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지웅 기자] 최근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신약 개발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국내외 제약사는 물론 의약품과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들도 신약 개발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

통상 신약 개발에는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지만 AI를 통해 이를 크게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싹트고 있다.

이미 다수의 글로벌 제약사들은 방대한 데이터 분석에 AI를 활용해 신약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바이오헬스 산업을 차세대 주력 산업으로 선정하면서 AI 기반 신약 개발에 대한 지원을 한층 강화하고 있다. 글로벌 제약 시장과 비교했을 때 규모나 기술적인 측면에서 열세인 한국이 AI 신약개발을 통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것으로 기대된다.

▲신약개발 단계별 활용 방안. 출처=과학기술정보통신부

왜 AI에 목맬까

흔히 신약 개발은 시간 싸움이라고 말한다. 5000∼1만 개의 신약 후보 물질을 탐색하면 10∼250개 물질이 세포나 동물을 이용한 전임상 단계에 진입하고, 이 중 10개 미만의 물질이 실제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 시험에 적용된다. 3단계에 걸친 임상시험에서도 약효와 안전성을 검증받고 최종 허가 관문까지 통과되면 비로소 하나의 신약으로 인정받게 된다. 이 과정까지 통상 1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리고, 1조원이 넘는 자금이 투입된다.

그러나 AI를 활용하면 신약 개발에 필요한 비용과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AI를 통해 방대한 데이터를 취합·분석하고 부작용이나 작용기전을 예측해 신약 개발을 신속하게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신약 후보물질 탐색 과정에서 매우 효과적이다. 기존에는 연구자들이 일일이 각종 문헌정보를 분석하고 약효와 안전성을 조사해 신약 후보물질을 찾아냈다. 하지만 AI는 한 번에 100만 건 이상의 논문 탐색이 가능해 수백 명의 연구원이 매달려야 끝낼 수 있는 일을 단숨에 처리할 수 있다. 실제로 미국 벤처기업 아톰와이즈는 AI를 통해 하루 만에 에볼라 치료에 효과 있는 신약 후보물질을 2개나 발견했다.

임상시험 단계에서도 AI를 적극 활용할 수 있다. AI가 과거 임상시험 결과 중 활용할 만한 자료를 분석해 예측 가능한 모델을 제시하고, 이를 토대로 연구자가 시험에 들어가면 비용과 시간을 크게 절약할 수 있다. 또 포괄적인 정보 분석을 통해 임상 데이터 오류나 이상치를 신속하게 식별해 부적절한 임상 결과가 나올 가능성을 줄여준다. 결과적으로 임상 데이터 품질과 효율성을 높여 신약 개발 기간을 상당 부분 앞당길 수 있다는 평가다.

▲글로벌 대형 제약사 활동 내용. 출처=융합연구정책센터

새로운 국면 예고

수년 전부터 글로벌 제약사들은 AI를 이용한 신약 개발에 착수했다. 대표적으로 세계 1위 제약사 화이자는 IBM의 의료 AI '왓슨'을 끌어들여 면역항암제 개발에 나섰다. 화이자뿐만 아니라 얀센, 산텐, 테바, 머크, 노바티스 등 다수의 제약사들이 AI 기업들과 손을 잡고 신약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국내에서도 SK바이오팜, 신테카바이오 등이 AI 신약개발에 뛰어들며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SK바이오팜은 지난해 10월 국내 최초로 AI 기반 약물설계 플랫폼을 개발했다. 또 유전체 빅데이터 기반 AI 기업인 신테카바이오는 자체 개발한 AI 신약개발 플랫폼을 앞세워 유한양행, JW중외제약, CJ헬스케어 등의 국내 제약사와 파트너십을 맺었다. 향후 글로벌 제약사와의 공동 파이프라인 개발도 확대해나갈 방침이다.

전문가들은 연구 데이터 및 병원 진료정보 등 우수한 의료데이터를 다량으로 보유하고 있는 한국이 AI를 적극 활용한다면 신약 개발 역량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기회로 작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국내 제약사들이 독자적으로 AI 플랫폼과 서비스를 구축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정부와 민관이 협력해 AI 기반의 신약 개발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지난 6월 AI 및 빅데이터를 활용한 신약개발을 위해 AI·신약 개발 전문가로 이루어진 6개 연구팀과 운영관리기관을 구성하고, 향후 3년간 258억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후보물질 탐색, 임상시험 등 신약개발 단계별로 맞춤형 인공지능 플랫폼을 구축해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인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아론티어, 중앙대학교, 대구경북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이화여자대학교 등 4개 연구팀이 신약 후보물질의 발굴을 돕는 AI 플랫폼 개발에 착수했다. 관련 업계는 이번 사업이 성공적으로 추진될 경우 신약개발 기간을 7~8년가량 단축할 것으로 기대했다.

▲AI 통한 신약개발 과정. 출처=식약처

풀어야 할 과제 '가득 '

AI는 신약개발 기간과 비용을 크게 낮출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를 모으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문인력 양성과 AI 기술 향상, 규제 개선 등 풀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먼저 전문인력이 부족해 AI를 통한 신약개발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AI 신약개발 전문가는 의학과 더불어 IT 분야에도 해박한 지식을 갖춰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한 분야에만 특화된 인재가 대다수다. 예를 들어 의학 관련 전공자들은 생물학이나 제약 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지만 새로운 AI 기술 적용에 한계를 안고 있다. 반면 AI 전문가들은 신약 개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제약산업에 쉽게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제약 업계의 연봉 수준이 네이버, 구글 등 IT 대기업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탓에 우수한 인재를 끌어들이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관련 업계는 의학과 인공지능이라는 서로 다른 분야를 아우르는 전문가를 육성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AI 기술에 대한 신뢰 확보도 주요 과제다. 현재의 AI 기술은 신뢰할 수 있는 신약 후보물질을 찾는 게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IBM은 지난 4월 의료 AI 플랫폼 '왓슨'의 개발 및 판매를 중단했다. 지난해부터 불거진 서비스 품질 논란으로 심각한 판매 부진을 겪은 탓이다. 애초 앗슨이 딥러닝과 기계학습을 통해 신약개발의 효율성을 높여줄 것이라는 기대를 저버렸다.

AI를 통해 신약 개발의 혁신을 일으켜도 각종 규제에 발이 묶여 빛을 보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의료 데이터라는 민감한 개인 정보를 활용한다는 점에서 규제의 벽에 가로막히기 쉽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혁신을 저해하는 낡은 규제를 정비하고, 네거티브 규제의 철학이 담긴 규제혁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