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마존 출신들이 재계 곳곳에 포진하며 제프 베조스가 만든 아마존의 경영 방식을 자신의 회사에 접목하고 있다.     출처= The Verge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주식회사 라첼(Latchel Inc.)은 시애틀에서 주택 유지보수 서비스를 제공하는 직원 20명의 3년된 스타트업이다. 이 회사는 인근에 있는 대기업 아마존과 비슷한 것이 많다. 특히 이 회사의 14가지 리더십 원칙은 아마존의 원칙과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그것은 우연이 아니다. 라첼 공동 창업자 윌 고든은 아마존에서 거의 3년간 근무했다. 그리고 많은 아마존의 전직 임원들이 그랬던 것처럼, 고든도 몇 년 전 아마존을 떠날 때 ‘고객 집착’(customer obsession)이나 ‘행동 성향’(bias for action) 같은 아마존의 경영 방식을 자신의 회사에 그대로 따왔다. 그는 제프 베조스의 경영 복음을 전세계에 퍼뜨리는 아마존 디아스포라(diaspora)의 한 명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미국에서 CEO 양성소로 알려진 곳은 제너럴 일렉트릭(GE)이었다. GE의 전성 시절에 이 회사에 근무하며 엄격한 경영 프로그램을 거친 GE 출신 임원들은 이후 홈디포, 3M 같은 또 다른 대기업을 창출했다.

그러나 이제 빅테크 시대에 아마존이 GE 대신 CEO 인큐베이터가 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아마존 출신들이 재계를 약진하고 있다. 클라우딩 컴퓨터 회사 태블로 소프트웨어(Tableau Software), 의류 전자상거래 회사 주릴리(Zulily Inc.), 상인과 소비자를 연결해주는 지역상거래 사이트 그루폰(Groupon Inc.), 그리고 스페인 BBVA 은행의 온라인 뱅킹 사업부 심플(simple) 등 아마존 출신들이 이끄는 회사는 모두 나열하기가 힘들 정도다.

콘텐츠 스트리밍 사이트 훌루(Hulu), 전자상거래 플랫폼 베리숍(Verishop Inc.), 대마초 회사의 원조격인 리플리 홀딩스(Leafly Holdings Inc.), 트럭 운송 소프트웨어업체 콘보이(Convoy Inc.) 등 수 많은 스타트업도 배출했다.

아마존 윤리의 핵심은 직원들로 하여금 계속해서 혁신하고 전통적인 방식에 도전하도록 격려하는 공격적 스타트업 사고방식이다. 일부 아마존 출신들은 여기에 한 술 더 떠, 동료애보다 기술을 선호하는 고용 관행 등 아마존의 가혹한 문화까지 받아들인다.

아마존은 입사 지원자를 면접할 때, 사회적 결속력을 무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동료들과 잘 협력할 수 있는 능력보다 다른 특징을 더 높이 평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아마존 출신들이 아마존의 문화를 그대로 답습하는 것은 아니다.

라첼의 고든 CEO도 처음에는 그 교리까지 받아들였다.

"우리도 그런 식으로 사람을 채용하려 했지만 그것은 큰 실수였습니다. 우리는 능력은 있지만 팀과 잘 지내지 못하는 한 직원을 해고해야 했지요. 적은 인원이 일하는 스타트업에서 개인의 사회적 결속력이 필요하고 서로를 좋아하지 않으면 안되니까요.”

▲ 전자상거래 업체 줄리의 사장이 된 제프 유르시신도 아마존에서 14년 동안 일한 베테랑이다.    출처= Zulily

지난해 의류 할인 판매에 주력하는 전자상거래 업체 줄리의 사장이 된 제프 유르시신도 아마존에서 14년 동안 일한 베테랑이다. 그도 처음에는 아마존의 채용 방식을 그대로 도입했지만 이젠 조금 달라졌다.

"더 공감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마존은 25년 동안 직접적인 의사소통에 보상을 해왔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극단전인 높은 기준은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정 떨어지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아마존의 문화를 그대로 복제하려는 노력은 성공의 비결이 아닙니다.”

