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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금융피해 포럼] 日 대부업 역사로 본 동아시아 빚 문제

채무자는 왜 금융'피해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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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시노 다이스케(西野大輔) 아키타현 변호사회 회장이 지난 9일 아키타에서 열린 제10회 동아시아 금융피해 교류 및 포럼에서 개회인사를 하고 있다. 니시노 회장은 "수년전 한국에 갔을 때 TV에서 일본 대부업체의 익숙한 광고 음악을 들은 적이 있다"며 "그 당시 한국이 일본보다 대출이자가 높았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일본 대부업체가 친숙한 광고 전략으로 대출을 장려해 한국에서 다중채무자가 많이 생겼다"며 "포럼을 통해 각 나라의 상황을 인식하고 대응 방안을 공유해 결속력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사진=교류회 이시이 히토시(石井 寿)씨 제공

[이코노믹리뷰=양인정 기자] “우리는 이 포럼에서 과중한 채무를 짊어진 사람을 ‘피해자’라고 한다. 그것은 법과 사회적 환경 때문에 생긴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10년간 일본사회의 빈곤과 다중 채무자에 대한 연구에 몰두한 오오야마 사야(大山 小夜)교수가 ‘채무자’를 규정하며 던진 일성(一聲)이다.

그가 말하는 빚의 사회적 문제란 빚을 지는 것이 개인의 책임만으로 돌릴 수 없다는 의미다. 오오야마 교수는 “개인의 채무는 법률이나 제도, 규범이 관계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는 금융산업이 미치는 영향이 크다. 동아시아의 대부산업의 기조 속에서 개인의 금융피해를 조명하겠다는 것이 오오야마 교수의 시선이 모이는 지점이다.

일본 킨조가쿠인(金城学院)대학에서 사회학을 가르치는 오오야마 교수는 일본 사회에서 파산 신청 건수가 급증할 무렵 다중채무(두 곳이 이상의 빚을 진 경우)문제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지난 2009년 간사이 사회 학회에서 ‘일본의 다중 채무 운동과 개정 대금업법’에 대한 연구 발표를 시작으로 ‘다중채무자의 구제활동’, ‘한국의 소비자 신용과 다중 채무 문제’ 등 빚 관련 논문을 냈다. 그는 금융소비자의 피해자성을 규명하는 데 노력해 왔다. 2014년 일본 NPO(비영리기구)학회 우수상을 수상했다.

오오야마 교수는 지난 9일 제10회 동아시아 금융피해 교류 및 포럼에서 기조연설자로 나서 ‘동아시아 다중 채무 대책의 전개’라는 주제로 연단에 올랐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시작된 그의 연설 내용은 묵직했다. 그는 빚 문제에 있어서 일본의 지난 40년과 한국· 대만의 지난 10년을 연결 짖고 조명했다. 앞으로 동아시아 빚 전문가와 금융피해자가 연대를 강화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다.

   
오오야마 사야(大山 小夜)교수가 포럼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교류회 이시이 히토시(石井 寿)씨 제공

◆ 탐욕적 日대부업의 탄생

포럼에서는 동아시아의 대중채무자에 대한 빚과 빈곤 문제의 해결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오야마 교수는 이 같은 문제 해결에 앞서 동아시아를 관통하는 빚 문제의 원인을 규명했다. 동아시아의 빚 문제에는 그 대척점에 있는 채권자, 특히 일본의 대부 산업을 이해하는 것이 선행된다.

이날 포럼에서 발표된 오야마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일본의 대부산업이 더 이익을 내기 어려운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대부업이 동아시아에 진출했다. 이와 동시에 한국, 대만 등 동아시아의 금융피해도 확장됐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일본은 지난 1955년부터 1972년까지 실질 경제성장률이 연평균 10%가 넘는 고도 경제 성장기에 있었다. 1965년까지 일본 국민의 가계 소비 지출은 2배 가 넘었다. 사람들이 돈을 많이 쓰고 있었지만 정작 은행은 개인 대출 시장에 관심이 없었다. 이 시장을 파고든 것이 대부업체였다.

