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이가영 기자] 2015년 이후 장기불황에 시달려온 국내 조선업계에 화색이 돌고 있다. 지난해 7년 만에 선박 수주액 세계 1위 탈환을 시작으로, 올해 들어서는 5월 이후 8월까지 4개월 연속 세계 선박 발주량 1위를 기록하는 등 업황 회복의 조짐이 보이고 있어서다. 

여기에는 국제해사기구(IMO)의 환경규제 ‘IMO2020’ 시행이 코앞으로 다가온 영향이 크다. 내년부터 선박 배출가스에 포함된 황산화물 함량 허용치를 기존 3.5%에서 0.5% 이하로 낮추도록 하는 규제가 시행됨에 따라 한국이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LNG선의 발주가 크게 늘고 있다.

조선업계는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과 선제 설비투자를 무기 삼아 IMO2020를 중국 등 경쟁국을 따돌릴 절호의 기회로 삼겠다는 구상을 펼치고 있다. 

크루즈 1척서 자동차 100만 대 분량 공기오염물질 배출

그간 세계 각국은 자동차와 철강 등 다양한 산업분야에서 발생하는 환경 오염물질을 줄이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러나 공해를 누비는 선박은 예외였다. 육상 운송과 달리 국가나 지역 단위의 배출기준을 적용하는 데 한계가 있었던 탓이다. 

 

글로벌 회계법인 KPMG에 따르면 전 세계 상위 규모 15척 선박이 전 세계 모든 자동차보다 더 많은 이산화황과 질소산화물을 배출한다. 또한 1척의 크루즈 선박이 하루에 배출하는 공기오염물질은 자동차 100만 대 수준에 달한다. 특히 선박용 연료의 황산화물 배출기준은 육상 운송 연료에 대한 기준보다 현저히 뒤떨어져 심각한 대기오염을 유발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전체 수송용 석유의 약 7%에 불과한 선박 연료유가 전체 수송 부문에서 배출하는 황 배출량의 90%가량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상황이 이쯤 되자 국제해사기구(IMO)는 더 이상의 오염을 막기 위해 내년 1월부터 친환경 규제를 강화하겠다는 ‘IMO2020’을 2016년 10월 내놨다. IMO는 해운 국제 기준을 수립하는 유엔 소속 기구로, 한국을 포함한 총 174개국이 회원국으로 활동하고 있다. 

IMO2020는 선박 운행에 사용하는 기름 속 황산화물 비중을 기존 ‘3.5%’에서 ‘0.5%’이하로 줄이는 것을 골자로 한다. 기존보다 5배 이상 규제가 강화되는 탓에 해운 역사상 가장 강력한 선박 배출가스 규제로 불린다. 

특히 기존 운항 선박들에도 IMO2020 규제가 적용되면서 해운 선사들의 발등에는 불이 떨어졌다. IMO 기준을 맞추지 못한 선박은 회원국 항구에 입항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해운사들은 연료에서 대기오염물질인 황산화물의 함유량을 줄이는 방법을 다각도로 찾아 나서고 있다. 

IMO2020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는 선박유를 저유황유 혹은 선박용 경유로 교체하는 방법이다. 두 번째는 기존 선박에 배기가스 정화장치인 스크러버를 장착하는 방법이다. 마지막 방법은 LNG추진선을 새로 수주하는 방법이다. 

저황유의 경우 연료비가 40%나 더 든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스크러버는 비용이 저렴하지만 임시방편에 불과하고, 크기가 커 설치에도 한계가 있다. 안정성 문제도 꾸준히 거론된다. 그러다보니 LNG를 원료로 쓰는 LNG추진선이 가장 이상적인 대안으로 꼽히고 있다. 

LNG추진선은 기존 선박보다 선가가 20~30%정도 비싸다. 따라서 초기에 대규모 투자비용이 필요하다. 하지만 황산화물 배출량을 100% 가까이 제거할 수 있고, 질소산화물과 미세먼지, 이산화탄소 등 각종 오염물질 감축할 수 있다. 업계에 따르면 통상 질소산화물과 미세먼지는 90%, 이산화탄소는 15%까지 줄일 수 있다. 또한 LNG는 기존 선박유에 비해 발열량이 20% 이상 높기 때문에, 연료 소모량이 적으며 연료유를 정화하기 위한 장치도 불필요해 선박 운영비도 감소시킬 수 있다. 연료비도 35%가량 저렴하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와 KDB산업은행이 공동으로 펴낸 ‘글로벌 친환경 선박기자재 시장동향 및 해외시장 진출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세계 신조발주 선박시장의 60.3%를 LNG 연료추진선 시장이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보고서에 따르면 LNG운반선은 2025년까지 최대 1962척, 선박에 LNG를 연료로 공급하는 LNG벙커링선도 2016년 31만3000톤에서 2030년 320만톤으로 10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관측된다. 이에 업계에서는 장기적으로는 LNG추진선 수주가 다른 선택지보다 유리할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실제 시장 분위기도 LNG추진선 발주 쪽으로 기우는 분위기다. 

