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시장에 출시된 CAR-T 치료제는 노바티스의 킴리아, 카이트파마의 예스카타 단 2종이다. 출처=BCC Research

[이코노믹리뷰=최지웅 기자] 우리나라가 ‘기적의 항암제’로 불리는 CAR-T 치료제 개발에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들은 매년 수백 건의 임상시험을 추진하며 CAR-T 치료제 개발에 공을 들이고 있지만 한국은 아직 임상시험조차 시작하지 못하면서 CAR-T 치료제 불모지로 전락할 위기에 놓였다.

최근 GC녹십자셀, 앱클론 등 국내 기업들이 암 세포의 특징적인 항원을 인지하는 키메릭 항원 수용체(CAR)를 확보하며 치료제 개발에 시동을 걸고 있지만 본격적인 임상은 내년쯤 가동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바이오협회에서 이달 초 발표한 ‘CAR-T 치료제의 현재와 우리의 준비’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까지 국내 기업에 의한 CAR-T 치료제 임상 소식은 전무하다. CAR-T 치료제 개발에 필요한 환경이나 기반이 제대로 조성되지 않아 임상 진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분석이다.

김건수 큐로셀 대표는 이와 관련해 “국내 기업들이 CAR-T 치료제의 글로벌 경쟁에 참여하기 위해선 첨단의약품이 조속히 임상에 진입할 수 있는 산업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CAR-T 불모지 한국 왜?

CAR-T 치료제는 환자의 면역세포인 T세포를 추출해 면역강화를 위한 유전자 조작 과정을 거친 후 다시 환자에게 주입하는 맞춤형 항암 치료제다. 기존 화학요법 항암제의 경우 환자의 유전적 특성을 고려하지 못해 정상세포까지 파괴하는 등 여러 부작용을 일으켰지만 CAR-T 치료제는 외부 물질이 아닌 환자의 면역체계를 활성화시켜 암세포를 공격하는 기전으로 주목받고 있다.

현재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허가받은 CAR-T 치료제는 노바티스의 ‘킴리아’와 카이트파마의 ‘예스카타’ 2종뿐이다. 이중 킴리아는 B세포성 급성백혈병 등 혈액암에서 약 83%에 달하는 완치율을 보이면서 CAR-T 치료제 시장의 서막을 열었다. 하지만 맞춤형 치료제답게 고가의 치료비용과 심할 경우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신경독성 등의 부작용은 앞으로 넘어야 할 과제로 평가된다.

이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CAR-T 치료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임상시험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동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4월 기준 전 세계적으로 총 467건의 CAR-T 치료제 임상시험이 시행됐다. 임상 1상 267건, 임상 2상 158건으로 집계됐다. 특히 최근 몇 년간 중국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동아시아 임상시험 170건 중 중국에서 무려 162건이 진행됐다. 중국은 거대한 내수 시장과 저렴한 인건비를 앞세워 CAR-T 치료제 시장의 다크호스로 떠오르고 있다.

▲지역별 CAR T 치료제 임상시험 현황 (2018년 4월 기준) 출처=BCC Research

반면 우리나라는 아직 임상 진입조차 하지 못한 CAR-T 치료제의 불모지나 다름없다. CAR-T 치료제 개발에 필요한 핵심원료 확보를 비롯해 첨단의약품이 빠르게 임상에 진입할 수 있는 산업환경조차 조성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CAR-T 등 유전자세포치료제 생산에는 유전자조작에 필요한 바이럴벡터라는 물질이 필수로 들어간다. 하지만 국내에서 고품질의 바이럴벡터를 공급할 CDMO(위탁제조개발업체)를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다. 미국과 유럽에서 해당 원료를 생산하는 바이오 업체와 협력할 수도 있지만 최근 유전자치료제 개발 열풍으로 인해 안정적인 공급처 확보가 쉽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핵심원료 공급이 한정적인 탓에 국내 제약사들이 CAR-T 치료제 개발에 섣불리 나서지 못하고 있다.

