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리커창 중국 총리가 지난 14일 중국 시안의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깜짝 방문한 가운데,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이 전개되며 탈 중국에 나선 외국기업에 대한 메시지라는 분석과 함께 자국 경제계에 대한 경고, 나아가 반도체 산업에 대한 의지를 보인 다중포석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외국 기업, 들어오라"
리커창 중국 총리가 중국 시안의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방문한 것은, 2014년 5월 공장이 들어선 후 처음이다. 지금까지 지역관리가 현지 공장을 방문한 사례는 있으나 정상급 인사가 찾은 것도 이례적인 일이다. 심지어 업계에 따르면 리 총리의 방문 일정은 사전에 조율되지 않았다. 다소 즉흥적인 방문이었다는 설명이다.

리 총리의 중국 시안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방문은 외국 기업의 탈 중국 행렬을 의식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극적인 합의를 끌어내기는 했으나 미중 무역전쟁이 여전히 벌어지며 외국 기업이 중국에서 대거 물러나는 상황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리 총리의 현장 발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리 총리는 당시 공장을 방문해 "중국 대외 개방의 문은 더 커질 것"이라면서 "우리는 지식재산권을 엄격히 보호하고 중국에 등록한 모든 국내외 기업을 동일하게 대우할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글로벌 기업들이 중국을 떠나며 신기술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한편 고용지수가 낮아질 가능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외국 기업은 걱정하지 말고 중국과 함께하자"는 메시지를 보냈다는 해석이다.

삼성전자가 최근 마지막 남은 중국 스마트폰 공장을 폐쇄했다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그리고 리 총리가 방문한 공장이 생산하는 반도체는 기술 집적도 측면에서 스마트폰과 비교해 더 우위에 있다. 결국 리 총리의 반도체 공장 방문은, 삼성전자가 비록 스마트폰 공장은 폐쇄했으나 기술적 집적도가 높은 반도체는 여전히 중국에 남겨뒀음을 시사하며 "기술 발전의 측면에서 중국과 계속 협력하자"는 메시지를 남겼다는 평가다.

물론 리 총리의 의도대로 외국 기업의 탈 중국 러시가 멈출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미 탈 중국 러시는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일본 닛케이는 지난 8월 애플, 닌텐도(Nintendo) 등 50여 개 글로벌 기업이 중국 내 생산 이전 계획을 발표했거나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PC 제조업체인 다이나북(Dynabook)의 카쿠도 기요후미 최고경영자(CEO)는 닛케이와의 인터뷰에서 "관세 위험을 피하고 미국 정부 조달의 대상이 되기 위한 영구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국의 PC 제조업체 HP와 델도 중국에서 생산하고 있는 노트북의 최대 30%가량을 동남아 등으로 이전할 생각이다. 여기에는 중국의 높아진 임금 사정도 고려됐다는 후문이다.

중국 정부가 도입 예정인 '사회 신용 시스템'도 뇌관이다. 중국 정부는 해당 시스템을 통해 14억명의 자국인의 정보를 확보해 분석할 생각인 가운데, 외국 기업들은 잠재적인 불이익을 걱정하고 있다. 

홍콩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14일 "외국 기업들은 중국 정부의 사회 신용 시스템에 우려하고 있다"면서 "기업이 공산당원을 얼마나 고용하고 있는지 조사하고 사업계약과 사회적 책임, 규정 준수 여부도 확인하는 사회 신용 시스템은 외국 기업에게 불이익이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 국무원이 오는 2020년 이 시스템을 본격 도입할 예정인 가운데, 외국 기업들은 자사가 중국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각종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하는 중이다.

"우리도 경각심 가져야"
리 총리의 중국 시안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방문이 자국 경제계의 경각심을 일깨우려는 행보라는 분석도 있다.

리 총리의 방문 시기와 이후 현지 보도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리 총리의 방문은 중국 3분기 국내총생산 증가율 발표일인 18일 직전에 이뤄졌다. 글로벌 경제위기가 커지며 중국의 각종 경제 기표도 위축된 가운데 18일 발표될 국내총생산 증가율도 사상 최저 수준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 때 리 총리가 중국 시안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방문했다는 뜻이다.

