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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은 ‘상업 자본주의’ 민족이다”

‘역사 전문가’ 롯데장학재단 허성관 이사장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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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이코노믹리뷰 임형택 기자

[이코노믹리뷰=박정훈 기자] 흔히 '자본주의'라고 하면 서양에서 먼저 그 싹이 틔워졌다고 많은 이들은 이야기한다. 아울러 우리나라의 지난 역사를 이야기할 때에도 "농경 중심 사회였기 때문에 다른 나라들에 비해 늦게 자본주의가 뿌리를 내렸다"라는 평가가 내려지기도 한다. 이러한 의견에 대해 “우리 민족은 역사적으로 그 어떤 나라보다 상업 자본주의를 고도로 발전시킨 나라였다”면서 반박하는 주장으로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이가 있다. 바로 도서 <개성상인의 탄생>의 저자이자 역사·경제학 연구자인 현 롯데장학재단 허성관 이사장이다. 허 이사장을 만나 상업 자본주의의 꽃을 피웠던 우리 조상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우리 역사 속 상업 자본주의  

허성관 이사장은 “우리 조상들은 그 누구보다 상업 자본주의를 중시하던 사람들이었다”라고 이야기하면서 그러한 시각들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허 이사장은 “역사에 기록된 내용들로 보자면 삼국시대에는 중국과 일본에 무역의 거점을 마련했던 백제가 있었고 이 시기를 전후로 백제와 일본은 꽤 오랜 시간 동안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왔습니다. 일본 역사서에도 기록이 돼 있지요”라면서 “통일신라시대는 ‘장보고’로 잘 알려진 청해진을 통한 국제무역 상거래가 있었고, 고려시대에는 태조인 왕건의 집안부터가 상업가 집안이었기 때문에 고려는 중국 송나라와 아라비아 국가들과 활발하게 무역을 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허 이사장은 “아무래도 우리나라의 주력 산업이 농업이었다는 의견은 성리학의 영향을 받은 조선이 상업을 천하다 여기고 사(선비)/농(농민)/공(기술자)/상(상민)의 신분 구분이 있었다는 것에서 비롯한 것이고 그런 점은 기록된 사실이긴 하나, 그렇다고 해서 상업 활동이 아예 자취를 감춘 것은 절대 아닙니다”라면서 “조선 중기부터 우리나라는 지역을 근거로 한 ‘상단(商團·상인집단)’들이 활발하게 활동했고, 그들의 활동 범위는 청나라와 일본까지도 확장됐습니다. 이 시기 우리나라 상업의 역사는 소설 <상도>를 통해 잘 드러났죠”라고 설명했다. 덧붙여서 허 이사장은 “더 놀라운 사실은 상업을 천시한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사이 우리 조상들은 ‘상업 자본주의’의 절정을 이룬 놀라운 결과물을 남겨놓습니다”라고 말했다.   

   
▲ 조선시대 개성상인 집안인 박영진가의 복수부기 기록 사본. 사진= 이코노믹리뷰 임형택 기자

상업 자본주의 발전의 절정 ‘복수부기’  

서양사를 중심으로 연구하는 역사학계에서는 현대 자본주의는 유럽에서 가장 먼저 시작됐다는 점을 강조한다. 현존하는 수많은 경제학 이론들은 과거 유럽의 학자들에 의해 이론적 배경이 정립됐기 때문이기도 하며 무엇보다 이러한 주장을 가장 강하게 뒷받침하는 것이 바로 ‘복식부기(複式簿記)’다. 복식부기는 경제 주체의 자산과 자본의 증감 등 변화과정을 대변(우변)과 차변(좌변)으로 구분해 이중으로 기록·계산이 되도록 하는 회계의 형식 혹은 거래의 기록이 적힌 장부를 의미한다. 복수부기는 화폐 경제가 근간이 되는 자본주의식 상거래가 얼마나 발달했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허성관 이사장은 현재 기업들이 활용하는 대차대조표 등 회계기록의 기능과 동일한 수준의 조선시대 복식부기인 박영진가(家)의 기록을 찾아내 이를 회계학적으로 검증했다. 허 이사장은 “현존하는 기록으로 가장 오래 된 서양의 복식부기 장부는 1930년대에 쓰여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이것을 기반으로 동양에서는 자본주의가 늦게 시작됐음을 비웃기도 하죠. 그러나 최근 발견된 개성상인들의 회계장부인  박영진가(家) 복식부기는 1894년부터 1922년의 기록입니다. 서양보다 약 40년이 빠르죠”라고 설명했다. 

허 이사장은 “더 놀라운 것은 이 박영진가 복식부기의 수준입니다. 이 복식부기에서는 현재 회계기록에서 도출하는 거의 모든 거래의 기록을 도출할 수 있습니다. 단순한 이익과 지출의 기록 수준을 넘어 각 투자의 주체들이 조달한 자본 가치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수익률인 ‘자기자본비용(自己資本費用)’과 멀리 떨어져 있는 지역에 대한 원재료 공급 거래 시에 달라지는 재화의 가격을 고려한 ‘이전가격(移轉價格)’ 등 현재의 회계기록과 비교해도 전혀 그 상세함의 수준이 떨어지지 않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이를 기반으로 지난 2014년 허 이사장은 <한국 전통회계 연구의 성과와 과제>라는 논문에 담아냈고 당대 역사학자들로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다. 

   
▲ 사진= 이코노믹리뷰 임형택 기자

제대로 된 역사인식을 위하여  

허성관 이사장은 일련의 역사연구를 위해 십 수 년 이상을 공부하고, 자료를 찾고 연구에 매진해왔다. 허 이사장이 이처럼 역사 연구에 몰두하는 이유는 우리 역사를 애써 폄하하는 의견들에 대한 반박이자 제대로 된 역사인식의 정착을 위함이다. 

허 이사장은 “물론 자국의 역사를 미화해서 이야기하는 것도 옳은 시각은 아니지만, 역사 기록으로 증명된 우리 조상들의 우수한 기록을 애써서 깎아내리는 논리는 역사를 공부하는 젊은이들의 인식을 흔들어 이 사회를 병들게 합니다”라면서 "저는 이러한 시각들에 맞서 자본주의의 발달에 있어 우리가 역사적으로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는 것을 다음 세대에 이야기하고자 합니다”라고 말했다.   

박정훈 기자 pjh5701@econovill.com

기사승인 2019.11.14  08:00:07

<경제를 리뷰, 미래를 본다 © 이코노믹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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