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ad87
ad78
ad79
ad74
ad95

고 구자경 LG명예회장 타계...LG 기업사 새삼 '관심'

아름다운 이별

공유

[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구자경 LG명예회장이 14일 오전 향년 94세를 일기로 별세한 가운데, 한 시대를 풍미한 거목을 향한 추모의 물결이 일고있다. 실제로 이낙연 총리는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구자경 먕예회장님의 명복을 빈다"면서 "회장님께서 1980년대 정부서울청사 뒤편 허름한 ‘진주집’에서 일행도, 수행원도 없이 혼자서 비빔밥을 드시던 소박한 모습을 몇 차례나 뵀다"고 말했다. 고인의 소탈함을 추모하며 떠나간 역사를 기억한 셈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도 논평을 내고 "경제계는 한국 경제성장의 산 증인이자 LG그룹을 세계적인 반열에 올려놓으신 구자경 회장님께서 별세하신 데 대해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말했다.

네티즌들도 추모의 행렬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네티즌들은 "국민기업 LG를 만든 명예회장님을 기억하겠습니다" "당신과 같은 시대를 살았던 것에 감사함을 느낍니다"며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 LG그룹의 깃발이 휘날리고 있다. 출처=뉴시스

글로벌, 기술, 그리고 인화
고 구자경 명예회장은 아버지 고 구인회 창업회장의 6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1945년 진주사범학교를 졸업 후 교사의 길을 걸었으나 1950년 LG화학의 전신인 락희화학공업사에 입사하며 경영인의 길을 걷는다.

고인은 글로벌 LG의 초석을 마련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1982년 미국 알라바마 주의 헌츠빌에 세운 컬러TV공장은 국내기업 최초의 해외제조거점이며 호남정유와 미국 칼텍스의 합작, 금성통신과 지멘서의 만남을 끌어내며 일찌감치 글로벌 시장을 겨냥하는 혜안을 보여준 바 있다.

고인이 생전에 남긴 어록에 글로벌 LG의 비전이 고스란히 답겨져 있다. 고인은 2012년 저서 <오직 이 길 밖에 없다>를 통해 "초창기부터 오늘날까지 우리 그룹은 개척자적 의지로 국내에 불모지였던 화학과 전기·전자, 에너지 산업을 선도해 왔으며, 이를 통해 국민경제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LG의 기본 마인드는 개척정신이며, 이를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에 답이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세계 최고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서 배우고, 거기에 우리의 지식과 지혜를 결합하여 철저하게 우리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말도 남겼다. 글로벌 시장에 도전하며 배울 것이 있으면 무조건 배우고, 이를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고인은 기술대국의 꿈을 꿨던 경영인으로도 역사에 남았다. 1983년 전경련 최고경영자 특강 당시 고인은 "기술우위를 통해서 앞서가는 제품을 만들어 내고, 품질에 대한 신뢰를 심어 나감으로써 시장을 개척해 나가는 것이 기업성장의 요체라는 생각한다"면서 "기업활동이라는 것이 하루 이틀하고 끝낼 일이 아니라면 역시 연구개발을 바탕으로 해서 끊임없이 새로운 제품을 기업화하고, 그 제품들이 품질면에서나 가격면에서 소비자들의 요구를 충족할 수 있도록 하는데 노력을 집중해야 기업이 영속적으로 살아 남고 꾸준히 성장할 수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또 1984년 그룹 내 본부장 과정 교육 특강을 통해서는 "연구개발이란 기술개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측면 내지는 자세의 측면이 포함되어 있다. 끊임없이 자기혁신을 추구하는 자세, 미래지향적으로 문제에 대처하는 태도, 능동적으로 자기개발을 꾀하는 노력같은 것이 모두 여기에 포함되어 있는 내용"이라면서 "연구개발심이 없다면 결국 스스로 발전을 포기하고, 나아가서 생존마저 팽개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인화의 LG라는 초석을 마련한 것이 바로 고 구자경 명예회장이다. 고인은 1986년 LG 관리자 연수회에서 "창업 이후 자랑스럽게 지켜온 인화단결의 이념은 바로 전략경영시대에 있어서도 변함없는 우리의 정신적 바탕이다. 전략경영의 전개과정에서 인화는 인간중시의 경영, 소비자를 알고 존중하는 경영, 나아가 국민을 알고 위할 줄 아는 경영, 더 나아가 인류의 장래에 기여하고자 하는 정신을 포용하는 세계화의 전략경영 이념"이라고 말했다.

