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태국 방콕을 처음으로 다녀왔습니다. 우리보다 작은 체구에, 햇빛에 그을린 얼굴들, 선한 얼굴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높은 기온 탓인지 급한 일이 없어 보였습니다. 방콕 근처 국립 공원 내에 있는 숙소에서 해가 지고 주변을 산책했습니다. 모처럼 부는 바람결에 남국의 온갖 냄새가 실려 왔습니다. 인기척에 놀라 무더기로 날아가는 새들, 넓은 잔디밭을 차지하고 있는 몇 마리의 개들.. 사위가 어두워지니 참 많은 소리들이 들려 왔습니다. 신과 만나는 방법 중 하나가 자연과 접하는 것이라던데, 그렇듯 자연과의 자연스러운 많은 만남으로 신과 가까운 선한 얼굴들이 많이 보였던 건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십여 일을 동행한 후배 친구와는 밤낮으로 붙어 지내다보니 알고 나서 이제까지 나눈 얘기보다 더 많은 분량의 얘기를 나눈 듯 했습니다. 그런 얘기들 중 작년에 후배가 대학 친구들과 태국 북쪽 치앙마이 지역으로 트레킹과 관광을 갔었던 여행 얘기가 많은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네 친구가 동행했는데, 치앙마이 주변 관광에 나섰을 때의 얘기였습니다. 치앙마이 주변 높은 산에 사찰이 있고, 거기에 전망대가 있어 올라갔는데, 치앙마이 공항이 발아래로 펼쳐져 있더랍니다. 그렇게 잠시 조망을 끝내고 다른 장소로 이동하려는데 한 친구가 거기에 붙박이처럼 있는 것을 발견했답니다. 사연을 들어보니 자기는 어릴 때부터 비행기 조종을 하고 싶었답니다. 그걸 잃어버린 세월이었는데, 그 자리에서 어린 시절 꿈을 찾았다고 감격스러워 했다고 하네요. 다른 일정 취소하고 한참을 더 보겠다고 해서 친구들이 애를 먹었다고 하면서 말이죠. 그를 잘 아는 친구들이야 잠시 잠깐이면 지나갈 일이라 생각하고 다음 일정을 생각했겠지만, 조금 떨어져 그런 모습을 그려보는 나로서는 후배 친구가 한편으로 애잔하게도 생각되어졌습니다. 물론 잃어버린 꿈과 조우한 친구가 그래도 다행이란 생각이 더 컸습니다. 그러며 이번 여행 때문에 가지 못한 연주회가 생각되어졌습니다.

가끔 연주회에 갑니다.

성악가, 연주자, 연주 단체 등 음악과 관련된 소식도 예의 관심 있게 보게 됩니다.

연주회를 앞두고 음악가를 소개한 얼마 전 기사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지음(知音) 50년..’

맞는 어법인지는 차치하고, 소개한 연주자가 음악을 한지 50년이 되었다는 것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고, 내용이 전해졌습니다. 그런 식의 소개에 연주자에 대해 부쩍 관심과 무한 신뢰가 갔습니다. 연주회에도 가보고 싶어졌는데 태국 여행과 겹쳐 못가고 말았습니다.

그때 문득 내게도 그 ‘지(知)’자(字)를 붙여 세월을 논한다면, 어떤 단어가 어울릴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선 지생(知生), 지생 60년. 단지 살아온 나이를 말하는 게 아니라, 사는 것을 안지 60년이라 생각하니 자신이 없게 느껴졌습니다.

지관(知關), 지관 30년. 사회생활 시작하며 사람과 관계, 세상과 관계 맺기를 말하면 어떨까요? 이 역시 자신이 없어집니다. 과거는 말할 것도 없이 지금도 사람과, 세상과 관계 맺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그렇다면 지행(知幸), 지행 초년병은 어떨까요?

행복을 알아가는 마음을 배우기 시작한 걸로 말이죠.

아스라한 옛날 꿈이 성공이 아니라 행복한 마음을 주었던 걸 기억하고,

나를 위한 ‘지행 초년병’으로 말입니다.

올해가 제대로 된 ‘지행 1년’차라도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