정이 빛을 발한 것이라 생각된다.

영화화 이전부터 웹툰을 정주행했던 나로서는 사실 많은 등장인물 중에서 가장 눈길이 가면서도 스토리에 힘을 실어주는 캐릭터가 진기한이라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영화화 되면서 스토리를 더욱 세련되고 전달성이 강하도록 하기 위해 아예 사라지는 초강수가 된 셈이고, 그런 저런 덕분에 영화는 시리즈 두 편이 엄청난 흥행을 불러왔다. 인터넷의 수많은 독자들이 나처럼 생각했었고, 누구라도 영화화 시점에서는 진기한이 주연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늘이는 것보다 차라리 줄이는 것이 더 현명한 방법이었다는 결론이다.

직장을 몇 번 옮긴 탓에 어쩌다 보니 석유화학, 건설, 전기전자, 유통, 바이오, 금융 등 거치지 않은 업종이 없을 정도다. 서비스 계통이 아니라 대부분이 제조업이고 본사 쪽 근무 위주였다. 그리고 적게는 열댓 개 정도에서 많게는 사십여 개의 계열 및 관계사를 가진 회사들이었는데, 그러다 보니 대외적으로 회사를 한 마디로 소개하는 것이 여간한 일이 아니었다. 사람을 만나건 자료에 기입하건 간에 넣고 싶은 내용은 많은데 비해, 듣거나 보는 사람이 단박에 알아들을 수 있도록 쉽고 간단하게 설명이 잘 되지 않았다.

예전에 모셨던 경영진 중에서 0.5미리 수성펜을 색깔별로 다 갖춰 놓고 일하시던 분이 계셨다. A4지 절반 정도의 짧은 보도자료를 들고 가면 붉은색, 푸른색, 녹색, 핑크색 등등의 수성펜으로 자료의 행간에 깨알 같은 내용을 추가해 주곤 하셨다. 추가 하기 위해서는 항상 접속부사를 남발할 수 밖에 없었는데, ‘또, 그리고, 게다가, 뿐만 아니라, 또한….’, 매번 대세에 지장은 없고 자료를 장황하게 만들어 글의 힘을 빼버리는 부가적인 내용들이 빽빽하게 채워졌다. 목까지 뭐라 하고 싶은 말이 올라오지만 꾹 참고, 행여나 못 알아먹을만한 글씨들은 한번 더 읽어 확인까지 하고 나서야 방을 나선다.

“아니, 이거 뭔 내용이에요? 읽어봐도 알 수 없는 복잡한 내용이 뭐 이리 많아요?”

“보도자료가 참고서도 아니고, 자료 한 두 번 써봐요?”

자료를 받은 기자들은 매번 똑 같은 불만을 토해냈다. 내가 왜 그렇게 자료를 쓸 수 밖에 없는 지 알면서도 기자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매번 쓴 소리 한번씩은 꼭 하고 넘어갔다. 그리고 그런 불만의 끝은 자료의 질에만 그치지 않고 회사의 일과 명성에 대한 지적으로 마무리되곤 했다. 기자가 헷갈리면 결과물로 나타난 기사의 질도 떨어지는 법이다. 깨알 같이 적힌 장황한 내용이 기사 내용에 포함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빨간펜 선생님이 유명했던 그 때, ‘칼라펜 선생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치지도 않고 빨간, 초록, 파랑 물을 들였다. 그 분은 몰랐을 것이다. 그게 자료의 질을 떨어뜨리고 결국 기업의 평가를 한 단계 낮추는 마이너스 요인이었다는 것을. 그 뒤에 다른 곳으로 이직하고 나서는 기자들의 평이 달라졌다. “이렇게 깔끔한 보도자료는 드물어요!” “이젠 거의 보도자료의 달인이세요.” 그러면서 어떤 언론사에서는 신입 기자들을 뽑았을 때, 취재해서 자료를 만들고 기사화 시기는 과정에 대한 강의까지 부탁을 해 오기도 했다. 제대로 진행했던 적은 없었지만 말이다.

인문계 출신의 담당들은 자기 스스로가 먼저 과학 원리를 이해하는 데에 애로가 많다. 여러 가지 화학원소가 복잡하거나 물리학의 법칙들을 쉽게 소화하지 못한다. 반면 이공계출신의 엔지니어들은 과학적인 내용은 잘 알지만 이를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쉬운 말로 간단히 설명하지 못한다. 제조업에서 커뮤니케이션 담당을 25년 정도 해 오면서 도움이 됐던 것은 이공계를 나온 것이었다. 기업의 기술은 곧 과학이라는 학문을 바탕으로 하기에, 복잡한 원리를 먼저 이해하고 쉽게 알려줄 수 있는 능력이 핵심이었다. 사람들은 음악은 기억에 남지만, 소음은 잊어버린다. 여러 가지 소리가 섞여 있으면 소음인데, 듣기 거북한 소리를 제거한 것은 음악이 된다. 아무리 많은 내용을 전달하고자 해도 혼돈스럽거나 기억에 남기 힘든 것이라면 소음만 못하다.

구동진 칼럼니스트·홍보인 expert@econovill.com

기사승인 2020.02.11  11: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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