1982년 그룹사보를 통해서는 "기업에 있어서 가장 원천적이며, 또한 최종적인 요소는 역시 ‘사람 그 자체’다. 연구개발을 통한 기술혁신이 기업발전과 국민경제 발전의 가장 큰 동인이지만, 모든 이노베이션을 추구하는 주체는 두말할 나위 없이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또 1984년 신임경영자 과정에서는 "기업의 성장은 그 기업을 구성하고 있는 인적인 요소와 질적인 요소의 결합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문제는 결국 사람이다"고 말했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고인은 1988년 인화원 개원식에서 "기업은 인재의 힘으로 경쟁하고 인재와 함께 성장한다"고 말했으며 2012년 저서를 통해서는 "인재란 ‘그 시대에 필요한 능력과 사명감으로 꽉 찬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서 본인이 생각하는 LG 인재상을 정립하기도 했다. 또 저서를 통해 "인재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도 아니며, 시간이 지난다고 자연히 육성되는 것도 아니다. 많은 노력을 들여 체계적으로 육성해야 인재가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으며 "사람이 곧 사업이다. 물건을 만들고 사업을 잘하려면 사람부터 길러 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 고 구자경 명예회장이 보인다. 출처=뉴시스

LG, 잡음없는 '대기업'
고 구자경 명예회장의 작고를 기점으로 LG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는 가운데 업계에서는 '잡음이 없는 LG'가 새삼 조명받고 있다.

실제로 LG는 다른 대기업과 달리 내부의 잡음이 거의 없다. 특히 승계 과정에서 다른 대기업들은 빈번하게 '형제의 난'이 벌어지고는 했으나 LG는 이 부분에서 사실상 무풍지대다.

일각에서 경직된 유교문화의 잔재라는 비판도 나오는, LG 특유의 장자승계원칙과 관련이 있다. 

LG그룹의 창업주인 고 구인회 회장은 1969년 갑작스럽게 병을 얻어 그해 12월 향년 62세로 숨을 거둔다. 이 과정에서 구인회 창업주의 동생인 구철회 락희화학 사장이 보여준 처신이 눈길을 끈다. 그는 형인 구인회 창업주 상태가 날로 악화되던 시기 동생들과 조카들을 불러 자신은 경영승계에 관심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며 창업주의 첫 째 아들인 구자경 당시 부사장이 그룹을 맡아야 한다고 못 박았기 때문이다. 이후 자신은 LG그룹 경영에서 완전히 물러난다.

구철회 사장의 자손들은 1999년 LG화재를 그룹에서 독립시킨 LIG그룹을 이끌고 있다.

고 구자경 명예회장에서 고 구본무 회장으로 이어지는 승계도 잡음이 없었다. 1995년 2월 고 구자경 회장은 나이 70이 되던 해 경영권을 당시 50대이던 장자 고 구본무 부회장에게 넘겼기 때문이다. 그러자 고 구자경 명예회장의 두 형제는 즉각 LG 경영에서 손을 뗐다.

3대에서 4대로의 승계도 잡음이 없다. 고 구본무 회장은 불의의 사고로 첫 째 아들을 잃자 장자승계원칙을 고수하기 위해 현 구광모 회장을 양자로 입적하고, 현재 구광모 회장은 LG그룹의 4세대 경영을 맡고 있다. 이 과정에서 고 구본무 회장의 동생이던 구본준 현 고문은 역시 경영에서 손을 뗐다.