최근에는 글로벌 주요 국가들도 LNG추진선 도입을 촉진시키기 위해 활발한 정책을 내세우고 있다. 

네덜란드는 육상 및 해상 대형화물 수송에서 LNG 사용을 촉진하도록 하기 위해 2012년 LNG 플랫폼인 Dutch National LNG Platform을 출범시켰다. 이 플랫폼은 수송업계 관계자들이 LNG 충전시설을 간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LNG 관련 인프라를 개발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싱가포르의 경우 LNG 벙커링 산업을 적극 육성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국제 해양환경 규제에 맞춰 해양항만청의 주도로 2017년부터 LNG 벙커링 파일럿 프로그램에 착수했다. 해당 프로그램은 LNG 추진선 선박 건조를 위한 다양한 자금을 지원한다. 

이 밖에 일본과 중국도 정부 주도로 LNG 벙커링 육성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일본은 요코하마항을 LNG벙커링 거점으로 육성하는 로드맵을 수립해 세부계획을 추진 중이며, 중국도 하천운항 선박을 중심으로 LNG 벙커링 인프라를 오는 2025년까지 구축한다는 계획안을 지난해 8월 발표했다.  

한국 조선사, 규제로 날개 달까

IMO2020의 환경규제 강화가 국내 조선업계에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국내 조선업계가 LNG추진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 분야에서 이미 기술력을 입증해 선두를 달리고 있어서다. 초대형 컨테이너선과 유조선 보급률이 전 세계적으로 포화상태에 이른 상황에서 LNG선은 국내 조선사들이 오랜만에 만난 블루오션이다. 

실제로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조선업계는 전 세계에 발주된 LNG선 70척 중 66척(94%)을 따냈다. 올 1~8월에도 전 세계에서 발주된 LNG선 27척 가운데 약 90%에 이르는 24척을 수주하며 LNG선 발주물량을 싹쓸이 하고 있는 상황이다. 

올해 미중무역분쟁과 세계경제 둔화 등으로 지난해보다 발주가 크게 감소한 점을 감안하면 고무적인 수치다. 선주들의 선박 구매 심리가 위축되면서 상반기 전세계 선박 발주량은 1026만CGT에 그쳤다. 전년 대비 42% 줄어든 수치다. 

 

이어 “한국 조선업의 선박 인도량은 연평균 균일한 수준이 유지되고 있다. 모든 선종에서 LNG추진 사양이 탑재되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중국과 일본 조선업의 선박 인도 지연은 더욱 심해지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박무현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중국 조선업의 선박 인도량은 2017년부터 2년 연속 줄어들고 있으며 감소폭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일본 조선업 역시 선박 인도량 감소폭이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하반기에는 대형 프로젝트인 카타르·모잠비크 LNG선 발주 등 이벤트가 예정돼있어 수주 잭팟이 터질 것이란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우선 카타르는 미얀마 가스전인 ‘노스필드’ 확장 프로젝트 및 카타르 국영석유와 미국 엑손모빌이 미국에서 진행하는 ‘골든패스LNG’ 프로젝트 등으로 총 60척 규모의 신조 발주가 전망된다. 아울러 모잠비크의 미국 에너지업체도 LNG개발 프로젝트로 3분기 중 약 15척에 달하는 LNG 운반선을 발주할 예정이다. 이들이 발주하는 규모만 모아도 올해 LNG 운반선 총 발주량의 두 배가 넘는다. 나이지리아 NLNG 10척도 예정돼있다. 일부 프로젝트가 해를 넘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장기적으로 봐도 호재임은 분명하다. 

조선업계는 세계 초일류 기술과 선제 설비투자를 무기 삼아 규제 강화를 후발업체들과의 격차를 벌리는 기회로 활용하겠다는 구상을 내놓고 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자국 발주 및 수주 물량을 주로 만드는 일본을 제외하면 다른 나라에서 발주되는 LNG 선박의 99%를 한국 조선소가 가져온다. LNG 선박은 한국이 두각을 보이고 있는만큼 장기적으로는 IMO의 규제 강화가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