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지웅 기자] 잘 드는 약은 소위 '약발'이 떨어지기 전까지 계속해서 쓰이기 마련이다. 그 연장선에서 개방형 혁신으로 불리는 '오픈 이노베이션'이 당분간 제약·바이오 업계의 신약개발 역량을 높이는 전략으로 적극 활용될 전망이다. 오픈 이노베이션은 기업들이 혁신을 위해 내부뿐만 아니라 외부의 아이디어와 연구개발(R&D) 자원까지 적극적으로 수용해 새로운 제품이나 기술을 만들어내는 것을 말한다. 

최근 국내 제약사들도 신약 개발 가능성을 높이고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오픈 이노베이션을 선택하는 추세다. 특히 유한양행, 부광약품 등 일부 제약사들은 오픈 이노베이션으로 적지 않은 성과를 올려 주목을 받고 있다. 이들 기업은 기술력 있는 바이오벤처로부터 사들인 신약후보물질의 가치를 한 단계 높인 뒤 다시 팔아넘기는 방식으로 오픈 이노베이션 활성화를 주도하고 있다. 이를 통해 경쟁력 있는 신약 파이프라인을 확보하고 단기간에 기업가치까지 높일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유한양행 R&D 파이프라인. 출처=하나금융투자

오픈 이노베이션 대박 신화 '유한양행'

유한양행은 이른바 '폐쇄형 혁신'을 추구해온 국내 제약 업계에 오픈 이노베이션 바람을 일으킨 주인공이다. 최근 5년간 국내외 바이오벤처 기업에 약 1500억원을 투자하며 오픈 이노베이션에 적극 뛰어들었다.

이 회사의 대표적인 오픈 이노베이션 결과물은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레이저티닙'이다. 앞서 유한양행은 2015년 오스코텍과 제노스코가 개발한 신약후보물질인 레이저티닙을 사들인 뒤 지난해 11월 글로벌 제약사 얀센 바이오테크에 약 1조4000억원 규모로 다시 기술수출하는 성과를 올렸다. 올해도 글로벌 제약사 2곳과 비알콜성 지방간염(NASH) 신약후보물질을 기술이전하는 대형 계약을 체결해 화제를 모았다. 유한양행은 연이은 기술수출 계약으로 사업개발 능력을 증명하고 기업가치를 크게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유한양행 바이오벤처 투자현황. 출처=하나금융투자

향후 신약의 효능과 안전성을 검증하는 임상시험이 본격적으로 추진된다면 유한양행의 오픈 이노베이션 성과는 한층 커질 것으로 보인다. 레이저티닙은 내년에 유한양행이 국내 임상 3상을, 얀센이 병용요법으로 임상 2상을 각각 수행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임상 진전에 따른 약 400억원의 마일스톤 수령도 기대할 수 있다. 아울러 베링거인겔하임이 비임상 독성 시험을 진행 중인 NASH 치료제 'YH25724'는 내년 임상 1상에 돌입한다. 지난 1월 길리어드에 기술수출한 NASH 치료제도 내년쯤 후보 물질을 도출할 것으로 예측된다.

저비용·고효율 '부광약품', 글로벌 네트워크 적극 활용

인력과 자금 면에서 여유롭지 않은 중형 제약사들도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한 신약개발과 투자금 회수에 적극적인 모습이다.

중형 제약사 중 오픈 이노베이션을 가장 활발하게 활용하는 기업은 부광약품이다. 저비용·고효율 전략으로 다양한 오픈 이노베이션 성공 사례를 남겨 주목을 받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안트로젠, LSK바이오파마가 꼽힌다.

▲부광약품의 주요 R&D 성과 실적. 출처=부광약품

부광약품은 지난해 8월부터 올해 초까지 줄기세포치료제 전문기업 안트로젠의 지분을 꾸준히 매각하며 약 774억원의 투자 수익을 올렸다. 15억원을 출자해 안트로젠의 최대주주 지위에 올랐던 2000년도와 비교하면 상당한 이익을 거둔 셈이다. 아울러 이 회사는 지난해 위암 치료용 표적항암제 '리보세라닙' 권리 일체를 에이치엘비생명과학에 400억원에 양도하는 계약을 체결하면서 약 9년 만에 10배 가까운 차익을 냈다.

투자를 통한 신약 파이프라인 확보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부광약품은 지난 2014년 인수한 덴마크 바이오벤처 콘테라파마와 파킨슨병 관련 이상운동증 치료제인 'JM-010'을 공동으로 개발하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해 10월 독일, 프랑스, 스페인에서 JM-010에 대한 임상 2상 승인을 받았다. 향후 미국에서도 임상시험계획(IND)을 제출하고 임상을 진행할 계획이다. 또 자회사 다이나세라퓨틱스와 함께 전립선암 치료제 'SOL-804'를, 미국 멜리어 파마슈티컬과 제2형 당뇨병 치료 후보물질 ‘MLR-1023’을 각각 개발 중이다. 부광약품은 다양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한 오픈이노베이션 전략으로 해외 바이오벤처의 신약 파이프라인을 초기에 발굴·확보해 사업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가고 있다.

항암제 전문기업으로 우뚝 '보령제약'

당장의 이익 실현보다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성장동력을 확충하기 위해 오픈 이노베이션을 추구하는 제약사도 눈에 띈다.

겔포스, 용각산으로 유명한 보령제약은 오픈이노베이션을 통해 항암제 전문기업으로 입지를 다지고 있다. 이미 연간 900여억 원에 달하는 항암제를 유통하는 국내 최대 항암제 판매 기업이지만 면역항암제 개발기업인 바이젠셀 투자와 표적항암제 파이프라인인 'BR2002'의 미국 임상 등 차세대 항암제 개발에도 집중하고 있다.

▲바이젠셀 임상 파이프라인 현황. 출처=하이투자증권 리서치센터

앞서 보령제약은 2016년 30억원을 투자해 '바이젠셀'을 인수한 바 있다. 2017년 바이젠셀을 자회사로 편입시킨 후 다양한 신약 파이프라인 구축에 공을 들이고 있다. 현재 바이젠셀은 면역항암제 'VT-EBV-201'을 개발 중이다. 희귀난치성질환이자 혈액암의 일종인 NK/T세포 림프종 치료에 쓰인다. 보령제약은 2021년 이 면역항암제의 임상 2상을 완료한 뒤 2022년 조건부 허가를 받아 출시한다는 계획이다. 바이젠셀은 내년 코스닥 상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개발진척에 따라 보령제약의 보유지분(29.5%) 가치 상승이 기대된다.

아울러 보령제약은 2016년 한국화학연구원으로부터 신약후보물질 'BR2002'의 기술을 이전받아 비호지킨성 림프종 치료제로 개발 중이다. 2024년 완료를 목표로 임상 1상을 진행하고 있다. 보령제약은 향후 BR2002의 적응증을 고형암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상상인증권 하태기 연구원은 "오픈 이노베이션은 신약개발 기간을 단축시키고 비용도 절약할 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이라며 "지금은 신약개발 가치가 대폭 증가하는 시기로 좋은 안목을 가지고 라이선스 아웃을 포함한 지분투자를 잘한다면 제약사의 기업가치를 단기간에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