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거니 뒤서거니 서로 엇갈리는 희비의 쌍곡선을 그려오던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과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의 각 대법원 판결은 17일 신 회장의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피고인, 검사 쌍방의 상고기각으로 원심판결인 징역 2년 6개월 및 집행유예 4년을 확정되면서 마침내 질긴 인연의 고리를 끊었다. 신 회장 개인의 입장에서는 여전히 유죄판결을 선고받은 것이지만, 왕성한 경영활동을 해야 하는 경영인의 입장에서는 신병처리면에서 불구속이 확정되면서 자유인의 신분을 되찾게 된 것이다.

17일 11시 대법원 선고를 앞둔 신 회장의 판결 선고를 앞두고는 대부분의 법조인들은 물론 롯데관계자들조차 결과에 회의적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8월 29일 대법원은 같은 법정에서 이루어진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국정농단 사건’에서 이 부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전 이름 최순실)에 공여한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대한 16억 2800만원의 후원금과 최씨의 딸 정유라의 24억 1797만원 상당의 마필 구입대금 합계 50여억 원이 다시 뇌물죄로 인정되면서 이 부회장 항소심에서의 징역 2년 6월 및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파기 환송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신 회장과 이 부회장의 각 사건은 사실관계 자체가 서로 다르기는 하지만, ‘묵시적 청탁’이 있었는지에 대한 치열한 다툼이 이루어져 1심과 2심에서 서로 다른 판단이 내려진 이 부회장 사건과 달리 신 회장 사건에서는 1심과 2심 공히 신 회장이 박 전 대통령에 대하여 ‘묵시적 청탁’을 하였다는 것이 인정되어 유죄 판단의 가능성은 훨씬 높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17일에 선고된 신 회장에 대한 대법원 판결에서도 ‘묵시적 청탁’사실은 인정되었다. 즉, 신 회장은 박 전 대통령의 요구에 따라 케이스포트재단에 70억 원의 뇌물을 공여한 뇌물공여자로 신 회장의 항변과 달리 강요죄의 피해자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8월 29일 선고된 대법원 판결에서 대법원이 “공무원인 대통령이 자신의 직무와 관련한 상대방인 신 회장에게 자신이 지정한 제3자인 케이스포츠재단을 위하여 재산적 이익 또는 일체의 유무형의 이익 등을 제공할 것을 요구하고 상대방인 신 회장이 공무원인 대통령의 지위에 따른 직무인 면세점 특허권 재취득을 기대하며 그에 대한 대가로서 요구에 응하였다면, 다른 사정이 없는 한 공무원의 위 요구행위가 강요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한 것과는 균형을 맞춘 것이기도 하다. 대법원 양형기준에 따르면 1억 원 이상의 뇌물 공여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2년6월 ~ 3년6월의 징역형이 선고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 회장에 대해서는 항소심에서의 집행유예가 그대로 확정되었다. 이러한 선고 결과에 대해서는 대법원이 신 회장에 대하여 재벌 봐주기식 선처를 한 것이라는 비난이 있을 수도 있으나, 원심인 항소심에서의 양형판단이 적정한지에 대해서는 ‘사형,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가 선고된 사건에 있어서 형의 양정이 심히 부당하다고 인정할 현저한 사유가 있는 때(형사소송법 제383조 제4호)’에 해당하여 검사 혹은 피고인이 이를 상고이유로 삼아 상고하지 않는 이상 대법원에서 이를 다룰 수 없고, 이 사건에서도 대법원은 상고된 내용에 대해서만 판단을 내린 결과 뇌물공여사실이 인정되고도 집행유예 선고를 받는 결론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제는 이번 대법원의 선고가 향후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의 문제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다양한 예측이 가능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신 회장에 대한 대법원 선고가 이 부회장에게도 긍정적인 시그널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비록 대법원은 이 부회장의 최씨에 대한 말 지원 자체가 경영권 승계의 대가로 전달된 뇌물로 보고 파기환송 결정을 하였지만, 형량이 가장 높은 승마지원 과정에서 재산을 국외로 빼돌렸다는 혐의가 무죄로 확정되었고, 항소심에서 집행유예 선고의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즉 50억 원 이상의 횡령 사건에 대해서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특경법)의 적용으로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의 법정형 적용을 받게 되지만(제3조 제1항 제1호), 파기환송된 항소심 재판부가 선처를 베푼다면 재판부는 5년의 징역형을 선택할 것이고, 이 부회장이 최근 활발한 투자활동을 하여 경영성과를 내고 있다는 점, 특히 이번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하여 신 회장에 선고된 집행유예와의 균형 등을 들어 징역형의 기간을 2년 6월로 줄이는 작량감경을 이끌어 낸다면(형법 제53조). 내친 김에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금고형을 대상으로 1년 내지 5년의 유예기간이 주어지는 집행유예 선고를 받지 못할 바도 아니기 때문이다(형법 제62조).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대법원은 특단의 사정이 없는 한 ‘법리’적 판단만 하는 법률심이므로 일단 이 부회장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 선고를 받게 된다면 이 부회장도 신 회장과 마찬가지로 이후 검찰이 재차 상고를 하게 되더라도 더 이상 양형과 관련해서는 쌍방이 다툴 수 없게 된 이상 집행유예를 그대로 확정짓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 부회장이 집행유예까지 받기 위해서는 이처럼 작량감경을 받은 상태에서 양형상 참작사유가 있어 집행유예를 선고할만한 사유가 있음을 보여야 하는데(형법 제62조), 파기환송된 원심에서는 결코 쉽지 않은 상황이다. 대법원 산하 양형위원회가 제시하고 있는 집행유예 사유로서 이 부회장은 자신이 자발적으로 뇌물을 공여한 것이 아니라 사실상 압력 등에 의해 소극적으로 범행에 가담하였다는 점, 오로지 회사 이익을 목적으로 하였다는 점 등을 강조해야 하는데, 이번 대법원 판결로 인해 이 부회장은 박 전 대통령과 최씨의 강압에 못 이겨 마지못해 뇌물을 건넸다기보다는 경영승계라는 사익적인 목적으로 뇌물을 건넸다는 사실관계가 확정되어 더 이상 이 같은 집행유예 참작사유를 주장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판부가 이 부회장의 사정을 고려해 선처를 해줄지는 앞으로 두고 볼 문제지만, 이 부회장이 파기환송심에서는 짜고 비틀어야 겨우 집행유예를 노려볼만한 매우 어려운 상황에 놓인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물론 이 부회장이 파기환송된 원심에서 재판을 받는다 하더라도 도주우려 등 특별한 구속사유가 없는 한 구속이 되는 것은 재판 중이 아닌 선고 시점일 것이므로 만약 이 부회장에게 실형이 선고된다 하더라도 항소심 선고시점이 될 것으로 보이는 올해 말 또는 내년 상반기까지 이 부회장은 자유로운 경영활동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부회장이 노심초사 잠 못 드는 나날을 보내야 하는 것은 불가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