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이가영 기자] 조선 강국인 한중일 3국에서 잇따라 초대형 조선사의 등장을 예고한 가운데 글로벌 조선업 왕좌탈환을 위한 치열한 싸움이 펼쳐질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규모의 경제에 기반한 가격경쟁이 펼쳐질 경우 누구의 우위도 예측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몸집 키우는’ 中 조선소… 2020년 세계 건조량 70% 목표

국가의 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어려움을 겪고 있는 조선업의 경기 침체를 극복하고 한국과 일본을 앞지르기 위해 분투 중이다. 난립해 있는 조선소들의 구조조정을 통해 몸집을 키우고 기술적 우위를 가진 품질 우위 조선소로 성장시키는 공급 개혁 전략을 지속적으로 펼쳐오고 있다.

2014년 우량 조선소 51곳을 선정해 집중 육성하는 ‘화이트 리스트(White List)’ 정책과 2017년 ‘선박공업 구조조정 심화 및 전환 업그레이드 가속을 위한 액션 플랜(2016~2020)’ 등이 대표적이다. 

이 같은 계획을 통해 2020년까지 조선업 글로벌 점유율 45%, 자국 상위 10대 조선기업의 건조량 점유율을 53.4%(2015년)에서 70%까지 높이겠다는 게 중국 정부의 구상이다. 

2016년 12월 중국원양해운(COSCO)과 중국해운집단(CSG)이 산하 조선소 13곳을 통합해 수주 잔량 기준으로 중국 1위, 글로벌 6위인 차이나 코스코조선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특히 지난해 11월에는 중국의 최대 국영 조선사인 중국선박공업(CSSC)과 2위 조선사인 중국선박중공(CSIC)을 합병시켜 중국선박공업그룹(CSG)을 설립, ‘매머드급 조선사’의 탄생을 알렸다.

 

합병으로 탄생하는 CSG는 세계 최대 조선소로 올라설 전망이다. CSG는 모두 147개 계열사를 거느리게 되며 종업원 31만 명, 자산 7900억위안(약 131조원), 연매출 5080억위안(약 86조원)을 확보하게 된다. 한국 조선 3사의 매출 총합을 2배 이상 웃도는 규모다.

또한 CSG의 건조량은 2018년 기준 총 1041만 톤으로 세계시장 건조 점유율은 20%에 이른다. 현대중공업그룹(757만 톤)과 대우조선(461만 톤)을 합산한 1218만 톤과 비교하면 177만톤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업계에서는 CSSC와 CSIC로 나뉘어져 있던 엔지니어들이 한 회사에 모임에 따라 벌크선 건조에서의 시너지 효과는 물론이고 고성능 선박의 개발도 가능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CSSC와 CSIC는 그간 벌크선 중심으로 건조를 진행해왔다. 그러나 최근 세계적인 가스 수요가 높아지면서 액화천연가스(LNG) 분야에 주력하고 있다. 특히 CSSC그룹에서는 후동중화조선이 세계 최대인 27만㎥ LNG운반선의 개발을 발표한 바 있으며, 강남조선도 22만㎥형 LNG선의 건조에 나서는 등 역량을 키워오고 있다. 

중국 정부는 양대 조선사를 합병하기로 한지 일주일 만에 추가로 국유 조선업체 3개사(CMIH·CIMC·AVIC INTL)의 합병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져 당분간 중국 조선업계의 합종연횡은 이어질 전망이다. 

日, 과거 성공경험 살려 ‘대형화’ 급물살

일본조선업은 2000년대 중반까지 세계 1위 자리를 차지했다. 그러나 2000년대 후반부터 한국조선사에 뒤쳐지기 시작했고 2011년부터 현재까지 한국조선사와 중국조선사에 밀려 줄곧 3위에 머물고 있다. 이에 뒤늦게나마 규모의 경제를 노리고 재편을 시도하는 모양새다. 

일본은 2013년 IHI마린과 유니버설조선을 합쳐 일본 2위 규모인 JMU(재팬마린유나이티드)를 탄생시키는가 하면 같은 해 미쓰비시중공업과 이마바리조선의 LNG 사업을 합병해 MI LNG를 출범시키는 등 구조조정을 통한 대형화에 성공했던 경험이 있다.

