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물이었다. 이야기, 그러니까 서양철학의 시작 말이다. 때는 기원전 6세기, ‘서양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탈레스’는 세상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게 되었다. 그가 이런 궁금증을 가지게 된 이유는 정확하지 않지만 아마도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으리라 추정된다.

첫째. 기존의 세계관, 즉 신화적인 세계관만으로는 세상만사를 모두 설명하기 어려워졌다. 제우스와 헤라가 다툼을 하면 천둥이 친다거나, 포세이돈이 화가 나서 폭풍우가 몰려온다는 이야기로는 납득 안 되는 일들이 많았던 거다.

둘째. 고민할 시간이 생겼다. 그가 살던 지역인 밀레토스는 소아이아 이오니아 지방에 한 항구도시였다. 이곳은 상업이 매우 발달한 도시였으며, 사람들이 부를 축적할 기회도 많았다. 다시 말해, 먹고 살만 해져 의식주를 벗어난 주제를 고민을 할 시간이 생겨난 것이다.

이러한 고민을 한 탈레스는 항구도시 출신답게 이 세계가 ‘물’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 즉 세상이 특정한 물질로 구성되어 있다는 입장은 탈레스를 비롯한 여러 초기 그리스 철학자들의 주요 사고방식 중 하나이다. 이들은 세계가 특정 물질의 응축이나 기화 등을 통해 형성된다고 생각했다. 탈레스가 그 물질로 물을 지목한 이유는 확실하지 않다. 정확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식물이 물을 머금고 자라나는 모습, 인간을 비롯한 동물에게 있어서 물의 중요성 등을 떠올렸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이후 사람들은 ‘세상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내놓았다. 탈레스는 물이라고 했고, 누군가는 공기라고 했으며, 불이나 흙을 이야기한 사람도 있었다. 엠페도클레스는 이러한 의견을 종합해 모든 물질이 물과 불, 공기, 흙이라는 4가지 원소들의 합성물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는 사물이란 네 가지 기본 원소의 비율에 따라 서로 형태를 바꿀 뿐, 어떤 사물도 새로 탄생하거나 소멸하지 않는다고 여겼다. 

지난 주말, 개봉 17일만에 천만 관객 반열에 오른 영화 <겨울왕국2>를 보았다.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비밀의 숲은 물, 불, 흙, 공기(바람)이라는 네 가지 정령이 지키는 공간이다. 2500년도 더 지난 서양 초기 철학의 사고관이 오늘날의 영화에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그뿐이랴. 뤽 베송 감독의 대표작 <제5원소>는 엠페도클레스의 네 가지 물질에 ‘사랑’이라는 하나의 모티브를 더해 이야기를 구성하였으며, 압델라티프 케시시 감독의 영화 <가장 따뜻한 색, 블루>는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의 사상을 토대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철학의 쓸모에 대해 종종 질문을 받는다. 답은 다양할 것이다. 철학이 삶의 어떠한 선택을 하는 데에 도움되기 때문일 수도 있고, 철학자가 자신의 답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살펴보며, 내 고민에 대한 지평의 확장이 가능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나는 이런 답들에 소박한 답 하나를 더 추가하고 싶다. 바로 ‘철학은 삶을 조금 더 풍성하게 만들어준다’고 말이다.

앞서 언급한 것 외에도 수많은 영화, 소설, 미술에 철학적 사고가 녹아들어가 있다. 그것만으로도, 어쩌면 인문학을 공부할 이유는 충분하지 않을까? 당신의 빡빡한 현실에 윤활유가 되어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