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김덕호 기자] LG화학, 삼성SDI, SK이노베이션 등 한국 배터리업체들의 미래차 시장 공략이 속도를 내고 있다. 한정된 내수 시장에서 탈피,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로의 공급을 늘렸고, JV설립을 통한 합자회사 설립도 이어지고 있다. 내수 잡기에 나선 중국과 자국 연합을 이룬 일본 업체에 대응하는 한편 미래차 주도권을 잡기 위한 움직임이다.

13일 시장조사기관 SNE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전기차 시장 규모는 올해 400만대 안팎으로 예상된다. 내년인 2020년에는 850만대, 2025년에는 2200만대까지 확장될 것으로 기대되는 시장이다.

▲ SK이노베이션 직원이 생산된 배터리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SK이노베이션

배터리는 미래차로 꼽히는 전기자동차의 심장에 비유된다. 내연기관의 ‘석유’를 대체할 유일한 동력원임은 물론 전기차 제조원가의 40%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도 크다. 전세계 전기차 배터리의 90% 이상을 한국과 중국, 일본 기업이 생산할 정도로 지역적 편중이 심하다.

SNE리포트에 따르면 전기차 배터리 시장 점유율 순위는 중국 CATL(점유율 26%), 일본 파나소닉(점유율 24%), 중국 BYD(점유율 15%)이 탑3를 지키고 있다. 뒤를 이어 LG화학(점유율 13%)과 삼성SDI(점유율 4%), SK이노베이션(점유율 2%)이 자리잡았다.

한중일 3국이 전체 미래차 시장에 대응하는 모습은 다소 다르다. 중국과 일본은 안정된 내수 시장을 바탕으로 판로 확장에 나서고, 한국 제조사들은 해외투자 확대,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과의 합작을 통해 시장 확대에 나선다.

일본 파나소닉은 토요타와 손을 잡았다. 배터리 합작사가 설립됐고, 마쓰다, 스바루 등 토요타와 지분관계를 갖은 완성차 업체에도 파나소닉의 배터리가 탑재될 예정이다.

전체 전기차 수요의 50%가 몰려있는 중국은 전폭적인 보조금 정책을 통해 CATL, BYD 등 자국 업체 육성에 나서고 있다. CATL은 2017년 이후 세계 시장점유율 1위를 유지하고 있고, 중국 BYD는 전기차와 전기차용 배터리를 모두 생산하는 유일한 기업이다.

우리나라의 배터리3사(LG화학, 삼성SDI, SK이노베이션)는 한정된 내수 시장에서 탈피, 글로벌 완성차 업체와의 관계 형성에 주력하고 있다. 최대 시장인 중국에 투자하는 한편 폴란드, 헝가리에 투자를 집중하며 유럽 전기차 시장에 집중한다.

▲ 글로벌 전기차 수요 전망. 사진=SNE리서치

가장 주목받는 시장은 유럽이다. 유럽연합(EU)은 파리기후협정 이행을 위한 규제 강화의 일환으로 승용차의 CO2(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21년 1㎞당 95g이하로 제한하는 규정을 신설했다. 또 2021년과 2025년, 2030년 등 3차례에 걸쳐 자동차 배기가스 기준이 상향된다.

완성차 업체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당장 2021년 이후부터 기준을 초과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 1g당 95유로의 벌금을 내야 해서다. 글로벌 1위 완성차 업체 폭스바겐의 경우 2021년 시행되는 규제의 CO2 목표 미달 벌금으로 14억유로를 내야 할 것 이라는 연구도 있다.

또 EU는 2025년에 판매되는 차량에는 2021년 기준 대비 15%, 2030년에는 2020년 대비 37.5% 낮은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자동차 업계가 유럽은 "내연기관의 퇴출 수순을 밝고 있다"고 보는 이유다.

이에 배터리 업체들도 2025년 양산을 목표로 투자를 집중하고 있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배터리 제조사들이 2025년 양산을 목표로 설비를 증설하고 있고, 예상되는 전체 생산능력은 1863GWh에 달한다. 380km를 주행할 수 있는 차량 3100만대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규모다.