물론 3대에서 4대로 이어지던 시기 한 때 구본준 현 고문의 비중이 LG그룹 내에서 상당했던 것은 사실이다. 구본준 고문은 2016년부터 형인 고 구본무 회장 타계 직전까지 그룹의 대소사를 챙기며 일선에서 진두지휘를 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고 구본무 회장이 소위 70세 룰을 깼기 때문에, 재계 일각에서는 구본준 고문의 광폭행보를 바탕으로 LG의 장자승계원칙이 지켜지지 않을 수 있다는 말도 나온 바 있다. 그러나 LG의 선택은 결국 장자승계원칙이었다.

한편 고 구자경 명예회장의 타계로 구씨와 허씨 양가의 오랜 동업관계도 아름다운 이별로 끝나게 됐다. 고인의 부인인 하정임 여사가 2008년 이미 타계했기 때문이다. 두 가문의 결별은 이렇게 별다른 잡음없이 진행되었으며, 재계에서는 '국내 기업의 귀감'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최순실 비선실세 논란 당시 LG와 관련된 이슈가 상대적으로 없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승계구도에 있어 정부에 아쉬울 것이 없었기 때문에 청탁할 이유도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LG가 최순실 비선실세 논란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당장 LG는 미르재단과 K스포츠 재단에 총 78억 원을 기부해 삼성과 현대차, SK에 이어 4번째를 기록했다. 그러나 삼성은 이재용 부회장 승계구도, SK는 최태원 회장 사면, 롯데는 형제의 경영권 분쟁, 한진그룹은 법정관리 이슈 등이 존재했으나 LG는 굳이 비선실세에 청탁할 것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협력하면 협력하고, 떠나갈 때는 '아름다운 이별'을 추구했던 사풍이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LG의 모든 이별이 아름다웠던 것은 아니다. 삼성과는 약간의 껄그러움이 있다.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와 고 구인회 LG그룹 창업주는 경상남도 진주의 지수초등학교에서 책상을 맞대고 수업을 듣던 죽마고우다. 두 사람은 유년시절을 함께 보내며 성장했고, 친목이 상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은 이후 현재 KBS2TV의 전신인 동양방송을 공동으로 설립했으며 이 창업주의 차녀 이숙희 씨와 구 창업주의 삼남인 구자학 씨가 백년가약을 맺으며 사돈을 맺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고 이병철 창업주가 일본 산요와 협력해 삼성전자 설립을 추진, 당시 국내 전자산업을 장악하던 금성사를 위협하며 아름다운 동행은 깨어지고 만다. 그 과정이 극적이다. 고 이병철 창업주의 장남인 고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의 저서에 따르면 1968년 고 이병철 창업주와 고 구인회 창업주가 안양골프장에서 만났고, 현장에서 고 이병철 창업주는 고 구인회 회장에게 삼성의 전자산업 진출 소식을 알린다. 그러자 크게 실망한 고 구인회 창업주가 굳은 얼굴로 자리를 뜨고, 고 이병철 창업주는 "붙잡지 않으십니까?"라고 묻는 고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에게 "전자사업은 우리 삼성그룹의 비전이야. 구 회장은 그릇이 큰 사람이니 이해해 줄 것이다"라고 말한다.

공교롭게도 두 회사의 전자전쟁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LG전자는 최근 IFA 2019 현장에서 삼성전자의 QLED TV가 진정한 차세대 TV가 아니라는 주장을 펼쳤고, 이에 삼성전자가 발끈하며 치열한 난타전이 벌어지는 중이다. 그 중심에는 삼성전자의 이재용 부회장과 LG그룹의 구광모 회장이 벌이는 기싸움이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최진홍 기자 rgdsz@econovill.com

기사승인 2019.12.14  23:11:12

<경제를 리뷰, 미래를 본다 © 이코노믹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최진홍 기자 의 기사더보기

ad96
ad81
인기뉴스
ad103
ad100
ad101
ad73
ad88
ad61
ad90
ad62
ad91

헤드라인

ad63
ad92

중요기사

ad98
ad64

최신기사

ad99
ad67
default_side_ad1

최근 전문가칼럼

ER TUBE

1 2 3 4 5
item52
default_side_ad2
ad36

피플+

1 2 3
set_P1
1 2 3
item49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ad57
default_setNet2
ad67
ad84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