대부업체들은 돈을 갚을 수 있는 샐러리맨을 주요 고객으로 삼아 돈을 빌려줬다. 사람들은 ‘샐러리맨 금융’이라는 이름에서 이를 ‘사라킨(サラ金)’이라고 불렀다. 과도한 사라킨은 사회문제로 이어졌다. 극심한 빚 독촉이 성행했고 급여 생활자들은 직장을 잃고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가족과 동반으로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일본사회는 ‘사라킨 지옥’이 됐다.

일본의 시민사회가 이 문제를 좌시하지 않았다. ‘전국 사라킨 문제 대책협회회’가 결성됐고 정부를 상대로 대부업체에 대한 법규제에 나설 것을 주장하는 운동이 펼쳐졌다. 1983년의 일이었다.

이런 시민사회의 운동에도 일본의 대부업체는 1987년에 이르러 기업화 전략을 구사했다. 대금업자였던 이들은 금융회사, 신용판매회사, 카드회사로 변모했다. 개인 금융을 도외시 했던 은행이 대부업체의 기업화에 편승해 개인 대출시장으로 눈을 돌린 것도 이 무렵이었다. 1991년 일본의 거품 경제가 붕괴되면서 은행은 몰락했고 개인 대출시장은 대부업체가 장악했다.

   
지난 40년간 일본의  금융대부와 대출채무자, 가계저축율 동향.  오야마 교수는 2000년을 전후에 일본의 대부업이 포화상태에 이르고 법률규제가 강화되면서 동아시아 진출을 꽤했다고 설명했다.  자료=오오야마 사야 교수 제공

◆ 동아시아는 왜 ‘빚’으로 연대했는가...“약탈 금융의 바이러스는 국경이 없다”

2000년대 전후 일본의 대부업체가 전성기를 맞이하고 포화상태가 됐다. 더 이상 수익창출이 어려워졌다. 일본의 파산신청 건수는 극에 달했고 삶을 포기하는 비극적 사례는 줄지 않았다. 대부업의 규제는 점점 강화됐다. 대부업체의 금리는 연 40%에서 29.2%로 인하됐다. 일본 대부업체가 한국 시장을 타깃으로 진출하게 된 이유 중 하나다.

오오야마 교수는 이날 “일본에서 오랜 시간 금융상품을 팔아온 대부업체들은 노하우와 자금력으로 한국의 대부업체를 압도했다”고 말했다. 당시 한국에서는 내수 진작의 명목으로 무분별한 카드발급이 문제 돼 카드대란까지 발생한 상황이었다. 채무자들은 카드를 돌려막다 막다른 길에서 대부업체를 찾았다. 한국에서 채무자의 금융피해는 이렇게 시작됐다. 일본의 크레시라 대협이 “알게 된 이상 행동해야 한다”며 국제 교류부회를 결성한 것도 이때다.

   
주빌리은행 홍석만 사무국장(왼쪽 두번째)이 포럼 3섹션에서 한국 다중채무자의 자립지원에 대해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양인정 기자 

대만에서는 다른 양상으로 일본의 대부자본이 침투했다. 1980년대만의 정치, 경제의 자유화를 계기로 은행이 과잉 신설됐다. 일본의 대부업체는 대만의 은행과 업무 협약을 체결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진행했다. 대만의 은행법으로 일본의 대부업체가 직접 사업을 할 수 없었기 때문.

당시 대만에서는 열차 역사 안이나 대형 판매점에 화려한 은행의 무인 기계가 즐비했다. 2006년 대만정부가 공표한 통계에 따르면 다중 채무자의 숫자가 노동 인구의 5%까지 올라갔다.

오오야마 교수는 일련의 이와 같은 전개를 ‘금융피해의 수출’이라고 이름 지었다. 대부업자의 탐욕이 금융이라는 이름을 장착하고 바다를 넘어 개인의 삶을 지배했다는 것. 일본의 대부업체는 이밖에도 이익을 쫒아 홍콩(1977년), 싱가포르(1993년) 등 NIEs(신흥 공업 경제 지역)각국으로 상륙했다. 바이러스처럼.

