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추석 연휴인 15일 삼성물산이 건설 중인 사우디아라비아 현지 리야드 도심 지하철 공사 현장을 방문했다. 리야드 메트로 프로젝트는 도심 전역에 지하철 6개 노선, 총 168km를 건설하는 사우디아라비아 최초의 광역 대중교통 사업으로, 2013년 압둘라 빈 압둘 아지즈(Abdullah Bin Abdul Aziz) 전 국왕의 왕명에 의해 시작됐다. 

준공은 2020년이며 삼성물산은 FCC(스페인), Alstom(프랑스) 등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6개 노선 중 3개 노선의 시공을 맡고 있다.

이 부회장은 현장에서 "추석 연휴를 가족과 함께 보내지 못하고 묵묵히 현장을 지키고 계신 여러분들이 정말 고맙고 자랑스럽다"면서 "중동은 탈석유 프로젝트를 추구하면서 21세기 새로운 기회의 땅이 되고 있다. 여러분이 흘리는 땀방울은 지금 이 새로운 기회를 내일의 소중한 결실로 이어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명절 출장이 보여주는 함의에 시선이 집중된다. 이 부회장은 2014년 이건희 회장의 갑작스러운 와병 후 경영 전면에 나서며 글로벌 경영 의지를 여러차례 피력한 바 있고, 그 연장선에서 그의 명절 행보가 주는 대내외적 메시지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수사 당국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이 이 부회장 승계의 '스모킹건'이라는 의심을 거두지 않는 가운데,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가 아닌 삼성물산의 건설 현장에 찾아간 장면에도 집중하고 있다.

▲ 이재용 부회장이 사우디 현장을 방문하고 있다. 출처=삼성

2014년 설부터 올해 추석까지
이 부회장은 2014년 설 미국으로 출장을 떠나 현지 이동통신사와 미팅을 가진 바 있다. 미국 최대 통신회사인 버라이즌의 로웰 매커덤 회장의 초대를 받아 현지로 날아가 두 회사의 협력을 조율했다.

당시 이건희 회장이 건재한 가운데 이 부회장의 광폭행보는 큰 관심을 받은 바 있다. 실제로 이 부회장은 2014년 당시 최지성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과 함께 계열사별 업무보고를 받았다. 이 부회장의 공식 직함이 삼성전자 부회장인 가운데 계열사의 업무 조정은 일반적으로 최 당시 실장이 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색적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이 부회장은 2014년 CES 및 MWC 등 주요 글로벌 박람회에는 줄줄이 불참했으나 2월 13일 중국 베이징에서 왕양 당시 중국 부총리와 면담을 가지는 등 삼성의 대표자로서 글로벌 무대에서 맹활약했다. 당시 이건희 회장이 요양을 위한 해외 장기체류 기간이 늘어나던 시기라 더욱 관심을 받았다. 일각에서 이 부회장에게 삼성의 권한이 집중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이건희 회장이 와병에 들어간 후 이 부회장은 2014년 하반기와 2015년 명절에는 움직이지 않았다. 내부에서 조직을 추스리는 한편 공격적인 인수합병 전략을 진두지휘하며 실사구시에 입각한 실용주의 경영 전략을 조직에 안착시키기 위해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했다는 평가다.

2016년 설에는 다시 미국 출장길에 올랐다. 당시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CEO와 만나 삼성전자와의 시너지 가능성을 타진해 높은 관심을 받은 바 있다. 이어 2016년 추석에는 약속의 땅인 인도에 찾아가 나렌드라 모디 총리를 접견해 현지 삼성전자 노이다 공장을 둘러보기도 했다. 그러나 2017년에 이어 2018년 국내 정국이 요동치며 비선실세 논란이 불거지자 이 부회장의 명절 출장길은 자연스럽게 막혔다. 2017년 8월부터 2018년 2월까지 이 부회장은 수감되기도 했다.

이 부회장은 2018년 집행유예로 풀려나자 중국과 일본, 유럽과 미국을 누비며 글로벌 인공지능 인프라를 키우는 한편 통신과 반도체 등 다양한 영역의 미래 먹거리를 모색했다. 그리고 올해 설에는 중국으로 날아가 현지 반도체 사업을 점검했다.

이 부회장의 명절 출장은 숱한 해외 출장의 일부일 뿐이다. 그러나 2014년 설 미국 출장이 서서히 전면에 나서고 있는 이 부회장의 존재감을 알려줬다면, 2016년 설 미국 출장은 삼성전자의 글로벌 경영이 탄력을 받고 있음을 시사했다.

