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이 한창이던 얼마 전 좋은 친구들과 인제에 위치한 원대리 자작나무 숲을 다녀왔습니다. 다른 친구에게 얘기를 했더니 거기에 간 김에 근처에 있는 필례 약수터를 꼭 가보라도 강추했습니다. 자기로서는 작년에 거기서 ‘인생 단풍’을 만났다고 하면서 말이죠. 즉석에서 친구들과 논의를 거쳐 필례 약수터 방향으로 차를 돌렸는데, 한창 사람들이 몰린 자작나무 숲 지역의 국도를 빠져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1시간여를 넘기며 미련을 갖고 기다리다가 결국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인생 단풍’을 못 본 아쉬움이 컸습니다.

그러며 최근 본 전시에서 만난 ‘인생 여행’에 대한 생각이 났습니다.

중앙도서관에서 현재 ‘회재 이언적(李彦迪) 독락당의 보물, 서울 나들이’를 전시중인데, 조선 전기의 명신인 회재 이언적(1491-1553)의 일생에 대한 얘기가 전시 테마입니다.

회재 이언적은 종1품 좌찬성이라는 공직을 지낸 분인데, 우리나라 다섯 현인 중 한분으로 추존되어 1610년 성균관 문묘에 배향된 분입니다.

그 전시에 그가 일생에 걸쳐 걸었던 중요한 인생 여행 길이 세 갈래로 보였습니다.

먼저 그가 스물넷에 과거를 보러 서울 가는 780리 길이 펼쳐져 있습니다.

경주 양동 마을을 출발해 낙동 나루, 문경, 충주, 용인을 거쳐 서울 경복궁에 이르는 길입니다. 어린 나이임에도 과거 보러 가는 길이 부귀가 아니라 옛 성현의 가르침과 천도를 따라 살아가며 세상을 구하겠다는 결심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낙동 나루를 지나며 황폐해진 들을 보며 ‘농가의 근심 걱정이 얼마나 크랴. 가련하게 가을걷이를 할 게 없구나..’

두 번째는 57세 때인데, 정치적 모함에 연루되어

서울서 강계까지의 1,360리 유배길이 펼쳐집니다.

서울을 떠나 파주, 개성, 평양, 순안, 영변, 희천, 강계로 이어지는 길입니다.

유배 길에서도 유배지에서의 새로운 다짐을 말하는 자신잠(自新箴)과 유배 받은 자신의 마음을 담은 지치명(知恥銘)을 씁니다. 물론 유배지에서 7년여도 대학장구보유, 봉선잡의, 구인록, 진수팔규 등의 저술 활동을 계속했고, 중용구경연의라는 저술은 미완으로 남겼습니다.

마지막은 그가 유배지에서 죽은 이후 입니다.

유배 7년차인 63세 되던 해 겨울 회재 선생은 강계에서 세상을 뜹니다.

아들 잠계 이전인이 7년 유배 생활 동안 아버지를 지극 정성으로 뒷바라지했었습니다.

그 아들이 홀로 아버지의 관을 꽁꽁 얼어붙은 평안도와 강원도의 산길을 거쳐, 고향까지 모십니다. 대단한 학자였음에도 시끄러운 당파 시대의 나라에 누를 끼치지 않도록 자기 자식 외에는 제자를 두지 않았던 대단한 아버지에 그 아들을 보는 듯합니다.

구르몽의 시 ‘낙엽’의 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발로 밟으면 낙엽은 영혼처럼 운다..’

우리가 이 가을날 주변 산에서 마주치는 낙엽길이

서로 다른 의미의 인생길이 되어 위로를 줄 것 같습니다.

참, 올해 필례 약수의 단풍은 예년만 못하다고 친구가 전해 아쉬움을 덜었습니다.

내년을 기대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