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조-내적시선, 91×53㎝

차분하게 가라앉은 색조 있는 듯 없는 듯한 형상 푸근하게 피어나는 물성 인위적이지 않은 소박함 기교 감춘 무심한 손길 절제, 후덕, 겸손, 격조…

인간이 할 수 있는 표현들에는 네 가지 수준이 있다. 첫째는 자신의 부족한 내용을 감추기 위해 형식을 과장하는 것이다. 이것은 가장 낮은 차원으로 외형적으로는 화려한 유혹이 있지만, 그 안에서 초라하고 초조한 인간의 위선을 만나게 된다.

▲ 53×45.5㎝

둘째는 자신의 부족한 내용을 과장하지 않고 부족한 형식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이 수준에서는 진솔하지만 주목할 만한 것이 없다. 셋째는 내용의 충만을 충만한 형식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이 수준에서는 인간의 위대한 의지와 천재성을 경험하게 된다. 표현의 네 번째 수준은 내용적으로 충만하나 절제된 형식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이것은 ‘텅 빈 충만’의 상태로 여기서 우리는 위대성을 넘어서는 도덕적 겸손과 인격, 그리고 우아한 격조를 만나게 된다. 서구의 미술은 세 번째 수준을 지향하는 경향이 있었다.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성당의 천정화에서처럼 그들의 작품을 보면 입이 벌어질 정도의 경탄과 인간의 위대한 의지에 적면한다. 이것은 동아시아의 중국이나 일본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된다.

▲ 196×136㎝

그러나 한국은 전통적으로 네 번째 수준을 예술의 지향점으로 삼았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송수련은 이러한 한국인 특유의 정신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작품에서 보이는 절제된 형식 역시 그러한 격을 드러내려는 고차원적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해석된다. 그렇다면 그 절제된 형식 이면에 들어 있는 풍요로움은 무엇일까?

이번 전시회에서 그녀는(한국화가 송수련,한지화가 송수련,송수련 화백,宋秀璉,SONG SOO RYUN,송수련 작가,Hanji Painter SONG SOO RYUN,한지작가 송수련,종이회화 송수련,여류중견화가 송수련, KOREA PAPER ARTIST SONG SOO RYUN, KOREAN PAPER ARTIST SONG SOO RYUN) 작품에 연잎을 등장시켰다.

▲ 53×45.5㎝

커다란 연잎을 잘 말려 화면에 접착하고, 그 위에 한지를 붙여 고정시켰다 붙여 고정시켰다는 표현보다는 붙여졌다라는 표현이 더 적합할지도 모를 정도로 그 밀착이 자연스럽다. 마치 오랜 시간의 풍화를 거친 화강암처럼 마른 연잎의 섬유질과 한지의 섬유질이 자연스럽게 얽혀져 있다. 사실 종이도 그 고향이 나무인지라 이들의 만남은 명절날 시골의 고향을 찾는 사람처럼 반가운 만남이다.

△최광진/미술평론가理美知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