실제로 이 부회장이 전면에 나선 당시의 삼성전자는 글로벌 인수합병 업계의 큰 손으로 불렸다. 2014년에 스마트싱스, 미국의 공조회사 콰이어드사이드를 연이어 인수했고 2014년 11월에는 서버용 SSD 소프트업체인 프록시멀데이터, 2015년 2월에는 삼성페이의 근간인 루프페이를 품었다. 2015년 3월에는 예스코일렉트로닉스도 확보했다. 그 연장선에서 이 부회장의 2016년 설 출장은 당시까지 진행됐던, 그리고 앞으로 이어질 공격적인 글로벌 및 인수합병 전략의 자신감이 확연하게 드러난 시기로 평가된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이 부회장이 2016년 설에 마크 저커버그를 만난 후 조이언트, 애드기어, 데이코, 비브랩스도 추가로 품었다. 2016년 추석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를 현지에서 만난 것은 떠오르는 신진 시장인 인도까지 품겠다는 각오로 풀이된다.

2017년을 지나 2018년 하반기, 이 부회장은 인공지능을 키워드로 삼은 글로벌 광폭 행보를 거친 후 올해 설에는 중국을 찾아갔다. 국정농단 사건으로 상당한 내상을 받은 상태에서 이 부회장의 당시 중국 출장은 미래를 향한 준비보다는 '위기 대응'이라는 측면이 강하다. 삼성전자의 전체 실적을 견인하던 메모리 반도체 수퍼 사이클이 종료되며 위기감이 고조되던 시기, 이 부회장이 직접 중국으로 날아가 현지 반도체 사업을 점검했기 때문이다.

▲ 이재용 부회장이 설날 중국 출장에 나서고 있다. 출처=삼성

올해 추석 출장..위기극복 의지, 신사업, 경영 정상화
이 부회장의 숱한 해외 출장 중 특히 명절 출장이 가지는 함의는 명료하다. 명절임에도 불구하고 해외 출장을 떠나 반드시 뭔가를 이뤄야 한다는 목적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목적의식은 2014년 설 출장이 경영 전면에 나서는 존재감 확보, 2016년 설 출장이 글로벌 및 현장경영 강화, 2016년 추석 인도 출장은 신사업 개척 의지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올해 설 중국 출장은 분위기가 일변해 '위기에 대한 선제대응'으로 좁혀진다.

올해 추석 출장은 크게 위기극복 의지, 신사업, 경영 정상화라는 복합적인 키워드를 가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삼성전자는 위기와 직면했다. 메모리 반도체 수퍼 사이클 종료 후폭풍은 여전히 이어지는 상황에서 미중 무역전쟁, 한일 경제전쟁의 파고가 높다. 이 지점에서 이 부회장은 최근 컨틴전시 플랜을 가동하며 현장경영과 연구개발에 집중하는 중이다. 실제로 이 부회장은 한일 경제전쟁이 벌어지자 현지로 날아가 파트너와 스킨십을 한 후 국내에서 주요 사업장을 돌며 현장을 직접 챙기고 있다. 11일에는 삼성전자 서울R&D캠퍼스에 위치한 삼성리서치를 찾아 삼성전자 세트부문의 차세대 기술전략을 논의하기도 했다.

사우디 방문도 그 연장선에 있다.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 관계사의 해외 건설 현장을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프로젝트 완수를 위해 명절에도 쉬지 않고 업무에 매진하는 임직원들을 격려하고 힘을 실어주기 위함이다. 대내외적인 위기에 봉착한 상황에서 현장을 강조하는 이 부회장의 경영 스타일이 잘 드러난다.

▲ 이 부회장의 현장행보가 눈길을 끈다. 출처=삼성

신사업에 대한 의지도 눈길을 끈다.

최근 삼성과 사우디의 간격은 빠르게 좁혀지고 있다. 산유국에서 벗어나 중동의 실리콘밸리, 즉 데저트밸리가 되려는 사우디의 야망에 삼성전자의 새로운 동력이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

단적인 사례가 사우디의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압둘 아지드 알사우드 왕세자가 지난 6월 27일 방한한 순간이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방한에 맞춰 문재인 대통령과 만난 후 총 83억달러(약 9조6000억원) 규모의 계약과 양해각서를 체결해 국내 산업계를 들썩이게 만들었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말 그대로 사우디는 물론 중동의 차세대 리더다. 미스터 에브리싱(Mr. Everything)이라는 별칭이 말하듯 절대왕정 국가인 사우디의 실권자며 1985년생의 젊은 나이에 걸맞게 중동 수니파 패권국인 사우디의 개혁을 이끌고 있다. 여성들에게 운전을 허용해 중동의 우버와 같은 카림이 성장하는데 큰 역할을 했으며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가 팽배했음에도 젊은층을 대상으로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열정적으로 추진하는 등 새로운 바람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는 평가다.

