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일본이 한국에 대한 소재 분야 경제제재에 돌입한 가운데, 이와 관련된 유연한 대응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성을 잃지말고 차분하게 WTO 등을 중심으로 하는 국제 여론전에 임하는 한편, 정부와 기업의 민관 합동작전이 전개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업계에서는 한국이 한일 경제전쟁에 있어 세 가지 카드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 정부는 강력한 여론전과 정책을 통해 일본을 압박하는 한편 기업과 협력해 기초체력을 키우는 카드가 있고, 기업은 소재분야의 위기를 직시하고 이를 전화위복으로 바꿀 카드가 있다. 마지막으로 민간에서는 냉정하고 유연한 불매운동 등에 나서는 카드가 있다.

일본은 현재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한국에 대한 소재분야 수출규제에 돌입한 상태다. 초반에는 일제 강점기 징용공 문제를 통해 경제분야 공격에 나섰지만, 최근에는 한국의 대북제재 위반을 시사하는 등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벌였다. 그러나 북한에 전략물자를 수출한 가능성이 높은 나라는 한국보다 일본이라는 지적이 나오며 일본은 “안보 위협에 따른 수출 제재”라며 말을 바꾸고 있다. 그 연장선에서 일본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는 한편 제재 범위를 넓히며 전선을 확대시킬 전망이다.

정부는 좌시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15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우리 경제가 한 단계 높은 성장을 도모하는 시기에 경제 성장을 가로막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하며 "일본은 하루속히 외교적 해결을 위한 대화에 나서달라"고 촉구했다. 이어 일본의 조치를 두고 "상호의존과 상호공생으로 반세기간 축적해 온 한일 경제협력의 틀을 깨는 것이자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위한 한국 정부의 노력을 지지하며 동참하고 있는 국제 사회의 공동 노력에 대한 불신을 야기하는 것이기도 하다"면서 "일본의 의도가 거기 있다면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업계에서는 ‘진검승부’에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정부는 일본의 경제제재를 두고 WTO 등 국제기구에서 여론전에 돌입하는 한편, 일본의 제재가 글로벌 전자 공급망을 교란해 최악의 상황이 펼쳐질 것이라고 본다. 당분간 이 지점에 집중하며 미국 등을 통한 국제공조에 나설 전망이다. 

정부가 자기의 역할을 하는 가운데, 장기적 관점에서 기업들은 소재 분야 국산화에 집중할 전망이다. 그러나 일본의 공격을 야기한 소재 분야 국산화는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큰 틀에서 플랜B로 설정하는 분위기다. 정부가 6조원의 예산을 기초 소재산업에 투자하겠다고 밝힌 상태에서 기업들은 관련 로드맵을 차분하게 준비할 전망이다.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첫 번째 카드다.

시선이 집중되는 것은 당장 가용한 카드 두 장이다. 가장 큰 피해가 예상되는 반도체 분야의 버티기와, 불매운동에 시선이 집중된다.

현재 일본은 한국에 대한 수출관리 규정 변경을 통해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를 비롯해 리지스트와 에칭가스 등 3개의 수출 규제에 돌입했다. 전면적인 금수조치가 아닌, 민간을 중심으로 공급을 조절해 시장을 장악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현재 일본이 제재에 나선 소재들이 큰 무리없이 수입되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문제는 이러한 아슬아슬한 공급을 마냥 방치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일본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휴일 사장단 회의를 통해 ‘컨틴전시 플랜’을 주문한 이유다. 이 부회장은 일본 현지에서 소재 수급보다는 당장 급한 불을 끌 수 있을 정도의 물량만 확보했으며, 이는 유의미한 수치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일본 기업이 대만 등을 통해 제3국 우회수출하는 방안도 거론됐으나, 이는 일본 정부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삼성전자가 급한 물량에 대해서는 일부 공급선을 확보하는 등 소기의 성과를 거뒀지만 사태가 장기화되면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업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반도체는 물론 스마트폰과 TV 모두 위기 상황이라고 진단했으며, 이에 대비한 삼성전자의 유연한 대응을 주문했다는 말이 나온다.

다만 일본의 제재가 반도체 코리아에 무조건 타격만 입히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도 나온다. 15일 업계와 시장조사업체 디램익스체인지 등에 따르면 DDR4 8기가비트(Gb) D램 제품의 현물 가격은 지난주 3.26달러를 기록, 일주일전과 비교해 7.6% 가격이 올랐다. 낸드플래시도 일부 가격이 오름세를 보인 것으로 확인됐다.

메모리 반도체 수퍼 사이클이 종료됐으나 올해 초까지 이어진 시세 하락에 대한 반등심리가 팽배해졌고, SK하이닉스 및 마이크론 등 주요 플레이어들의 감산 결정이 일부 반도체 가격 상승을 견인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여기에 일본의 제재가 결정타를 날렸다는 주장이다. 일본이 한국에 대한 소재분야 규제에 돌입하자 반도체 수급을 걱정한 다른 업체들이 선매입에 나섰고, 이에 반도체 가격이 오르고 있다는 해석이다. 메모리 반도체 수퍼 사이클 종료 후 시작된 재고 문제를 일시에 털어낼 수 있는 호재다.

물론 일본의 제재가 길어지며 삼성전자 등의 반도체 물량 공급 자체가 어려워지면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이 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재고 물량도 없이 반도체를 생산할 수 없게 되며, 이는 글로벌 파트너들을 잃게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그 틈을 노려 중국 업체들이 빠르게 반도체 코리아의 빈 자리를 노릴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일본의 경제제재는 단기적으로 반도체 가격 상승을 끌어내고 있으며, 재고 물량을 소진하는 선에서 제재가 종료될 경우 국내 기업들이 ‘의외의 이득’을 챙길 수 있다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여기에는 일본의 제재가 글로벌 전자 공급망을 교란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도움’이 된다.

초기술 격차로 승부를 걸며 시장의 타이밍을 정확히 계산, 피해를 최소화하며 글로벌 전자 공급망을 냉정하게 지켜보며 대응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두 번째 카드다.

마지막 카드는 민간의 불매운동이다. 특히 일본에 대항할 수 있는 당장의 카드로 회자되는 것으로 여행이 꼽힌다. 사실상 일본 소도시 여행에서 한국인 관광객들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 지점에서 불매운동이 벌어지면 일본의 체감경기가 나빠져 부담을 느낄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다만 한국인의 일본여행 불매운동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고,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하지도 못한다는 반론도 있다. 심지어 일본여행 불매운동이 벌어지면 국내 여행업계가 더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내에 진출한 일본기업에 대한 불매운동도 매력적이다. 다만 이 역시 광적인 불매운동으로 불거지면 확장성에 문제가 발생하며, 일본 기업과 협업하는 국내 산업 인프라의 피해가 예상되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