아울러 CAR-T 임상연구를 수행할 국내 대형 병원과의 협력관계 구축도 녹록지 않다. 기존 의약품과 달리 CAR-T 치료제는 환자 혈액 채취, CAR-T 투여를 위한 사전준비, CRS와 같은 심각한 부작용 관리 등 치료과정에서 의료진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미국에서도 FDA에 의해 허가된 일부 병원만이 CAR-T 치료제를 이용해 환자를 치료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대형병원 내에 훈련된 임상인력과 연구역량을 확보해 CAR-T 치료제 활성화를 위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잡한 제조공정을 이유로 CAR-T 치료제의 도입을 가로막는 규제도 걸림돌이다. 최근 국내에서는 CAR-T 치료제 도입에 대한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약 1만 5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CAR-T 치료제 국내 승인을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참여했을 정도다. 이에 식약처는 지난 3월 노바티스의 '킴리아'를 희귀의약품에 지정하고 관련 자료집을 발간하는 등 CAR-T 치료제 도입에 적극 나섰지만 결과는 지지부진하기만 하다.  CAR-T 치료제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환자의 혈액과 세포를 해외로 반출하는 문제가 생기는데 현행법상 이를 허용하지 않고 있어 규제 당국과의 조율이 필요한 상황이다.

다만 ‘첨단재생의료 및 첨단바이오의약품 안전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첨단재생바이오법)이 본격 시행되는 내년 8월부터 유전자 세포치료제에 대한 접근성이 한층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 첨단재생바이오법을 통해 중증 난치성 질환을 치료하는 데 마지막 희망이 될 수 있는 줄기세포 및 유전자치료제는 임상 연구 목적으로 시술이 가능해진다.

한계 극복 위한 도전은 계속 

CAR-T 치료제는 뛰어난 약효에도 불구하고 여러 한계를 노출해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현재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다.

먼저 CAR-T 치료제는 T세포를 활성화시킬 때 발생되는 사이토카인 때문에 사이토카인방출증후군(CRS)과 신경독성 등의 이상 반응이 존재한다. 심할 경우 환자가 사망에 이르는 치명적인 부작용이다. 이에 연구자들은 급격한 T세포 활성화에 따른 CRS 부작용을 막기 위해 특정 약물로 CAR-T 세포의 자살을 유도하는 자살스위치를 추가하거나 특정한 조건에서 CAR-T 치료제의 기능을 조절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고가의 치료제 가격도 환자들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CAR-T 치료제 가격은 35만 달러에서 50만 달러 수준이다. 환자의 혈액에서 T세포를 추출해 증산하는데 2~3주의 시간이 걸리고, 생산비용만 최소 15만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모든 공정이 환자 한명 한명에게 맞춤식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생산단가가 높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건강한 공여자의 T세포를 사용한 동종 CAR-T 치료제 개발이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론상 동종 CAR-T 치료제는 한 번에 100여 명이 투약할 수 있는 양을 생산할 수 있어 생산원가를 크게 절감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향후 동종 CAR-T 치료제의 효능과 부작용이 기존 치료제와 유사한 수준으로 확인된다면 CAR-T 치료제 상업화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것으로 기대된다.

▲연도별 임상시험단계별 CAR-T 임상시험 개시 건수 출처=BCC Research

고형암 치료에서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점도 옥에 티다. CAR-T 치료제는 혈액암 분야에서 뛰어난 효과를 입증했지만 암 환자의 90% 이상인 고형암 치료에서는 여전히 만족할만한 결과를 보이지 못했다. 고형암의 경우 지속적인 변이로 암세포 간 이질성을 키우는 탓에 공통된 항원을 발견하기 어렵고, 치료제가 종양세포에 도달하기도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고형암 극복을 위한 CAR-T 치료제의 도전은 계속되고 있다. 최근 키트루다, 옵디보 등 면역관문억제제와 CAR-T 치료제를 병용투여해 약효를 개선하는 시도가 각광을 받고 있다. 다만 고형암에서의 병용투여는 연구단계 또는 소규모 임상에 머물러 있는 상태로 효과 증명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또 분자생물학 연구에서 사용된 탈렌, 크리스퍼 등 각종 유전자 편집 기술도 고형암 치료의 열쇠로 거론되고 있다. 실제로 유전자 편집기술을 통해 CAR-T 세포가 고형암 조직 내로 효과적으로 접근하도록 유도하는 실험이 동물모델로 입증된 바 있다.

김건수 큐로셀 대표는 “2017년 8월 환자의 면역세포를 활용한 CAR-T 치료제의 FDA 허가를 시작으로 항암제 개발 분야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됐다"며 "비록 CAR-T 치료제에 적용된 현재의 기술이 갖고 있는 한계는 명확하지만 놀라운 속도로 쌓여가는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머지않은 미래에 또 다른 혁신적인 기술의 출현이 기대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