2018년 이마바리 조선이 자동차선과 석유제품운반선에 특화한 미나미니혼 조선 사업을 인수하기로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난해 11월에는 일본 최대 조선사인 이마바리 조선과 2위인 재팬마린유나이트(JMU)가 합병 수준에 버금가는 자본·업무제휴에 합의해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마바리 조선이 JMU의 증자 지분 중 최대 30%를 출자하는 방법으로 합병에 준하는 제휴관계가 이뤄질 전망이다. 합작회사의 출자비율과 사명, 향후 회사 운영방안 등 세부적인 사항은 오는 3월 발표할 예정이다.

두 회사는 올해 안으로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을 제외한 상선 대상 공동 영업·설계 회사를 설립하고 생산 체제 효율화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새로운 회사가 설립되면 건조 능력으로 세계 3위의 조선그룹이 탄생하게 된다. 

2018년 이마바리조선과 JMU의 조선 건조량은 각각 449만 톤, 228만 톤으로 둘을 합치면 세계 1위인 현대중공업(757만 톤) 실적에 가깝다. 

 

미쓰비시중공업 또한 일본 최대급 조선소인 나가사키 조선소 내 고우야기 공장을 일본 3위 조선업체인 오시마 조선소에 매각한다. 미쓰비시중공업과 오시마 조선은 2018년 연간 건조량 기준 일본 조선업계 4위와 3위 기업이다.

특히, 고우야기 공장은 미쓰비시중공업의 창업지인 나가사키에 1972년 설립된 곳으로 업계 내 상징적인 곳이다. 창업 때부터 유지해온 공장이라 적자가 지속되는 상황에서도 구조조정을 통해 유지해왔지만 더 이상은 힘들다는 게 미쓰비시중공업의 판단이다. 

실제 고우야기 공장은 액화천연가스(LNG)선이나 액화석유가스(LPG)선을 건조해왔다. 하지만 한국과 중국의 경쟁에 밀려 4년 넘게 수주가 끊기면서 지난해 9월 인양이 마지막이 됐다. 

미쓰비시중공업은 고우야기 공장 매각을 통해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등 대형 자원 운반선 사업에서 손을 뗀다는 구상이다. 대신 대형유람선(페리)·자위대 호위함 수리 및 건조사업 등에 집중할 방침이다.

연이은 통·폐합작업에도 일본은 여전히 중소형 조선업체 10여 개가 난립하고 있어 이들 기업 중심으로 추가 재편이 진행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대형화 세계적 추세… 고부가가치 선박 수주 경쟁 불가피”

이 밖에 싱가포르도 ‘대형화’ 물결에 동참했다. 싱가포르 정부의 재정부가 100% 소유하고 있는 싱가포르 투자기업 테마섹홀딩스는 싱가포르 거대 조선소 두 곳인 케펠과 셈코프마린의 합병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업계에서는 최근 미국에서 셰일 오일 생산의 급증으로 해양 석유 탐사자들이 경쟁하기가 어려워져 양사 모두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을 합병의 이유로 꼽는다. 

한국에서는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통한 ‘한국조선해양’ 설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글로벌 조선업계가 대형화에 나서는 것은 구조조정, 통·폐합을 통한 기술·자본 집중 등 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문제는 대형화에 따른 수주 경쟁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점이다. 

중국 조선소가 합병을 선언한 가운데 한국 조선소가 합병에 성공할 경우 결합된 4개의 조선소가 세계 시장의 거의 절반을 장악하게 된다. 이에 고부가가치 선박 수주를 위한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전 세계 조선업계가 재편에 나서는 것은 대형화 추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덩치를 키워야 한다는 위기감 때문”이라 설명했다. 이어 “특히 현재 중국과 일본은 벌크선 등의 발주가 줄어들면서 우리나라가 경쟁력을 갖는 LNG운반선, 대형 컨테이너선 등 고부가가치선 시장으로의 진출을 노리고 있는 상황이어서 향후 합병기업 간 수주경쟁은 불가피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