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코 조인 금융자산연구팀장이 6일 열린 기업구조조정 활성화를 위한 공동 세미나에서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양인정 기자

# 투자자 A는 지난 2010년 광주지방법원에서 회생절차에 들어간 식품회사에 대해 2억원의 신규자금을 투자했다. 회사는 이 투자금으로 직원들의 밀린 월급을 지급하는 등 운영자금으로 사용했다. 법원은 회생절차에서 회사의 채무상환계획서를 승인했다. 4년 후에 회사의 경영에 문제가 생겼다. 매출상황이 나아지지 않으면서 회사가 채무상환계획대로 채무를 상환하지 못했다. 법원은 회사의 회생절차를 폐지시키고 파산절차로 전환시켰다.(견련파산) 신규자금을 투자했던 투자자는 회사의 파산절차에서 투자금을 전부 회수하지 못할 상황이 됐다. 회생절차에서 투자한 돈은 파산절차에서 최우선 회수권을 보장하는 법규정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후 법원은 투자자 A와 다른 우선 채권자들이 회사가 가진 자산을 나눠서 가지도록 했다. 

△파산선고 당시 회사가 가진 현금 1억8300만원 △우선 채권자들의 받을 돈 5억3600만원△신규자금 투자자 받을 돈 2억원

[이코노믹리뷰=양인정 기자] 투자자가 회생회사에 신규자금을 투자한 후 회사가 파산절차로 전환하더라도 법률해석상 투자금에 최우선 회수권이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청주대학교 박승두 교수는 6일 캠코 양재타워 20층 기업구조혁신지원센터에서 열린 '기업구조조정지원 활성화'주제로 열린 공동 학술 세미나에서 이와 같이 주장했다. 

그동안 투자업계와 구조조정 업계는 파산절차에서 DIP파이낸싱에 대한 회수 보장 규정이 없어 회생회사에 대한 투자가 어렵다고 봤다. DIP파이낸싱은 법정관리 기업에 대한 투자기법이다. 

학술대회에서 나온 박 교수의 주장은 투자업계의 시각과 달라 주목됐다. 투자업계는 법률개정이 있어야 DIP 투자환경에 개선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채무자회생법에는 회생절차와 파산절차를 규정하고 있다. 파산절차 규정에는 DIP투자금 회수에 대한 우선권 보장규정이 없다. 회생절차 규정에서 DIP투자금의 우선권을 보장하는 것과는 다르다. 

사례와 같이 회생회사는 파산절차로 전환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회생절차에서 신규자금을 투입한 채권자는 회사가 법정관리에 실패에 파산절차로 전환됐을 때, 우선 회수할 법적 근거가 없다.

또  파산당시 회사가 가진 자산으로 채무를 다 갚을 수 없을 때 신규자금 투자자는 다른 채권자들과 나눠 가져야 한다. '다른 법에서 우선권 줘야한다는 규정'이 있더라도 마찬가지다. 사례가 그런 경우다.

현재 채무자회생법의 개정 움직임도 이런 배경에서 이뤄지고 있다. 회생절차에서 DIP신규투자를 했다면 회사가 파산절차로 갔을 때 최우선 회수권 조항을 명확히 넣어야 한다는 게 그것이다.

청주대학교 박승두 교수(오른쪽)가 DIP투자자 투자금 회수 우선권에 대한 주제를 발표하고 있다. 왼쪽은 좌장을 맡은 이광택 국민대 명예교수. 사진=이코노믹리뷰 양인정 기자 

박 교수는 법률의 개정이 없어도 현행 법률의 해석상 DIP투자자의 보호는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가뜩이나 어려운 회사에 기술력 등을 감안해 위험을 무릅쓰고 투자를 했는데 회수할 근거가 없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법을 통일적으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라는 것.

박 교수는 "법정관리 회사가 신규자금 차입이 절실히 필요해서 회생절차에서 회수의 우선권을 줬는데 그것을 파산절차에서 아무 규정이 없는 것처럼 해석하면 채무자회생법의 입법취지는 유명무실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박 교수는 "법에는 다른 법률에서 회수의 우선권을 줬더라도 파산절차에서는 다른 채권자와 나눠 갖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는데, DIP신규투자는 다른 법에서 우선권을 준 것이 아니고 같은 채무자회생법에서 우선권을 준 것"이라며 "이 경우는 회수의 최우선권이 있는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법원이 이렇게 해석하지 않으면 회생기업에서 투자받은 돈으로 파산절차에서 빚잔치를 하는 불합리가 생긴다는 점도 비판했다. 

박 교수는 "채무자회생법상 DIP 금융지원채권에 우선권을 부여한 취지는 회생회사의 효율적 회생을 지원하기 위하여 대여채권의 회수를 확실히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며 "따라서 DIP 금융지원채권에 대해 준 우선권은 회생절차에서만 인정하고, 파산절차에서는 배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주제발표에 이어진 토론에서는 역시 명확한 입법은 필요하다는 의견에 힘이 실렸다.

