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상 주식회사의 ‘이사’와 ‘감사’는 주식회사를 실질적으로 운영하고 이를 감시해야 하는 중요한 지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규모 주식회사일수록 이를 가벼이 여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무적으로 보면 ‘오너’의 뜻에 따라 이사가 이사회에서 거수기 노릇을 하거나 감사가 감사로서 이름만 걸어놓고 실질적으로 감사업무를 전혀 수행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심지어 이사와 감사가 이사회 회의록에 날인할 자신의 도장을 주식회사, 보다 정확하게는 주식회사를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오너’에게 맡겨 놓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최근 우리 법원은 이사와 감사가 주식회사 운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고 실제 경영자와 대표이사의 전횡을 방치하는 것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묻고 있으며, 이러한 이사와 감사의 책임은 나날이 막중해지고 있는바, 최근 대법원 판례를 통해 다시 한 번 이 점에 대해 강조하고자 합니다(☞ 관련 기사 : 2019. 7. 23.자 [알쓸신판] 이사가 이사회에서 ‘거수기’ 노릇하다가는 큰코다친다).

# 주식회사 갑(甲)은 바이오신약 개발, 제조, 판매 등을 목적으로 설립된 법인으로 코스닥 시장 상장회사였습니다. A는 주식회사 갑(甲) 이외에도 여러 코스닥 상장사들을 차명 지분 등을 통하여 지배하는 실질적인 ‘오너’, 이른바 OO 그룹의 회장으로 주식회사 갑(甲)을 실질적으로 운영해 왔고, B는 2008. 8. 29.부터 2011. 3. 24.까지 주식회사 갑(甲)의 대표이사, C는 A의 지휘 아래 OO 그룹 업무를 총괄하여 왔습니다. 그러던 중 주식회사 갑(甲)은 의료사업을 위한 유상증자를 추진하여 주주들로부터 유상증자대금 23,154,920,740원을 납입 받았는데, A, B, C는 서로 공모하여 127억 1,000만원을 횡령하였고, 이로 인해 각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특가법) 위반으로 처벌을 받았습니다. 이후 주식회사 갑(甲)은 이 같은 A, B, C의 횡령행위로 2012. 8. 23. 상장폐지 되어 현재는 비상장회사가 되었습니다.

한편, 이 사건의 피고들은 A, B, C가 횡령을 할 동안 이사 또는 대표이사, 혹은 감사로 재직하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 횡령이 일어나는 동안 주식회사 갑(甲)의 이사회는 이사회를 위한 소집통지조차 이루어지지 않음은 물론 횡령 사건의 단초가 된 유상증자를 결의하는 내용의 이사회의사록 역시 피고들이 직접 출석하여 인장을 날인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같은 사실관계 하에서 주식회사 갑(甲)는 피고들을 상대로 피고들이 주식회사 갑(甲)에 대하여 손해배상하여야 한다는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상법상 이사가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 또는 정관에 위반한 행위를 하거나 그 임무를 게을리한 경우(제399조 제1항), 감사가 그 임무를 해태한 경우(제414조 제1항)에는 그 이사 및 감사는 회사에 대하여 연대하여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하여 항소심은 이 같은 사실관계만으로는 피고들이 이사나 감사로서 법령·정관 위반행위를 하였다거나 임무를 게을리하였다거나 또는 이와 같은 위반행위 등으로 주식회사 갑(甲)에게 상당인과관계가 있는 손해가 발생하였다고 보기 어렵다며 피고들의 손을 들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피고들은 상장회사인 주식회사 갑(甲)의 이사와 감사로 근무하였던 자들로, 그 근무기간 동안 한 번도 주식회사 갑(甲)을 위한 소집통지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실제 이사회가 개최된 적도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식회사 갑(甲)의 이사회에서 거액의 유상증자 안건을 결의한 것으로 이사회 회의록을 작성하고 그 내용을 공시하여 왔음에도 단 한 번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은 점, 특히 위 유상증자대금의 액수가 주식회사 갑(甲)의 자산과 매출액 등에 비추어 볼 때 그 규모가 매우 큰 점, 당시 주식회사 갑(甲)의 경영자인 A 등은 위 유상증자대금을 횡령하였고 이로 인해 형사 유죄 판결을 선고받았으며 결국 주식회사 갑(甲)이 상장이 폐지되기에 이른 점, 감사업무와 관련하여 회계감사에 관한 상법상의 감사와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상의 감사인에 의한 감사는 상호 독립적인 것이므로 외부감사인에 의한 감사가 있다고 해서 상법상 감사의 감사의무가 면제되거나 경감되지 않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피고들은 위 횡령 기간 중 주식회사 갑(甲)의 이사 및 감사로 재직하면서 주식회사 갑(甲)의 이사회에 출석하고 상법의 규정에 따른 감사활동을 하는 등 기본적인 직무조차 이행하지 않았고, A 등의 전횡과 위법한 직무수행에 관한 감시·감독의무를 지속적으로 소홀히 하였다고 할 것이고, 이러한 피고들의 임무 해태와 A 등의 유상증자대금 횡령으로 인해 주식회사 갑(甲)이 입은 손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도 충분히 인정되므로 주식회사 갑(甲)의 이사, 감사였던 피고들의 주식회사 갑(甲)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된다는 것입니다.

과거 ‘장식적 의미’로서의 이사 및 감사의 회사에 대한 감시의무는 이제 실질적으로 이사 및 감사가 이를 위반할 경우 민사적 책임까지 지게 되는 ‘실질적 의미’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 같은 감시의무는 비단 대표이사, 사내이사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사외이사라거나 비상근이사에도 부여 된다는 점(대법원 2008. 12. 11. 선고 2005다51471 판결, 대법원 2014. 12. 24. 선고 2013다76253 판결 등 참조), 상법상 감시의무 해태로 손해가 발생하는 것이 이사회의 결의에 의한 것일 때에는 그 결의에 찬성한 이사에게도 책임이 있고, 결의에 참가한 이사로서 이의를 한 기재가 의사록에 남아 있지 않으면 그 결의에 찬성한 것으로 추정되어 결국 같은 책임을 질 수 있다는 점(제399조 제2항, 제3항)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