아마존의 그런 문화는 지금은 세계 최고 부자 중 한 사람이 된 창업자 제프 베조스가 만든 것이다.

잭 웰치는 20년 간 CEO겸 회장으로 GE를 다스리면서 회사에, 성과가 낮은 직원들을 걸러내는 직원 평가 시스템과, 부진한 사업부는 '개선해서 매각 아니면 철수한다’(fix, sell or close)라는 소위 웰치즘(Welchism)을 불어넣었다. 웰치가 물러났을 때 웰치 밑에서 경험을 쌓은 인물들은 수 십 개 회사의 수장이 되었고 GE는 임원급 인재를 찾는 회사들이 가장 선호하는 광산이었다.

이제 아마존이 세계에서 가장 큰 기업 중 하나로 부상함에 따라, 베조스도 회사 경영의 권위자(guru)가 되었다. 투자자들이 버크셔 해서웨이 워런 버핏 회장의 편지를 연구하는 것처럼, 대학의 경영학 전공자들은 베조스가 주주들에게 보내는 연례 편지를 공부한다.

베조스는 '아마존에서는 매일이 사업 시작 첫 날'이라는 철학을 내세우며, 직원들에게 혁신을 중단하거나 현실에 안주하지 말 것을 촉구한다. 그의 아이디어는 기본적으로 미국에서 두 번째 로 큰 8700억 달러의 회사를 스타트업처럼 행동하도록 하는 것이다.

아마존에서 18년 근무하다가 2018년에 수렵꾼이나 야외 활동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디지털 지도 제작 회사 온엑스맵스(onXmaps Inc.)를 창업한 로라 오비다스는 아마존의 채용 기법 일부를 자신의 회사에 접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자신이 아마존의 리더쉽 원칙이 몸에 밴 나머지 아이들에게도 무심코 “얘들아, 그게 바로 행동을 취하는 성향이야”라고 말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행동 성향의 원칙에 따르면, 많은 결정과 행동은 번복될 수 있기 때문에 리더들은 신중하기 보다는 속도가 중요하며, 의사 결정을 내리기 위해 많은 연구까지는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아마존 출신들이 회사를 떠나는 이유는 그들이 더 이상 승진할 수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아마존에서 임원에 오르면 대개 정년까지 장기 근무를 하는 경향이 있다. 아마존의 소비자사업부 대표를 맡고 있는 52세의 제프 윌케는 입사 20년차를 맞는 아마존의 터줏대감이다. 아마존 웹서비스 대표를 맡고 있는 앤디 재시도 22년 이상 아마존에서 근무했다. 18명으로 구성된 아마존의 임원진에는 좀처럼 공석이 나오질 않는다.

윌케 대표는 “많은 리더들이 아마존에 계속 머물기를 바라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이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 위대한 것들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마존을 떠난 사람들이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팀 스톤은 아마존에서 20년을 보낸 후 스냅챗 모회사인 스냅(Snap Inc.)의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옮겼다. 그러나 스톤은 스냅의 문화와 맞지 않았다. 그가 스냅의 에반 스피겔 CEO를 거치지 않고 이사회로 직접 찾아가 자신의 급여 인상을 요구하면서 문제가 터졌다. 그는 현재 스냅을 나와 포드자동차의 CFO로 일하고 있다.

댄 루이스가 디지털 화물 네트워크 콘보이(Convoy)의 사업 모델을 개발했을 때, 그는 시애틀 커피숍에 있는 테이블 메모지 뒤에 자신의 사업이 어떻게 고객 혜택(더 낮은 운송료)과 결합될 것인지를 요약한 원형 도표를 그렸다. 그는 베조스가 25년 전 아마존 사업 모델을 스케치하기 위해 냅킨을 사용했다는 아마존의 전설을 익히 들어왔다. 현재 콘보이의 가치는 27억 5000만 달러(3조 2000억원)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윌케 대표와 베조스 CEO는 이 회사의 개인 투자자들이다.

아마존에서 7년 동안 근무했던 케이트 칸이 쇼핑 플랫폼 베리숍을 창업하면서 아마존으로부터 가장 먼저 가져온 것도 무료 당일 배송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