법률해석으로 파산절차에서 DIP투자자 보호가 가능하더라도 명확한 법률규정이 없으면 재판과정에서 법리 논쟁을 벌여야 하고 그 자체가 DIP투자심리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현재 국회에는 채이배 의원(바른미래당)이 발의한 채무자회생법이 본회의에 상정됐다. 해당 법안은 지난달 21일 법사위 법안 소위에서 회생절차에서 투자받은 DIP자금은 회생회사가 파산절차로 가더라도 최소한 임금채권과 동일순위로 보호 받아야한다는 내용으로 논의됐다.

정부는 지난 7월 기업 구조조정을 자본시장 중심으로 개편하기 위해 기업구조혁신펀드를 단계적으로 5조원까지 늘린다는 계획이다. 

CRO제도는 법정관리 기업에 가장 많이 적용하는 제도다. 자료=서울회생법원

◆ “회생기업 CRO만 잘 활용해도”...투자유치, M&A 다리역할하는 CRO

이날 포럼에서는 CRO의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CRO(Chief Restructuring Officer)는 회생기업의 구조조정을 감독하는 임원이다. 구조조정 감사인 셈이다. 기업이 법정관리 결정을 받으면 법원은 CRO를 파견한다. 기업이 처음 겪는 법정관리 절차에서 지근거리에서 돕는 CRO의 역할은 크다.

CRO는 회생절차에서 다양한 역할을 해왔다. 이들은 감사업무이외에도 채권단과 소통, 법정관리 기업에 대한 조력, M&A에서 가교역할, DIP파이낸싱을 유치하고 있다. 

앞서 송인서적은 CRO가 채권단,임·직원, 법원의 가교역할로 순조롭게 M&A에 성공했고 무기장착 조준경 제조업체인 동인광학 등은 회생절차에서 있었던 세무조사를 받았으나 CRO의 활동으로 위기에서 벗어나기도 했다.

전문성을 갖춘 직역으로 법정관리 기업이 회생을 졸업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만 처우가 문제라는 지적이다.

주제발표에 나선 '중소기업을 돕는 사람들'의 안청헌 박사(전 송인서적 CRO)는 "회생절차에서 CRO의 관여가 없는 곳을 찾기 어렵다"면서도 "금융권 등에서 전문적인 경험을 쌓아 현장에 파견되는 CRO에 대한 임금은 재능기부에 준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안 박사는"CR0가 회생기업에 대해 DIP투자를 유치하거나 M&A 성공에 기여한 것이 크다면 이에 대한 보상도 이뤄져야 회생기업의 성공에 견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법원의 회생절차 규정에 따르면 M&A성공시킨 법정관리인은 특별보수산정에 관한  세칙에서 정하는 기준에 따라서 보수를 지급하고 있으나, CRO에 대해서는 아무런 규정이 없다. 

CRO에 대한 역할은 지금보다 더 넓어져야 한다는 주장이 이어졌다. 

안 박사는 "회생회사에 내에서 CRO의 지위를 명확히 해야 한다"며 "향후 CRO가 법정관리 문서에 대한 검토권한이 강화되어야 하고, 금융과 회계지식이 있는 만큼 법원이 회생계획안 작성 권한도 부여할 수 있는 환경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미국은 CRO집단으로 구성된 구조조정 컨설팅 회사가 대기업과 중요기업의 회생절차에서 팀으로 파견해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대표적인 구조조정 컨설팅 회사로 알릭스 파트너스(AlixPartners), 알바레츠 앤 마샬(Alvarez & Marsal), 에프티아이 컨설팅(FTI Consulting) 등이 있다.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이 밖에도 채무자회생법의 최근 쟁점과 전망(최우영 변호사), 4차 산업혁명과 사회법 쟁점(노상헌 한국사회법학회 회장), 캠코의 기업구조조정 성과와 역할(조인 캠코 금융자산연구팀장)이라는 주제가 발표됐다. 

학술대회의 좌장은 국민대 법과대학 명예교수인 이광택 한국ILO협회 회장이 맡았다. 

학술대회를 주관한 캠코는 이번 학술대회에서 나온 내용 가운데 기업 구조조정 업무에 반영할 수 있는 부분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캠코의 조인 금융자산연구팀장은 "채무자회생법의 최우선 회수권 문제 등 제도상 한계가 투자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점은 캠코도 마찬가지"라며 "캠코의 투자가 아직 단계적 수준이지만 학계와 업계의 제도상 논의가 활발해져 투자환경이 개선되기를 희망하는 취지에서 이번 학술대회를 주관하게 됐다"고 말했다. 조 팀장은 이어 "학술대회에서 나온 여러 주제들을 취합해 향후 투자업무와 제도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