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국내 인터넷 및 스타트업 업계에서 역대급 '딜'이 나왔다.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이 독일 기반의 글로벌 배달앱 플랫폼인 딜리버리히어로와 연합해 아시아 시장 개척을 13일 선언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우아한형제들과 요기요의 딜리버리히어로는 사실상 한 몸이 된다. 

우아한형제들과 딜리버리히어로는 최근까지 잦은 충돌을 빚은 바 있다. 배민장부 논란이 대표적이다. 우아한형제들이 배민장부의 기능을 확장해 점주들이 타 플랫폼의 매출 정보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는 기능을 추가하자 딜리버리히어로가 즉각 반발하고, 결국 적정한 선에서 논란을 잠재운 일도 벌어진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딜리버리히어로가 국내 기준 우아한형제들을 사실상 흡수하고, 김봉진 대표가 키를 잡은 상태에서 양측이 공동으로 글로벌 시장 진출에 나서는 장면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김봉진 배달의민족 대표의 과감한 결단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 김봉진 대표가 대담에 나서고 있다. 사진=최진홍 기자

적과의 동침? 아시아 시장 개척!
우아한형제들에 따르면 요기요의 딜리버리히어로는 우아한형제들의 기업가치를 40억달러로 평가한 후 국내외 지분 87%를 인수한다는 방침이다. 힐하우스캐피탈, 알토스벤처스, 골드만삭스, 세쿼이아캐피탈차이나, 싱가포르투자청(GIC) 등이 가진 우아한형제들 지분을 딜리버리히어로가 가져간다는 뜻이다. 또 김봉진 대표를 포함한 우아한형제들 경영진이 보유한 지분 13%도 딜리버리히어로 본사 지분으로 전환된다.

우아한형제들 외부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최상의 엑시트가 현실이 됐다. 이는 김 대표 등 우아한형제들 경영진에게도 마찬가지다. 김 대표는 딜리버리히어로의 경영진 중 개인 최대 주주가 되며, 본사에 구성된 3인 글로벌 자문위원회의 멤버가 된다는 설명이다.

놀라운 일이다.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은 지금까지 국내 배달앱 시장에서 요기요와 배달통을 운영하는 딜리버리히어로와 치열한 경쟁을 펼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아한형제들의 지분이 모두 딜리버리히어로에 넘어가며 사실상 한 몸이 됐다. 국내 시장에서 배달의 민족과 딜리버리히어로가 서비스하는 요기요 및 배달통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독자 운영되지만, 모기업 기준으로 보면 합병과 다름이 없다.

김봉진 대표는 국내 배달의민족 운영에서 손을 뗀다. 대신 최고기술책임자(CTO)인 김범준 부사장이 사령탑을 맡는다는 설명이다. 김 부사장은 주총 등을 거쳐 내년 초 CEO에 취임할 예정이다. 김 부사장은 카이스트 전산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엔씨소프트, SK플래닛 등을 거쳐 2015년 우아한형제들에 합류한 인사다.

이번 딜로 국내 배달앱 시장이 요동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우아한형제들과 딜리버리히어로는 아시아 시장 개척을 위해 집중한다는 설명이다. 우아한형제들과 딜리버리히어로 최고 경영진은 13일 서울 강남 모처에서 만나 글로벌 진출을 위한 파트너십 계약서에 서명했으며, 이에 따르면 양측은 50대 50 지분으로 싱가포르에 합작회사(JV)인 ‘우아DH아시아’를 설립하기로 했다.

국내 배달의민족 경영에서 손을 떼는 김 대표가 합작회사의 회장(Chairman)을 맡는다. 배달의민족이 진출한 베트남 사업은 물론 딜리버리히어로가 진출한 아시아 11개 나라의 비즈니스를 모두 총괄한다는 설명이다. 딜리버리히어로는 현재 대만, 라오스, 말레이시아, 방글라데시, 싱가포르, 태국, 파키스탄, 필리핀, 홍콩 등에서 배달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양 측은 이번 딜을 통해 5000만 달러(약 600억 원)의 혁신 기금을 설립하기로 했다. 이 돈은 푸드테크 분야에 있는 한국 기술 벤처의 서비스 개발 지원에 쓰인다. 한국에서 성공한 음식점이 해외로 진출하려 할 때, 시장 조사나 현지 컨설팅 지원 비용으로도 사용된다. 또, 라이더들의 복지 향상과 안전 교육 용도로도 쓰일 예정이다.

