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양인정 기자] 수원지방법원이 첫 자율 구조조정 회생절차를 시도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KEB하나은행이 수원지법의 첫 자율 구조조정을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자율 구조조정이 성공하면 시중은행이 주도하는 첫 회생 구조조정으로 남게 된다.

13일 구조조정 업계에 따르면 수원지방법원에서 자율구조조정(ARS) 절차가 진행될 전망이다. 수원지방법원 첫 자율구조조정은 하나은행의 요청으로 성사됐다. 시중은행이 자율구조조정에 나서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자율 구조조정(ARS, Program, Autonomous Restructuring Support Program) 회생 신청 기업에 대해 법원이 개시결정에 따른 법정관리를 유보하는 절차다. 법정관리를 유보하는 사이, 법원은 채권단과 채무자 기업이 자율적으로 구조조정 협약을 체결하도록 지원한다. 채무자 기업의 실사와 중재가 법원의 지원내용이다. 

수원지방법원에 따르면 법원이 처음으로 추진하는 자율 구조조정의 대상기업은 철강재 제조업체인 A중소기업이다. 화성시에 소재하는 이 기업은 단기 유동성 위기에 몰려 주채권은행의 대출금을 만기일에 상환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채권은행은 하나은행. 

하나은행은 회사의 회생신청 내용을 접하고 법원에 자율 구조조정 협의를 요청, 법원이 이를 심리하고 있다. 법원은 채무자 회사의 다른 채권은행에도 구조조정 협의에 응할 의사가 있는지 의견을 조회했다. 하나은행을 비롯한 채권단협의체는 회사의 자율 구조조정 협의에 응할 수 있다는 의사를 법원에 통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권에 따르면 A회사의 자율 구조조정의 적용 여부는 오는 16일에 결정된다. 이날 재판부는 하나은행과 채권단의 의견을 수렴해 개시결정을 유보할지 결론을 내릴 전망이다. 

재판부가 A회사에 대해 개시결정을 유보하면 법정관리는 보류되고 회사는 하나은행을 포함한 채권단과 본격적인 구조조정 협의를 시작한다. 채권단의 구조조정 협의가 이뤄지면 회사는 기존 회생절차를 취하한다는 방침이다. 

수원지방법원은 올 들어 기업회생 신청건수가 지난해 대비 3배 증가했다. 올해 3월 수원고등법원이 개원하면서 수원 등 경기남부 지역의 기업들은 서울회생법원이 아닌 수원지법에만 회생 및 파산사건 신청을 가져갈 수 있게 되면서부터다. 

대법원사법통계에 따르면 2018년 3월부터 6월까지 수원지법에 접수된 법인회생 사건은 18건에 머물렀으나, 수원고법 개원 이후 올해 3월~6월 수원지법 법인회생 사건은 55건으로 3배 늘어났다. 

사건이 몰리면서 기업 구조조정 기법도 다양해지고 있다. 이번 ARS시도의 배경에도 이 같은 분위기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올 3월에 개원한 수원고등법원. 사진=수원고등법원

◆ 한계기업 늘어나는데...금융권 ARS활성화 될까

구조조정 업계는 시중은행이 자율 구조조정을 요청한 것을 두고 모범적인 사례가 될지 주목하고 있다. 

회생을 신청한 채무자 기업은 자율 구조조정에 성공하면 신규자금을 지원하거나 상환유예와 같은 기회가 주어진다. 말하자면 회생절차 초기에 기촉법상 기업워크아웃을 하는 구조인데, 법정관리에 따른 기업가치의 하락도 막을 수 있다. 법원이 법정관리를 미루는 사이, 회사는 채권단과 P플랜(사전 회생계획안)과 DIP금융(회생기업 융자) 접목해 출구전략을 구사할 수도 있다. 잘 활용된다면 채권은행은 손실을 최소화 할 수 있고 기업은 초기에 구조조정에 성공할 수 있다.

장점은 많지만 하나은행과 같이 시중은행이 적극적으로 나서는 상황은 아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시중은행이 아직 자율 구조조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 해결할 과제 중 하나"라며 "아직도 시중은행에서는 거래처 회사가 회생을 신청하면 회생가능성을 따져보는 것이 아니라 대출한 채권을 신속히 매각하는 것에 역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 같은 원인에는 회생회사에 대한 직,간접적 지원으로 책임 소재가 생기는 금융회사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고 말했다. 

앞서 금융위는 지난 5월 '기업구조조정제도 점검 TF' 회의에서 ARS를 활성화시키기로 하고 시범사업으로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를 통해 3~4개 기업에 20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시중은행의 자율 구조조정 요청은 의미가 적지 않다는 평가다. 정부나 정책금융기관 중심의 구조조정에서 벗어나 은행과 회생기업의 협의만으로 정상 회사로 변모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동인광학, 일송개발(용인CC,안성GC),제일병원, 다이나맥,폴루스바이오팜 등이 ARS을 적용했으나 조기에 구조조정에 성공한 사례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중소 한계기업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정부가 시중은행이 중소기업 구조조정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한국은행이 8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김두관 의원(더불어민주당)에 제출한 ‘2010년 이후 연도별 한계기업 현황’에 따르면 3년 연속 영업이익으로 이자를 갚지 못하는(이자보상배율 1미만)기업은 2010년 기준 전체 기업 중 11.4%에서 2018년 14.2%로 2.8%포인트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수로는 2400개에서 3236개로 늘었다.

이 가운데 중소기업의 한계기업 비중은 2010년 12.0%에서 2018년 14.9%로 2.9%포인트 늘어났다. 기업수는 2050개에서 2802개로 늘었다. 한계 중소기업은 2015년 15.0%를 찍은 이후 14%대에서 계속 머물고 있다. 한계기업 비율 증가는 대체로 중소기업의 어려움에 따른 영향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오랜 업력으로 기술 경쟁력이 있으나 신규투자 실패 등으로 회생에 들어간 경우 채권단을 구성해 자율 구조조정에 대해 검토를 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일시적 유동성 위기로 회생 가능성이 있는 기업이라면 자율 구조조정 제도를 적극 활용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