전면에 나선 것은 2015년이다. 부친인 살만 국왕이 80세의 나이로 즉위하자 왕위 계승 서열 1순위인 이복동생과 50대 조카를 연이어 폐위시키고 무함마드 왕세자를 2017년 후계자로 낙점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무함마드 왕세자는 정적으로 부상하던 11명의 왕자들을 체포해 숙청하며 권력을 잡았다. 2016년 4월 중장기 경제발전계획인 비전 2030을 발표하는 한편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과 손잡고 비전펀드를 운영하며 글로벌 무대로 영역을 확장하는 중이다. 물론 사우디 반체제 인사인 언론인 카슈끄지 살해 사건, 나아가 최근 유전 공격을 받은 단초인 예맨 내전에 얽힌 복잡한 문제가 있지만 사우디를 산유국에서 ICT 중심의 강국으로 바꾸려는 그의 의지는 강력하다는 후문이다.

아람코마저 IPO 수순에 돌입한 가운데 무함마드 왕세자의 행보는 더욱 빨라지고 있으며, 그 연장선에서 삼성전자와의 접점도 많아지고 있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6월 방한 당시 오전 청와대 오찬에 참석해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을 만났으며 오후에 별도로 5대그룹 총수와 1대1 면담을 하기도 했다. 그 장소가 삼성의 승지원이다. 삼성 입장에서는 ICT 강국으로 변신하려는 사우디의 조력자로 활동하며 중동발(發) 새로운 동력 창출에 나설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이 부회장의 추석 사우디 행을 두고 경영 정상화에 대한 의지라는 해석도 나온다.

현재 이 부회장은 국정농단 사건에 휘말려 재판을 받고 있다. 2017년 8월 1심 재판에서 징역 5년의 실형을 받았으나, 지난해 2월 항소심 재판에서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을 받고 풀려난 상태에서 지난 8월 대법원이 박근혜 전 대통령, 최순실 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사건에 대한 원심을 파기하고 고등법원으로 보냈다.

이 부회장과 삼성전자 입장에서 대법원 판결은 상당한 부담이다. 당장 이번 대법원 판결로 이재용 부회장이 최순실 씨에게 건낸 뇌물액과 횡령액이 2심때보다 더 늘어났다. 2심에서는 재판부가 뇌물이 아니라고 봤던 말 3필과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금이 뇌물로 인정됐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형량이 늘어나 추후 법정구속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삼성전자의 경영 콘트롤 타워인 이 부회장에 대한 압박이 최고조에 이른 가운데, 이 부회장이 사우디 출장을 통해 정면돌파를 시사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내외적인 악재가 여전한 상황이지만 글로벌 경영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며 '흔들림은 없다'는 메시지를 내보내고 있다는 평가다.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 이슈가 아닌, 삼성물산 이슈와 관련된 현장경영에 나선 장면이 특히 의미심장하다는 말도 나온다.

▲ 이재용 부회장이 사우디 현장을 방문하고 있다. 출처=삼성

이 부회장이 찾은 사우디 리야드 도심 지하철 동사 현장은 삼성물산이 건설하고 있다. 그리고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의 지분 17.08%를 가진 최대주주다. 

흥미로운 지점은 삼성물산이 이 부회장 승계 작업에 있어 매우 독특한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점이다. 2014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이 사실상 이 부회장의 승계 작업을 위한 무리수라는 수사당국의 의심이 여전한 상황에서, 이 부회장이 삼성물산의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사우디를 찾은 것은 결국 '삼성전자는 물론 삼성 전체의 콘트롤 타워'로서의 존재감을 보여주려는 행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가 매 순간 위기론을 지피며 이 부회장의 존재감을 키우는 것처럼, 이 부회장을 향한 수사당국의 압박 포인트인 삼성물산의 주요 사업장에 이 부회장 스스로 찾아가 그룹 전체에 대한 자기의 존재감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이 부회장이 최근 삼성 금융 계열사를 방문한 장면과도 일맥상통한다. 

결론적으로 이 부회장이 한국 경제의 핵심인 삼성전자는 물론 삼성그룹 전반의 장악력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통해 다양한 활로를 찾겠다는 메시지를 대내외적으로 보냈다는 분석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를 향한 수사당국의 칼날이 여전하고, 윤석열 검찰총장 중심의 검찰이 추후 삼성에 대한 강공모드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다양한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