▲ 합작회사의 개념. 출처=우아한형제들

"역대급 딜...이유는?"
우아한형제들은 최근까지 국내에서 딜리로 통칭되는 로봇 경쟁력과, 이를 아우르는 푸드테크 기업으로의 비전을 모색한 바 있다. 나아가 국내 스타트업 업계의 큰 형님으로 활동하며 업계 선순환 생태계 조성에 큰 역할을 수행했고, 이를 바탕으로 배달앱 시장을 크게 키웠다. 요기요와 배달통의 딜리버리히어로는 배달의민족에 맞서는 라이벌이자, 함께 시장을 키우는 파트너로 활동했다.

업계에서는 국내 시장 기준으로, 딜리버리히어로가 배달의민족을 사실상 흡수하는 장면에 주목하고 있다.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막대한 수익을 내는 엑시트가 성공했고, 무엇보다 김봉진 대표 등 주요 경영진들의 성공적인 엑시트가 회자되고 있다. 지금까지 국내 스타트업 업계에서 성공적인 엑시트 사례가 종종 나오기는 했으나, 딜리버리히어로와 같은 글로벌 사업자와 연결된 국내 스타트업 업계 엑시트 사례로는 '엄청난 파격'이라는 평가다. 이는 스타트업 생태계 선순환 구조, 즉 창업과 경영 및 엑시트로 이어지는 성공방정식의 중요한 사례로 여겨진다.

업계 1위 배달의민족의 우아한형제들이 2위 요기요와 3위 배달통을 보유한 딜리버리히어로에 흡수되는 것도 놀라운 일이다. 이는 합작회사로 대표되는 글로벌 시장, 즉 아시아 시장 진출을 위한 두 기업의 의기투합이 있었기에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김 대표가 맡는 우아DH아시아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이미 우아한형제들은 베트남 시장에 진출해 글로벌 전략을 타진하고 있었으나, 명확한 반등 포인트는 찾지 못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 연장선에서 협업하게 된 딜리버리히어로는 독일을 기반으로 하는 글로벌 사업자라는 강점이 있으며, 이미 아시아 시장에서 나름의 성과를 내는 중이다. 이러한 두 기업이 김 대표를 중심으로 힘을 합쳐 아시아 시장 진출을 선언한 것은 그 자체로 기념비적인 일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국내 스타트업, 그것도 플랫폼 기업이 글로벌 동종업계 기업과 협력해 아시아 시장 전체를 겨냥한 점이 눈길을 끈다. 지금까지 국내 ICT 기업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할 때는 한류열풍을 바탕으로 콘텐츠 사업에 집중하거나, 혹은 블록체인과 같은 완전히 새로운 기술로 승부를 거는 일이 잦았다. 네이버의 라인을 제외하고는 국내 ICT 플랫폼이 글로벌 시장에서 두각을 보이거나 시장 진출을 시도하는 사례는 거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배달앱 '플랫폼'을 운영하던 우아한형제들이 김봉진 대표라는 상징적인 인물을 바탕으로 글로벌 플레이어와 협력해 외부 아시아 시장을 노리는 장면은, 성공여부와 별도로 의미있다는 평가가 중론이다.

김봉진 대표의 결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우아한형제들 관계자는 "김 대표는 평소 국내 시장만큼 아시아 시장에도 비전이 있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면서 "국내 인터넷 업계에서 보기 어려운 토종 기업의 인수합병으로는 역대최고인 만큼, 이후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국내 배달앱 시장이 많은 경쟁자로 인해 격변의 시기를 보내는 것도 김 대표의 결단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말이 나온다.

실제로 현재 국내 배달앱 시장은 '느닷없는' 춘추전국시대다. 글로벌 온디맨드 플랫폼 사업자인 우버의 우버이츠가 배달앱 시장에 진출했으나 전격 철수한 가운데, 쿠팡을 비롯한 네이버, 카카오 등 다양한 사업자들이 속속 주요 플레이어로 뛰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쿠팡은 소프트뱅크의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수익성과는 별개로 국내 이커머스 시장 전반까지 장악하고 있다.