이어 나오는 언론의 보도가 중요한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삼성전자를 추켜세우는 후속보도를 내놓고 있다. 글로벌타임스는 16일 삼성전자가 중국 스마트폰 공장을 폐쇄한 사실을 언급하며 "삼성전자는 패배자가 아니다"면서 "품격을 보여줬다"고 보도했다. 여기서 말하는 품격은, 삼성전자가 스마트폰 공장을 폐쇄하며 마지막 직원에게 갤럭시 디바이스를 선물하고 직원들에게 질서있는 퇴직금을 제공한 것 등을 말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논란으로 냉각된 양국 관계가 여전히 후유증을 앓고있는 상황에서 중국 관영언론이 스마트폰 공장 폐쇄를 결정한 삼성전자를 극찬하고 나섰다는 뜻이다.

중국의 '본심'은 이후에 나온다. 글로벌타임스는 "직원들을 무시하는 일부 중국 제조 업체들에 삼성전자가 교훈을 줬다"면서 화웨이 및 샤오미 등 자국 기업까지 거론하며 "중국 기업들은 외국 경쟁사로부터 건강한 기업 문화를 만들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외국 기업의 탈 중국 러시를 막는 포석인 한편, 삼성전자를 추켜세우며 자국 기업의 실명까지 거론해 질타한 것이 핵심이다. 미중 무역전쟁 등으로 자국 경제가 휘청이는 상황에서 일종의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메시지로 풀이된다. 18일 국내총생산 증가율을 발표하기 직전 리 총리가 시안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방문하고, 이어 나온 후속보도의 '결'을 살펴야 하는 이유다.

리 총리의 경각심 메시지는 중국 시안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방문한 다음날인 15일 더욱 구체화된다. 그는 시안에서 경제 간담회를 열어 "경기 하방 압력이 커지고 실물경제의 어려움이 두드러지고 있다"면서 "긴박함과 책임을 가지는 한편 안정적인 일자리 증가 등을 통해 올해 주요 경제 목표를 달성해 내년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 중국 경제에 경고등이 들어오고 있다. 출처=갈무리

"반도체 앞으로"
리 총리가 중국 시안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찾은 것을 두고 업계에서는 자국의 반도체 굴기, 나아가 기술굴기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는 해석도 나온다. 미중 무역전쟁이 격화되며 자국의 기술굴기 예봉을 꺾으려는 미국의 압박이 이어지고 있으나 여기에 굴복하지 않으며, 중국몽 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펼치겠다는 의지다.

리 총리는 중국 기술굴기인 중국제조 2025의 주창자기도 하다. 그는 실제로 2014년 3월 열린 양회(당의 전당대회에 해당하는 정치협상회의와 정기국회에 해당하는 전국인민대표회)에서 모습을 드러낸 인터넷 플러스, 그리고 중국제조 2025의 핵심 인사다. 양회 정부업무보고에서 인터넷 플러스 액션플랜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중국 기술굴기의 핵심 인물인 리 총리가 현지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찾은 것은 결국, 미중 무역전쟁의 흐름에서도 반도체를 핵심으로 하는 기술굴기, 대국굴기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여겨진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에 따르면 중국은 올해 2분기 33억6000만달러를 반도체에 투자한 것으로 집계됐다. 2분기 글로벌 반도체 장비 출하액이 133억1000만달러에 그쳐 전분기 대비 3% 줄어든 가운데, 중국은 오히려 투자액을 전분기 대비 43% 늘렸다. 글로벌 1위다. 중국은 반도체 경쟁력 강화는 물론, 자체적인 생산을 통해 국산화 작업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향후 10년간 약 170조원을 반도체 산업에 투자하며 초기 자금규모만 1200억위안, 지방정부 기금 및 사모기금이 600억위안에 달하는 규모의 경제를 이미 완성했다. 중국 정부는 중부지역 굴기를 위한 13차 5개년(2016~2020년) 계획에 메모리 반도체 사업을 포함시켰으며 세계반도체장비재료협회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0년까지 중국 내에 적어도 26개의 반도체 공장이 들어선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그 연장선에서 기술굴기의 의지를 보인 셈이다.

한편 일각에서는 휴전에 들어갔으나 여전히 미중 무역전쟁이 전개되고 있으며, 중국 국내총생산 증가율이 발표되기 직전인 미묘하고 중요한 시기 리 총리가 '한국'의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찾은 지점에도 주목하고 있다. 리 총리의 행보에 미국과의 분쟁이 여전한 상태에서 한국과 힘을 모으려는 진영논리의 포석도 깔려있다는 말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