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박정훈 기자]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이 벼랑 끝 위기에서 기사회생했다. 

대법원은 17일 열린 상고심에서 신동빈 회장의 경영비리·뇌물수수 혐의에 대해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한 2심의 판결을 그대로 유지했다. 이로써 신동빈 회장은 법정구속을 면했고, 롯데그룹의 경영 일선에서 사업 확장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게 됐다. 

대법원 “유죄에 대한 2심 판결 존중”

17일 열린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는 신동빈 회장에 대한 경영비리·뇌물수수 혐의 그리고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 신영자 롯데복지재단이사장, 신유미 롯데호텔 고문 등 창업주 일가와 현재 롯데그룹 주요 경영진들의 경영 비리에 대한 상고심 재판이 열렸다. 지난해 10월 열린 2심의 판결에 대해 롯데(피고인 측)와 검사 측은 모두 판결 내용을 다시 한 번 검토해 줄 것을 대법원에 요청하는 상고(上告)를 올렸다.   

대법원은 “롯데그룹 회장 신동빈 등에 대한 뇌물공여 등 사건에서 피고인들과 검사의 상고를 모두 기각해 아래와 같은 원심판결을 확정(대법원 2019. 10. 17. 선고 2018도16652 판결)한다”라고 최종 판결을 내렸다.   

▲ 신동빈 회장 등 롯데그룹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문.출처= 대법원공보연구관실

대법원은 “피고인 신동빈이 박근혜 대통령의 요구에 따라 K스포츠재단에 70억원의 뇌물을 공여하고, 피고인 신격호, 신동빈, 신영자가 롯데시네마가 직영하던 매점을 피고인 서미경, 신영자가 지배하는 법인에게 임대해 회사에 재산상 손해를 가하고, 피고인 신격호가 실제 근무하지 않은 피고인 서미경과 딸 신유미에게 급여를 지급해 롯데그룹 계열사의 자금을 횡령하고, 피고인 신영자가 롯데백화점과 롯데면세점 입점 관련해 부정한 청탁을 받고 금품을 수수했다는 등 공소사실에 대해서는 모두 ‘유죄’임이 인정된다”라고 의견을 밝혔다.

최종 판결에 대해서는 “기존 판례 법리에 따라 검토한 결과 원심의 각 유죄, 무죄, 면소 판단에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일탈하거나 관련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음을 확인했다”고 원심을 유지하는 것에 대한 근거를 밝혔다.

롯데그룹은 이번 판결로 신 회장의 법정구속으로 인한 ‘총수의 부재’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했다. 이에 따라 신동빈 회장도 앞으로 더 적극적으로 롯데그룹 경영 일선을 진두지휘 할 수 있게 됐다. 

롯데 앞에 놓인 ‘산적한 과제’들

지난해 10월 집행유예 선고를 받고 구치소에서 풀려난 신 회장은 경영에 복귀한 후 ‘뉴 롯데’를 표방하며 대대적인 개혁을 추진했다. 복잡하게 얽힌 수많은 계열사들의 불법적 상호출자 관계를 정리하기 위해 지주회사를 만들어 주요 계열사들을 여기에 포함시키기 시작했다. 아울러 신동빈 회장은 앞으로 5년간 50조원을 투자해 2023년까지 미래 먹거리가 될 수 있는 화학·유통 등 주요 사업부문 경쟁력을 강화하고 최대 7만명의 관련 인력을 채용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신 회장이 공표한 일련의 계획은 지난 5월 9일 미국 남부 루이지애나 주에 롯데의 화학사업부문 계열사 롯데케미칼이 지은 에탄크래커(ECC) 공장이 준공되는 등으로 구현됐다. 아울러 롯데 유통사업 부문은 이커머스 사업을 운영하는 별도법인 ‘롯데e커머스’를 설립했고, 2020년 3월 롯데 모든 유통계열사들의 온라인 채널을 하나로 통합하는 플랫폼 구축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 엘리 코헨(Eli Cohen) 이스라엘 경제산업부 장관을 만나 양국의 경제 협력을 논의한 롯데 신동빈 회장. 출처= 롯데글부

이 외에도 롯데는 신 회장의 주도로 중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에서 각 계열사의 새로운 수료를 창출하는 작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신동빈 회장은 지난해 12월 4일 베트남을 방문해 하노이에서 응웬 쑤언 푹((Nguyễn Xuân Phúc) 베트남 총리를 만나 롯데의 현지 투자 확대 및 협력 방안 등에 대해 논의하는가 하면 지난 8월 11일에는 엘리 코헨(Eli Cohen) 이스라엘 경제산업부 장관을 만나 이스라엘의 첨단기술 기반 기업에 대한 투자 방안과 한-이스라엘 FTA 체결을 앞두고 양국의 경제 교류 활성화에 대해 논의했다. 이렇듯 롯데의 새로운 수요 창출을 위한 거의 모든 행보에 신 회장은 직접 나서 상황을 챙겼다. 

최근 롯데는 자사의 이름은 내건 리츠(REITs·부동산투자신탁회사)을 출범시켜 기업의 자금 순환을 원활하게 함과 동시에 부동산에서 투자금을 모을 수 있는 경로를 마련했다. 지주회사 중심의 지배구조 개선부터 리츠에 이르기까지 롯데의 모든 행보는 궁극적으로 현재 일본 롯데홀딩스에 종속돼있는 법인 ‘호텔롯데’를 국내 증시에 상장시켜 한국 롯데의 지배 아래에 두려는 계획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돼있다.   

그러나 롯데를 둘러싼 대내외 여건은 그다지 긍정적이지는 않다. 일본의 도발성 수출규제 조치로 인해 일본에 대한 국민 여론의 분노가 표출되기 시작했고, 이 분노의 화살은 일본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롯데에게 쏟아졌다. 롯데에게는 ‘일본 기업’이라는 한껏 악의적인 프레임이 씌워졌고 이는 일본 브랜드 제품들을 판매하는 롯데 계열사들에 대한 불매운동까지 이어졌다. 이러한 여론의 영향으로 유니클로, 롯데주류 등 롯데의 소비재 브랜드들은 매출이 급감하는 직접적인 피해를 입기도 했다.   

아울러, 롯데의 이커머스 사업 확장을 위한 버팀목이 되어야 할 롯데의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이 국내 소비심리 위축으로 인해 부진한 실적을 기록하면서 해당 부문의 계획 추진에도 많은 어려움이 따르고 있다. 이에 최근의 롯데는 그 어느 때보다 신동빈 회장의 역할론이 다시 강조되고 있었다. 

이번 재판으로, 신동빈 회장은 이후에 특별한 범법행위를 저지르지 않는 한 구속수감을 걱정할 일은 없게 됐다. 신 회장 중심의 경영 체제를 위협하는 어떤 의미로 가장 큰 위험요소가 배제된 것이다. 그러한 신 회장 앞에는 현재 롯데가 처한 여러 위기상황들을 해결해야한다는 과제가 쏟아졌다. ‘향후 5년 간 주요 사업에 50조 투자’라는 약속도 지켜내야 한다. 신 회장의 뉴 롯데 행보에 시선이 집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