그 연장선에서 우아한형제들은 큰 부담을 느꼈다. 업계 관계자는 "배달의민족은 토종 애플리케이션으로 국내 배달앱 1위에 올랐지만, 최근 일본계 거대 자본을 등에 업은 C사(쿠팡으로 추정)와 국내 대형 IT플랫폼 등의 잇단 진출에 거센 도전을 받아왔다"면서 "일본계 자본을 업은 C사의 경우 각종 온라인 시장을 파괴하는 역할을 많이 해 왔다. 국내외 거대 자본의 공격이 지속될 경우 자금력이 풍부하지 않은 토종 앱은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는 게 IT업계의 현실이기 때문에 이 같은 위기감이 글로벌 연합군 결성의 형태로 나타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사실 배달의민족과 쿠팡의 악연은 지독한 편이다. 쿠팡이 쿠팡이츠라는 배달앱 서비스를 준비하며 1위 사업자 배달의민족을 무너트리기 위해 '꼼수'를 부렸다는 의혹이 있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두 사업자는 국내 배달앱 시장을 두고 지속적으로 충돌했고, 최근 쿠팡은 막강한 자금력으로 배달의민족이 지키고 있는 시장 점유율을 갉아먹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우아한형제들 입장에서는 자금력으로 무장한 쿠팡의 국내 시장 흔들기에 버티는 것 보다, 차라리 동종업계와 손을 잡고 아시아 시장 진출을 타진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잊을만 하면 시작되는 '배달앱 때리기'도 이번 결단에 영향이 있다는 말도 나온다. 특히 정치권에서는 전가의 보도처럼 배달앱 플랫폼이 과도하게 골목상권을 침해한다는 주장이 나왔고, 최근까지 배달의민족은 광고 상품과 관련된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배달의민족은 다양한 상생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지만 선한 의도는 모두 묻히고 자극적으로 포장된 '플랫폼의 횡포'만 부각된 바 있다.

한편 김 대표는 아시아 배달앱 시장에서  공교롭게도 '반' 소프트뱅크 전선의 선봉에 설 분위기다. 김 대표가 의장을 맡은 합작회사는 앞으로 아시아 배달앱 시장에서 그랩, 우버이츠, 고젝과 경쟁해야 하며, 이들 경쟁자는 모두 소프트뱅크의 투자를 받은 기업이기 때문이다. 예전의 우버와 비슷하다. 우버는 소프트뱅크가 투자한 디디추싱, 그랩, 올라 등과 치열하게 경쟁하며 한 때 반 소프트뱅크 전선의 선봉에 섰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우버는 이후 소프트뱅크에 대주주 자리를 내어주며 지금은 함께 움직이고 있다.

넘어야 할 산은 있다
국내 앱 서비스는 여전히 독단적으로 진행되지만 우아한형제들이 딜리버리히어로에 흡수되고, 김봉진 대표가 합작회사의 의장이 되어 아시아 시장 진출을 타진하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있는 시도다. 그러나 넘어야 할 산은 많다.

먼저 김 대표가 증명해야 할 것이 있다. 김 대표는 국내 배달앱 시장은 물론 국내 스타트업 업계의 입지전적인 인물이지만, 아직 글로벌 시장 경영능력은 입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외국은 한국과 상황이 크게 다르기 때문이 난관이 예상된다. 다만 우아한형제들 관계자는 "아시아 시장에서도 배달의민족이 국내 시장에서 보여준 성공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면서 "김 대표의 과감한 승부수가 아시아 시장에서도 통할 것이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합작회사에서 함께 움직이는 딜리버리히어로가 글로벌 사업자며, 이미 아시아 시장에서 사업을 영위하며 관련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는 점도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국내 시장 기준으로 보면, 배달의민족과 요기요 및 배달통 내부의 혼란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개별적으로 움직인다는 설명이지만 배달점주 입장에서 플랫폼 담합 이슈가 불거질 소지도 있다. 나아가 최근 딜리버리히어로의 요기요에서 라이더 처우 개선에 대한 논란이 여전하다는 점도 배달의민족 입장에서는 부담이고, 무엇보다 지분의 80% 이상이 해외 투자자였으나 엄연히 국내 스타트업으로 활동하던 배달의민족이 딜리버리히어로에 흡수되는 것을 '국부유출'로 보는 시각도 있을 전망이다. 또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의장을 수행하는 김 대표가 국내 스타트업 업계에 거리를 두며, 이 과정에서 코스포의 힘이 크게 빠질 수 있다.

가장 큰 논란은 공정위 이슈다. 국내 시장 기준으로 배달의민족, 요기요, 배달통이 하나의 모기업을 가질 경우 시장 독과점 분쟁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최악의 경우 합병승인 절차에서 논란이 나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