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이 출범했습니다. 삼성의 50년 무노조 경영 원칙이 무너지는 가운데 국내 경제계의 시선은 그들의 미래행보에 집중되고 있습니다. 노조의 등장과 삼성의 경영은 어떤 화학반응을 일으킬까요?

 

현장의 목소리
삼성전자 노조는 지난 11일 수원시에 설립신고를 한 후 13일 설립신고증을 교부받아 합법노조로 인정받았습니다. 이어 16일 한국노총 6층 대회의실에서 출범식을 열고 공식적인 행보를 시작했습니다.

출범식 현장에 등장한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 등 주요 인사들은 비교적 편안하고 능숙하게 발언을 이어 갔습니다. 특히 김만재 한국노총 금속노련 위원장은 지지선언문을 낭독하며 마치 시위현장의 목소리톤으로 발언해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발언의 강도도 제일 강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삼성에 경고한다. 삼성전자 노조에 대한 어떠한 탄압도 허락하지 않을 것이며,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지면 한국노총 차원의 거센 반격에 직면할 것"이라고 특히 강조했습니다.

출범식에 나타난 진윤석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위원장은 다소 굳은 표정이었습니다. 다른 노조 인사들과 달리 무언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인상을 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마이크를 잡은 그는 거침없이 발언했습니다.

진 위원장은 기자회견문을 낭독하며 “우리는 정말 힘들게 버텨왔다”면서 “화학물질에 내 몸이 어찌 되었든 납기일만 걱정했던 우리, 설비고장에 24시간 마음 졸이며 밥은커녕 잠도 제대로 못 잤던 우리, 그러나 이런 희생이 보답을 받을 것이라고 기대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집행부와 사측이 결탁하지 않는 특권없는 노조가 될 것이며, 조합비의 입출명세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한편 조합원과 집행부의 소통을 강화하는 노조가 될 것”이라면서 “일하는 노조, 상생과 투장을 양손에 쥐는 노조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이어 그는“급여 및 PS 지급 근거와 기준을 명확하게 밝혀 따질 것이며, 고가와 승진이 회사의 무기가 되지 않도록 하며 의미없는 퇴사 권고를 막겠다”면서 “소통하지 않고 설득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문화를 바꾸겠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 삼성전자 노조 출범식이 열리고 있다. 사진=최진홍 기자

"성과를 나누고, 삶을 보장하고, 소통하겠다"
삼성전자 노조 출범과 함께 진 위원장은 성과를 나누고, 임직원의 삶을 보장하며, 노조원은 물론 회사측과 적극 소통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성과를 나눈다는 것은 임직원들의 희생을 회사도 명확히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골자입니다. PS 지급 과정에서 그 기준을 두고 투명한 가이드 라인이 필요하며, 이 부분에서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예고했습니다. 임직원의 삶을 보장하는 것은 일방적인 퇴사 등을 막겠다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흥미를 끄는 내용은 소통입니다. 조합원과 집행부의 소통은 당연하고, 노조와 회사의 소통도 필요하다는 것이 진 위원장의 발언이었습니다. 특히 진 위원장은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서 "노조의 가장 중요한 목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회사와의 소통"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현 상황에서 삼성전자 노조가 가장 방점을 찍은 목표라는 뉘앙스입니다. 진 위원장은 "회사에 소통의 문화가 부족하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진 위원장의 발언으로 확인된 '소통'이라는 키워드에 집중하면, 노조 활동의 구체적인 액션플랜이 아직 나오지 않았다는 뉘앙스가 풍깁니다. 소통은 구체적인 목표라기 보다는 일종의 장기적 로드맵이자 추상적인 목표기 때문입니다. 사실 당연합니다. 삼성전자 노조는 이제 시작했고, 당분간은 노조원을 모집하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한국노총도 일단 삼성전자에서 노조가 나왔다는 것 자체에 일단 의미부여를 하는 수준이었습니다.

실제로 질의응답 시간에 "계열사와 협력사에도 노조를 만든다고 했는데, 이 방안은 어떻게 추진할 것이냐"는 질문이 나오자 진 위원장을 대신해 김만재 한국노총 금속노련 위원장이 대신 마이크를 잡고 "당분간은 내실을 다지는 것에 집중하고, 아직 거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제 출범한 지 고작 3일"이라고 답변하기도 했습니다.

삼성전자 노조의 가장 큰 목표가 소통이고 단기적으로는 PS 지급 등 직원 형평성을 두고 목소리를 내는 한편 당분간 내실 다지기에 충실하겠다는 발언은, 삼성전자 노조가 초반부터 회사측과 격렬한 대립에 나서며 소모적인 논쟁을 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으로도 비쳐집니다. 회사측은 노조를 적대시하고, 노조는 때 되면 파업카드를 꺼내 국민을 실망시키는 일은 당분간 벌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물론 상황은 언제든 변할 수 있고, 회사와 노조 모두 각자의 방식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며 충돌하거나 타협하면 그만입니다. 삼성전자 노조가 성공적으로 몸집을 불려 회사와 당당하게 협상하는 날이 올 수 있고, 그렇지 않은 날이 올 수 있으며, 또 언제든 파국이 날 수 있고 그렇지 않을 수 있습니다. 노조는 노조의 역할을 수행하면 되며, 회사도 적법한 방식으로 이에 대응하면 됩니다. 

다만 노조 출범식에 읽혀진 현장의 분위기는, 일단 상생과 소통이었습니다. 조금 이상한 상상이지만, 출범식이 열리던 17일은 한일 경제전쟁을 일으킨 일본 정부가 일부 핵심 소재 수출길을 풀어준 기분좋은 날이기도 합니다. 징조가 좋은 것일까요?

이러한 망상을 입증이라도 해주듯, 아이러니하게도 진 위원장이 출범식 현장에서 마이크를 잡고 발언하던 순간, 잔잔한 사랑의 세레나데(?)가 울려 퍼졌습니다. 출범식이 열리던 한국노총건물 6층은 대회의실이지만, 바로 아래층인 5층은 결혼식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방음이 완벽하지는 않더군요. (건물에 하객들이 많아서 행사 종료 후 내려가려고 엘리베이터 기다리다가 포기했습니다)

진 위원장의 또렷한 목소리와 함께 결혼식장에서 울려퍼진 축가가 잔잔히 깔리는 장면은 그 자체로 이색적이었습니다. 그 세레나데처럼 서로가 서로의 선을 지키며, 삼성전자 노조와 회사측이 상생의 방안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IT여담은 취재 도중 알게되는 소소한 내용을 편안하게 공유하는 곳입니다. 당장의 기사성보다 주변부, 나름의 의미가 있는 지점에서 독자와 함께 고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