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국토교통부가 17일 규제 혁신형 플랫폼 택시 제도화, 택시산업 경쟁력 강화, 국민 요구에 부응하는 서비스 혁신이라는 3대 과제를 바탕으로 하는 택시제도 개편 방안을 발표했다. 사납금 제도 폐지 및 택시 감차사업 진행을 비롯해 플랫폼 택시를 제도권으로 품어내는 것이 골자다. 후자의 경우 ICT 기업과 택시업계의 충돌이 극에 달했던 가운데 국토부가 일종의 중재안을 냈다는 설명이지만, 사실상 택시업계의 승리로 여겨지는 분위기다.

업계에서는 “데모하면 승리하는 나라” “역대급 공산당 정책”이라는 비야냥도 나오고 있다.

택시업계 숙원 풀었다 “신난다”

국토부의 안은 택시업계 입장에서 거의 대부분의 숙원을 풀었다. 법인택시에서는 고질적인 사납금을 폐지하고 2021년 기사 월급제가 도입된다. 기본급 170만 원(주당 노동시간 40시간 기준)을 보장한다는 설명이다.

나아가 공급 과잉 문제, 기사 고령화 문제 해결을 위해 택시 감차사업을 단행하며 만 75세 이상 초고령 개인택시 중심으로 사업을 진행한다. 이를 다룬 법안은 현재 국회 상임위를 통과했다. 운행정보관리시스템(TIMS) 확대 보급, 면허 양수 조건도 완화된다.

국토부는 기사 자격 심사 강화 및 법인택시연합회에서 운영하는 택시 운송종사자 자격시험을 교통안전공단으로 이관해 공공의 영역으로 끌어오는 한편 차량 내부 냄새, 법규 준수 수준 등 서비스 질적 제고를 위한 압박을 가한다는 방침이지만 이는 택시업계에 궁극적으로 마이너스가 아닌 플러스 요인이 될 전망이다.

국토부의 방안은 택시업계를 사실상 ‘떠 받드는 수준’이라는 말이 나온다. 일부 택시업계에 압박으로 비춰질 수 있는 방안들이 있으나 언젠가는 풀어가야할 문제고, 택시업계 입장에서는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플랫폼 택시도 택시의 손에

국토부의 방안 중 플랫폼 택시를 제도권으로 끌어오는 방안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역시 택시업계의 뜻대로 이뤄졌다는 것이 중론이다.

국토부는 개편안에 플랫폼 가맹사업, 플랫폼 중개사업, 플랫폼 운송사업으로 플랫폼 택시를 구분했다. 플랫폼 가맹사업은 웨이고와 마카롱 택시가 해당된다. ICT 기업과 택시기업이 만나는 형태다. 말 그대로 가맹사업이기 때문에 면허 대수 기준을 낮추는 등 다양한 혜택을 제공받을 전망이다. 플랫폼 중개사업은 신고제를 통해 자유롭게 시장에 진입할 수 있고 카카오 모빌리티와 SK텔레콤의 T맵택시 등이 해당된다. 앱을 기반으로 중개만 하는 수준이다.

관건은 플랫폼 운송사업이다. 쏘카 VCNC가 해당되며, 상당히 높은 진입장벽을 가지고 있다. 먼저 기여금 명목으로 상당한 자금을 차출해야 하며 이는 택시 감차사업에 활용된다. 국토부의 안에 들어간 택시감차의 부담을 책임지는 격이다. 심지어 차량은 렌터카가 불가하며 반드시 플랫폼이 가지고 있는 차량이어야 하며, 무엇보다 택시기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타다의 VCNC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으로 보인다. 렌트카로 운행되는 차량을 모두 구입해야 하고, 택시 감차를 위해 들어가는 자금도 기여금 명목으로 내야하며 기사는 모두 택시기사들로 채워지기 때문이다.

김경욱 국토교통부 2차관은 “플랫폼 운송사업자가 정부의 허가를 받아 차량, 요금 등에 대해 보다 유연한 규제환경에서 다양하고 혁신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겠다”면서 “플랫폼 사업자가 수익의 일부를사회적 기여금으로 내면 이를 기존택시 면허권 매입, 종사자 복지에 활용하여 택시업계와 상생도 도모하겠다”고 설명했다.