LG화학은 221.5GWh의 연산능력을 확보, 글로벌 1위 업체가 되고, 중국 CATL(204.2GWh), 일본 파나소닉(137.5GWh), 삼성SDI(131.6GWh), SK이노베이션(98.7GWh)의 순위가 된다.

한병화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EU의 현재 차량 CO2 배출 감축목표는 2021년 95g/Km인데 2015년 평균이 130g이었다"며 "EU의 CO2 감축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약 2% 수준인 EU의 전기차 판매비중이 2030년에는 30% 이상을 넘어서야 할 것"이라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전기차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기대되는 이유다.

▲ 2025년 전기차 배터리 생산량(추정).사진=SNE리서치

문제는 아직 전기차의 본격적인 양산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배터리업계는 막대한 투자를 진행하고 있지만 투자비 회수는 물론 해당 부문 실적 개선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투자비용 조달도 한계다.

중국과 일본의 제조사들도 가만히 있을리 없다. 투자비 절감과 안정적 수요처 확보도 달성해야 하는 등 과제도 있다. 각 사가 기술유출을 우려하면서도 JV설립에 적극 나서는 이유다.

올해 상반기의 경우 전기차 배터리 3사(LG화학, 삼성SDI, SK이노베이션) 중 삼성SDI 홀로 흑자(영업이익 949억원)를 기록했다. LG화학(영업손실 2759억원), SK이노베이션(전지부문 영업손실 1540억원)과 달리 ESS, 자동차 배터리 부문 비중이 적었던 탓이다.

특히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은 시장 선점을 위해 막대한 금액의 투자를 이어오고 있다. LG화학의 차입금은 역대 최고 수준인 9조원에 육박하고, SK이노베이션의 순 차입금은 2016년 9000억원에서 올해 상반기 말 연결기준 4조9000억원으로 급격히 증가했다.

배터리 업계가 기대하는 흑자전환의 분기점은 2021년이다. 앞서 밝힌 EU의 강화된 배기가스 규제가 시행되는 첫 해다. 이 시기를 전후해 벤츠, BMW, 아우디, 폭스바겐, 볼보 등이 전기차 생산에 본격 나서게 되고, 현대·기아차 등 후발 업체들도 전략 신차를 내놓을 예정에 있다. 전기차는 물론 관련 산업들의 비약적인 성장이 기대되는 시점이다.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세계 자동차 시장의 가장 큰 축 중 하나인 유럽과 중국에서 환경 규제를 강화하고 있고, 이에 완성차 업체들은 전기차 출시에 적극 나서고 있다”라며 “완성차 업체들이 적극적으로 나서는 반면 배터리를 공급하는 업체는 한정되어 있어 이 시장은 공급자 중심 시장으로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라고 전했다.

새 심장을 찾아라

한편 미래차 시장으로의 변화가 가속화되면서 완성차 업체들은 내연기관에 대한 연구를 중단했다. 차량의 '심장'으로 일컬어지던 파워트레인의 개발을 중단한다는 것은 자동차 업체들의 '절대 갑' 지위 상실을 의미한다.

그간 쌓아온 부품-완성차 구조의 '수직계열화'도 큰 의미를 갖을 수 없게 됐다. 현대차는 ‘철강에서 완성차까지, 그리고 폐차를 다시 새 차로’ 만들겠다던 수직계열 비전을 수정하고, 미래 산업 부문 글로벌 업체들과의 협력 체제 구축을 시작했다.

특히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전기차 배터리 자급 움직임이 적극적이다.

파나소닉-토요타, 폭스바겐-노스볼트, LG화학-지리, LG화학-GM, SK이노베이션-EVE, SK이노베이션-콘티넨탈, SK이노베이션-베이징자동차 등 JV설립도 적지 않다. SK이노베이션은 폭스바겐과 미국에 전기차 배터리 JV를 설립하기 위한 논의도 진행중이다. 다만 LG화학과의 소송이 문제다.

현대차는 아직 배터리 관련 JV설립이 없다. 다만 현대모비스와 LG화학이 합작 설립한 에이치엘그린파워를 두고 있다. 사업 영역은 ‘배터리 팩’ 제조에 국한됐고, 배터리 생산과의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