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최태원 SK 회장은 한국에서 보기 어려운 유형의 대기업 경영인이다. 패기 넘치는 스타트업이나 벤처기업에서 말할 것 같은 파격적인 경영 로드맵을 과감하게 추진하면서도 기업의 사회적 가치에 집중해 축제를 열기도 한다. 서든데스라는 과격한 단어까지 사용하며 칼 끝의 아슬아슬한 싸움을 피하지 않으면서도 직원의 행복을 추구하는 묘한 인물이다.

실제로 최 회장이 지난 7월 제주도에서 열린 제주포럼에서 직접 밝혔듯 직원들에게 서든데스를 통해 변하지 못하면 돌연사한다고 '협박' 하면서, 한 편으로는 직원의 행복을 추구한다. 어떻게 보면 이율배반적이면서, 도통 이해되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최 회장의 SK가 보여주는 새로운 개념들을 분절할 필요가 있다. 기업의 사회적 가치, 직원의 행복, 딥체인지. 약간의 단서가 보인다. 

기업의 사회적 가치는 비교적 명백하다. 당장 최근 글로벌 투자 및 경제계의 화두로 부상한 기업의 공적가치추구 트렌드와 부합된다.

미국 기업 CEO들을 대변하는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BRT)은 19일(현지시간) 포용적 번영(inclusive prosperity)을 강조하며 기업은 모든 이해당사자에 대한 사회적 책무를 강화해야 한다고 선언한 바 있다. 주주 이익만이 최우선 가치가 아니며, 기업의 사회적 가치가 그 이상의 목표라는 주장이다. SK의 사회적 가치도 이러한 트렌드의 연장선에 있다. 나아가 기업의 사회적 가치는 지속가능한 연속성의 가치와도 일맥상통한다.

직원의 행복도 중요한 요소다. 기업이 존재함으로 인해 직원이 행복해지고, 행복해진 직원은 기업에 더 큰 공헌을 하는 선순환 구조를 노린다. 지난 6월 경기도 이천시 SKMS연구소에서 최 회장을 비롯해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 조대식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및 7개 위원회 위원장, 주요 관계사 CEO 등 8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2019 확대경영회의'가 열린 가운데 현장에서 구성원 모두가 동참할 때만이 행복전략의 실행력이 담보되고, 급변하는 글로벌 경영환경 속에서도 구성원이 행복해야 결국 위기 극복의 힘을 결집할 수 있다는 공감대가 확정된 배경이다.

경영진이 톱 다운(Top Down) 방식으로 행복전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이 직접 참여해 행복전략을 만들어야 한다는데 뜻을 같이했다는 후문이다.

직원의 행복은 큰 틀에서 기업의 사회적 가치와 관련이 있다. 조대식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은 현장에서 직원의 행복이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고객, 주주, 협력사, 사회(잠재 고객) 등 각 이해관계자들의 행복도 증진시켜야 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두 개념은 유기적인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딥체인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업의 사회적 가치가 최종 지향점이자 현재의 트렌드라면 직원의 행복은 모든 로드맵의 근간이다. 이를 바탕으로 가동되는 실질적인 액션플랜을 딥체인지의 개념으로 볼 수 있다.

SK는 다양한 무기를 준비하고 있다. 특히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과 인공지능 등 혁신기술에 방점이 찍혔다.

▲ 최태원 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출처=SK

SK는 지난 19일부터 22일까지 2019 이천포럼을 열어 빅 트렌드의 전략적 중요성을 공유했다. 기업의 생존을 위한 서든데스, 딥체인지의 방법론을 새로운 기술의 혁명으로 찾는다는 각오다. 최 회장은 마무리 발언에서 “혁신기술을 활용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한편, 우리 고객 범위를 확장하고 고객 행복을 만들어 내야 한다”며 “이를 통해 SK가 추구해 온 딥체인지를 이룰 수 있다”고 밝혔다.

디지털 기술 역량 강화는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라는 주장이다. 최 회장은 “우리의 고객이 누군지 재정의하고, 각 고객에게 맞춤형 가치를 제공해야 한다”며 신뢰를 기반으로 고객과 1대1 관계를 구축하는 데 힘을 쏟을 것을 주문했다. 5000만 국민 및 소비자와 실제로 1대1 관계를 만들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러나 기술이 있으면 가능하다.

지난 18일 공개된 SK University의 청사진과도 부합된다. 4차 산업혁명 등의 영향으로 경영환경이 급변하는 가운데 모든 구성원이 학생이면서 연구원이 되는 신선한 모델을 지향하며, SK University는 내년 1월 그룹 싱크탱크인 SK경영경제연구소와 기업문화 교육기관인 SK아카데미 등 역량개발 조직을 통합해 출범된다.

대기업∙중소기업 등 전통기업의 업무가 사라지거나 업무 형태가 바뀌는 것은 물론 일의 성과를 좌우하는 핵심 역량도 달라지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된 실험이다. 그런 이유로 SK는 지난달 태스크포스(TF)를 발족해 그동안 개별적으로 운영해왔던 연수원, 연구소, 사별 교육프로그램 등을 통합하는 방식으로 SK 인재 통합 플랫폼을 구축했다는 설명이다.

SK 구성원 모두가 학생으로, 언제 어디서든 필요한 교육을 신청해 이수할 수 있게 된다. 전통적인 클래스룸 강의와 워크숍, 포럼, 코칭 프로그램, 온라인 강의, 프로젝트 기반 교육 등 과정별로 특화된 방식으로 플랫폼이 가동되며 구성원들은 매년 근무시간의 10%에 해당하는 200시간씩 자신들이 신청한 교육과정을 자발적으로 이수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기업의 사회적 가치와 직원의 행복을 바탕으로 딥체인지가 완성된다는 개념이다. 이를 통해 혁신적인 기업문화를 창출하며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이 SK의 큰 그림이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최 회장은 “나부터도 변화는 두렵고 달갑지 않은 일이지만 번지점프를 하듯이 두려움을 극복하고 자꾸 새로운 시도를 해야 딥체인지를 이룰 수 있다”며 "피할 수 없다면 변화를 즐기자"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