오오야마 교수는 “30년이란 세월에 걸쳐 착수해온 일본에 비하면 한국과 대만은 일본과 다른 대규모 외국자본 기업의 진출로 개인 대출 시장이 급격히 확대됐다” 며 “이 같은 문제는 고용의 불안정화, 중산계층의 축소, 청년빈곤 등으로 귀결되고 있어 다양한 형태의 연대와 통합을 필요해 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연대의 필요성을 공유하고 한국, 일본, 대만의 동아시아 3국의 파산법조계가 모인 것은 지난 2006년의 일이었다. 2010년, 파산법조계 뿐만 아니라 금융피해를 입은 채무자들이 모여 각 국의 상황을 공유했다. 제1회 동아시아 금융해자 교류회였다. 이후 대만에는 ‘카드채무 피해자 자구회’가, 한국에는 ‘금융피해자 협회’가 결성됐다.

   
포럼 관계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교류회 이시이 히토시(石井 寿)씨 제공

◆ 연대의 수혜자 대만... 일본, 다시 한국·대만을 배운다

대만은 동아시아 교류를 통해 지난 2007년 파산법 제정 등 제도적 변화를 끌어냈다. 채무조정 제도가 없어 빚을 지면 형사처벌을 받거나 야반도주를 하는 초창기 대만 상황을 감안하면 법적 제도의 도입은 큰 변화였다.

대만 법원은 파산신청자의 50% 정도만 채무를 면제했다. 대만의 금융피해자와 변호사 단체가 연대해 채무자 중심의 파산법 개정을 요구했다. 금융피해자들이 연대해 법원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개정 입법을 위해 정치인들을 설득해 나갔다. 법은 2018년 개정됐다. 거듭된 동아시아 금융피해 교류회가 개정 파산법의 그 이론적 토대를 세우는데 기여했다. 인구 2300만명의 대만은 다중채무자 수가 지난 2006년 52만명으로 발표됐다. 발표에 따르면 현재 그 수는 약 80만명에서 100만명으로 추산된다.

   
2007년 파산법이 도입된 대만은 채무자 중심 파산법 개정요구를 수용해 2018년 파산법을 개정했다. 파산신청에 대한 대만 법원의 면책율을 점차 높아지고 있다.  자료=오오야마 사야 교수 제공

일본에 대해 오오야마 교수는 △포괄적 금융 규제와 △생활보호(생활재건)을 해결할 과제로 꼽았다. 오야먀 교수는 "일본의 은행이 지난 1991년 거품붕괴 이후 대부업체에게 융자를 해줘 개인 대출시장을 뒷받침했다"며 "대출을 포괄적으로 규제하더라도 생활이 어려운 사람이 있는 한 수탈적인 금융의 모습은 변화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일본의 카드론 등 대부금 잔고는 현재 대부업체에게 빌리는 소비자 금융형 대부금 잔고를 넘어 5조 7000억엔(약 61조원)이다.  일본의 개인파산도 증가세다. 일본 개인파산신청은 2015년에 6만건에서 바닥을 치고 상승으로 돌아서서 2018년에는 5년만에 7건을 넘었다. 

한국 법원은 지난 1997년 파산신청 사건에 대해 첫 채무 면제결정을 내린 후 2007년까지 신속한 절차로 채무자를 구제했다. 이후 2007년부터 파산절차를 보수적으로 운영, 채무자의 전면 재산 조사 절차를 도입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다만 파산절차와 달리 신용회복위원회의 워크아웃과 금융복지상담센터를 통해 패스트랙으로 취약채무자의 신속한 경제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서울금융복지상담센터는 지난 5년 동안 2만9000명의 취약채무자를 상담해 4658명의 채무 1조567억원을 조정했다.

오오야마 교수는 현재 한국과 대만의 채무조정 지원체계가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오오야마 사야 교수는 “한국은 금융복지상담센터을 세웠고, 대만은 법률구조공단이 타이페이시(市)와 협력해 채무 상담 원스톱 서비스를 센터를 개설해 운영하고 있다”며 “일본은 이와 같은 시스템을 갖추는데 무려 30년이 걸렸는데 한국과 대만은 10년 만에 이뤘다. 무척 놀라운 일이며 오히려 일본이 앞으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인정 기자 lawyang@econovill.com

기사승인 2019.11.17  16:22:41

<경제를 리뷰, 미래를 본다 © 이코노믹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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