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박정훈 기자] ‘삼국지연의’를 보면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주인공인 촉한(蜀漢)의 유비와 그의 가장 강력한 경쟁상대인 위(魏)의 조조가 있다. 물론 동오(東吳)의 손권도 있지만 작품 내 비중을 감안하면 중심이 되는 두 축은 유비와 조조다. 흥미롭게도 국내 유통업계의 경쟁구도도 삼국지의 천하삼분(天下三分)과 유사하다. 업계 내 사업규모와 영향력을 삼국지에 대입하면 롯데가 ‘위나라’, 유통업 분야에서 롯데와 끊임없는 경쟁구도를 이루는 신세계는 ‘촉나라’ 그리고 현대백화점은 ‘오나라’로 볼 수 있다. 근래에 유통업계에 일어난 변화들을 반영하는 기업들의 대응을 감안하면 현재 업계 경쟁의 가장 큰 축은 단연 롯데와 신세계다. 

과거 두 기업의 유통업 내 경쟁은 오프라인 유통점포 운영에 한정됐다. 그러나 최근에는 오프라인 유통 인프라, 온라인 유통 플랫폼 그리고 유통에 활용되는 첨단 IT기술 활용에 이르는 광범위한 분야에서 두 기업은 ‘아주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이코노믹리뷰’에서는 국내 유통업계 전체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롯데와 신세계의 유통사업과 각 기업을 이끄는 총수들의 스타일이 한껏 녹아들어 있는 각 사 유통전략들을 비교해보고자 한다. 

롯데와 신세계는 분명한 경쟁구도가 있다. 하지만 서로를 특별히 의식해 상대를 “이겨버리고 이 업계의 주도권을 모두 가져가겠다”라는 식의 전투 의지를 드러내지는 않는다. 일련의 경쟁 구도는 사실 서로를 의식해서라기보다는 생존을 위한 방향성의 일치다. 유통업계의 변화들을 이끌 수 있는 대기업의 입지에서 장기적 관점의 생존을 고민하는 큰 틀의 방법론이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두 기업과 각 기업의 총수들은 ‘본의 아니게’ 강한 경쟁 구도를 이루게 됐다.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두 기업은 백화점, 대형할인점(마트)의 점포 확장으로 경쟁을 해왔다. 과거 유통업의 메인은 오프라인 점포였고 이 점포의 확장은 곧 수익성과 직결되는 요인이었다. 그래서 두 기업은 전국의 주요 상권이 밀집된 입지에 경쟁적으로 점포를 냈다. 그러나 이러한 오프라인 점포 확장 경쟁은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주요 상권’이라는 점포 입점의 전제 조건은 부지 매입과 인프라 구축에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더구나 제한된 조건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점포 확장은 각자에게 무리였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 두 기업의 경쟁은 전국의 주요 상권을 오프라인 점포로 차지한 후에는 더 격화되지는 않았다. 이와는 별개로 추가 수요 창출을 위해 나란히 백화점, 마트 등의 해외 진출로 눈을 돌린 두 기업은 나란히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실패를 경험한다.

리더쉽 대결의 구도  

여기에 하나 더해 두 기업이 묘한 경쟁구도를 이루게 된 것에 일조한 또 한 가지의 재미있는 점은 현재의 리더들이 본격적으로 경영 일선에 나서고 대외적으로 기업을 완벽하게 대표하는 인물로 여겨진 시점이다.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대략 이 시점은 2017년경이다.  
   
신세계그룹 이명희 회장의 장남인 정용진 부회장은 2000년대 초반부터 그룹의 차기 경영진으로 언급됐고, 회장 다음인 부회장의 직급까지 올라갔다. 2010년 이후 신세계의 유통 사업에는 정용진 부회장의 영향력이 많이 부각되기 시작한다. 2017년에 이르러 신세계그룹의 경영은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정유경 신세계백화점 총괄사장 등 오너 일가 남매에게 양분되는 구도가 확실하게 나타나고, 표면적으로 이명희 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다.

정용진 부회장은 지주회사 ㈜이마트에 포함된 대형할인점 이마트와 그에 속해있는 유통사업, 식품, 호텔, 건설 등의 경영을 맡고, 정유경 총괄사장은 ㈜신세계에 포함된 신세계백화점, 뷰티사업, 면세점 등의 경영을 맡는다. (항간에는 이명희 회장이 두 남매가 경영으로 내는 성과들을 가지고 추후 자신을 이어 신세계그룹 전체를 이끌 경영자를 결정하려 한다는 의견도 있으나, 아직까지는 어디까지나 ‘그럴 수도 있겠다’라는 정황상의 해석에 불과하다.) 

이와 비슷한 시기 롯데 신동빈 회장은 ‘왕자의 난’으로 불리는 경영권 분쟁에 휘말린다. 애초 롯데는 창립자이자 최고 경영자인 신격호 회장의 권한이 막강했고, 그가 경영을 직접 이끌던 동안 장남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은 일본 롯데에서 차남인 신동빈 회장은 한국 롯데에서 아버지를 경영으로 보조하는 역할을 맡아왔다.

그러나 90대 고령에 이른 신격호 회장이 직접 그룹을 경영하는 것에는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이 시기 한국 롯데를 사실상 직접 이끌면서 그룹의 매출 규모를 거의 4배(20조원 → 80조원)로 성장시킨 신동빈 회장의 리더쉽이 부각됐다. 반면, 일본 롯데에서 경영 실적을 내지 못한 신동주 전 부회장은 일본 주주들에게도 지지를 받지 못했고 경영진의 지위를 잃었다. 신동주 전 부회장이 롯데에 대한 경영권을 요구하면서 약 4년에 이르는 롯데 오너 일가 형제의 경영권 다툼이 지속된다. 이는 2017년 6월 24일 신격호 총괄회장직에서 물러나면서 신동빈 회장은 한국과 일본 롯데의 명실상부한 최고 경영자가 된다.

두 기업의 사업에서 유통이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은 만큼 롯데와 신세계는 유통업의 확장에 발동을 걸기 시작한다. 이후 이커머스(전자상거래)와 물류 그리고 이를 지원하는 첨단 IT기술을 기반으로 성장한 아마존 등 글로벌 유통업체들의 성장 궤도가 전 세계 유통업계의 흐름을 바꾸자, 롯데와 신세계는 이커머스 확장으로 이전에 없던 새로운 경쟁 구도를 이룬다. 이것이 극명하게 드러난 사례가 바로 지난해 말 SK의 오픈마켓 11번가를 둔 롯데와 신세계의 인수전이다. 두 기업은 모두 이커머스 확장을 위한 발판으로 이미 시스템이 갖춰져 있는 이커머스 업체의 플랫폼이 필요했다.

특히 지난해 초 정용진 부회장이 신세계의 이커머스 확장에 대해 “올해(2018년) 안으로 모두가 깜짝 놀랄만한 일들이 있을 것”이라고 발언한 것과 11번가 인수전이 맞물렸고 경쟁은 격화됐다. 롯데와 신세계는 서로 입을 맞춘 듯이 “검토한 적은 있으나 결정된 것은 없다”면서 묘한 신경전을 펼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각자가 독자적인 이커머스 플랫폼을 추구하면서 두 기업이 얽힌 11번가 문제는 일단락됐다. 그러나 최근 자금 사정이 좋지 않은 이커머스 ‘주요 업체들 중 한 곳’을 국내 유통 대기업이 인수할 것이라는 소문이 유통업계에 퍼지면서 시선은 또 한 번 자연스럽게 롯데와 신세계로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