상생안? 모빌리티 압살될 것

국토부의 상생안은 택시업계의 입장이 모두 반영됐다. 초반 카풀 논란이 벌어지던 당시 택시업계는 생존권을 위해 다양한 조건을 내밀었고 모빌리티 혁명이 ICT 업계 주도로 이뤄진다면 그 조건들을 받아줘야 한다고 데모를 하고, 으름장을 놨다. 그런데 결론이 ‘요상’하다. 택시의 조건은 모두 받아들여졌고 모빌리티 혁명도 끝났기 때문이다. 협상 과정에서 조건을 제시했는데 그 조건은 모두 이행됐고, 협상 대상자도 항복하는 희한한 결론이다.

일각에서는 플랫폼 택시 중 플랫폼 가맹사업, 플랫폼 중개사업이 제도권으로 들어왔고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할 수 있다고 말한다. 물론 모빌리티의 불씨가 살아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국내 모빌리티 시장이 택시업계의 손을 잡은 국토부의 안으로 지나치게 협소해진 것도 사실이다.

이제 택시와 함께하지 않으면 한국에서 모빌리티 사업을 벌이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순수 ICT 플랫폼을 기반으로 하는 모빌리티 플랫폼은 이제 설 자리가 사라졌다. 나아가 택시업계는 또 다른 추가제안을 당당하게 할 여지가 생겼고, 정부는 총선을 앞두고 표를 얻었다.

이제 모빌리티 업계에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는 플레이어만 합류할 수 있다는말도 나온다. 각종 기금 등을 출현해 택시업계를 '극진히 모셔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버틸 수 있는 우버와 같은 글로벌 대기업들의 천하가 펼쳐질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특히 플랫폼 운송사업자의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논란이 예상된다. 국토부 택시제도 개편안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쏘카 VCNC는 박재욱 대표 명의로 된 입장문을 통해 “국민의 지지를 받는, 국민들에게 다양하고 안전하고 친절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존 택시 산업과 별도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게 된다는 시대적 요청과 가치를 수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있다”면서도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협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VCNC는 “기존 제도와 기존 이해관계 중심의 한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기존 택시산업을 근간으로 대책을 마련한 까닭에 새로운 산업에 대한 진입장벽은 더 높아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스타트업이 대부분인 카풀의 불만도 감지된다. 이들은 기여비용 등은 인정해도 최소한의 여지는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풀러스는 "우버 등 자금력이 있는 글로벌 기업 및 이동 수요 트래픽을 이미 확보한 국내 대기업 중계플랫폼에 대다수의 가맹사업자들이 결합을 시도 할 것이기 때문에, 가맹사업과 중계플랫폼의 결합에 대한 제한이 없다면 스타트업의 공정한 경쟁 시도는 불가능하며 국내 운송시장은 국내외 대기업이 잠식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면서 "중계플랫폼과 가맹사업자간 결합 총량을 제한하고 결합서비스를 제공하는 중계플랫폼의 기여비용 부담 또한 반드시 필요하지만 이미 가맹사업자이면서 플랫폼인 경우는 가맹비용을 실질적으로 지출한 것이므로 중복 부담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택시업계가 우버를 물리친 후, 이번에는 카카오와 싸워 카카오의 협력을 얻었고 순수 ICT 플랫폼인 VCNC마저 코너에 몰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해 대규모 데모와 시위를 통해 실력행사를 한 보람이 있다는 뜻이다. 택시와 협력하는 ICT는 살리고 그렇지 않은 또 다른 가능성은 압살한 것이 이번 국토부의 안이다.

인터넷전문은행을 예로 들면 국토부의 안은 이렇게 비유될 수 있다. ICT 업계가 기존 금융권과 함께 사업을 하거나, ICT 업계가 앱만 만들고 기존 금융권 서비스를 그대로 담아내거나, ICT 업계의 직원들을 모두 금융맨으로 채우거나. 이렇게 만들어진 인터넷전문은행 지분율은 기존 금융권 90%이고 기존 금융권의 부활을 애써 도와야 하는 ICT 업계는 10%로 볼 수 있다.

수요와 공급을 조절해 이동하는 모든 것을 온디맨드로 풀어가는 시도가 모빌리티의 지향점이며, 여기에는 기술력이 핵심이 되어야 한다. 최근 국내 시장에 진출하며 택시기사들과 협력하는 우버가 언제든지 강력한 기술력으로 ‘자기만의 정체성’을 구현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제 모빌리티의 핵심이 기술에 있다는 것은 당연한 진리로 여겨진다. 그런데 국토부는 모빌리티 혁신을 ‘고생하시는 택시업계 선생님들의 고충을 덜어주는 것’에만 찾고 있다. 꼭 필요한 일이지만, 정책의 큰 방향성은 엉망이라는 평가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