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동훈 기자] 최근 건강식과 가정간편식(HMR)에 대한 소비자 관심이 증가함에 따라 죽 제품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 가정에서 손쉽게 데워먹을 수 있는 간편죽 제품과 매장에서 직접 조리해 제공하는 일반죽 제품으로 시장이 양분되는 추세다. 제품군별 업체들은 저마다의 상품이 가진 강점으로 고객 니즈를 공략하는 가운데 시장 주도권을 누가 쥐고 있느냐에 대해 업계 관심이 모이고 있다.   

▲ 동원F&B 양반죽의 두 모델인 가수 아이린(오른쪽)과 웬디. 출처= 동원F&B

HMR 시장, 1인가구 증가로 꾸준히 성장…동원F&B·CJ제일제당 ‘투 톱’

25일 시장조사업체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HMR 형태 간편죽 시장의 규모는 지난 2015년 410억원에서 작년 970억원으로 4년 만에 136.6% 확대됐다.

간편죽 수요가 늘어나는 현상에는 인구구조의 변화가 일정부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비혼 인구 증가로 1인가구 수가 늘어나면서 HMR 수요도 상승하고 있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의 ‘2019 한국 1인가구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에서 혼자 사는 가구의 수는 2010년 414만명에서 2017년 562만명으로 7년 새 35.7% 증가했다. 연구소 설문에 참여한 1인가구 2000명 가운데 혼자 식사하는 방법(중복 응답)으로 ‘HMR 이용’을 꼽은 응답자의 비율은 27.3%에 달했다. ‘집에서 직접 밥을 해먹는다’는 답변의 비중 59.5%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간편죽이 호응을 얻는 이유로 제품 접근성, 조리 편의 등 두 가지가 꼽힌다. 간편죽은 주로 편의점, 대형마트 등에서 판매되고 있어 소비자들이 가까운 매장에서 쉽게 구매할 수 있다.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리거나 상품을 개봉하지 않은 상태 그대로 끓는 물에 넣는 등 간편한 조리방식으로 섭취할 수 있다. 최근에는 미개봉 제품을 상온에 오랜 시간 둘 수 있는 등 보관 편의가 증가한 점도 제품 인기 요인으로 작용한다.

국내 HMR 간편죽 시장을 견인하는 주요 업체는 동원F&B와 CJ제일제당이다. 동원F&B는 1992년 국내 최초로 간편죽 브랜드 ‘양반죽’을 선보이며 시장을 개척했다. 죽에 대한 소비자 인식을 전환하는 것을 마케팅 주안점으로 둠으로써 죽 수요를 늘리고 매출을 증대시켜왔다.

동원F&B에 따르면 죽 요리는 과거 환자가 먹는 음식이라는 인식이 소비자들 사이에서 강했다. 부드럽게 씹어 삼킬 수 있고 소화하기 쉽다는 장점 때문이다. 동원F&B는 죽의 이 같은 장점을 HMR에 대한 수요로 연결시켰다. 맛과 영양을 고루 갖춘 동시에 먹기 간편하다는 장점을 부각시켜 현대인들의 간편식 니즈를 공략했다. 동원F&B가 현재 판매하고 있는 간편죽 제품은 20여종으로 전복죽, 야채죽 등이 대표 메뉴다.

CJ제일제당은 작년 11월에 ‘비비고 죽’을 선보이며 뒤늦게 죽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단숨에 시장 점유율 기준 업계 2위에 오른 신흥 강자다.

닐슨 코리아에 따르면 CJ제일제당은 작년 말 기준 국내 상품죽 브랜드 시장 점유율 4.1%를 기록하며 동원F&B(60.2%), 오뚜기(21.2%)에 이어 3위에 랭크됐다. 이어 올해 1~2월 기준 23.5%를 달성해 오뚜기(14.6%)를 제치고 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3월엔 31.4%까지 끌어올리며 1위를 지켜온 동원F&B(43.6%)의 아성까지 위협하고 있다.

CJ제일제당도 동원F&B와 비슷한 양상의 전략을 구사해 인기를 끌고 있다. 비비고 브랜드를 통해 죽의 패러다임을 ‘일상적인 음식’으로 전환하는데 주력해왔다. 소비자 기호에 따라 상온에 보관할 수 있는 1~2인분 용량의 파우치형 제품을 내놓았다.

이와 함께 햇반, 비비고 국탕류 제품 등 주요 간편식 제품군을 개발하며 확보한 품질 구현 노하우를 비비고 죽 제품에 접목했다. ‘몸에 좋지 않고 덜 맛있는 가공식품’이라는 이미지에서 탈피하는데 주력해온 점이 유효한 것으로 풀이됐다.

▲ 본죽 제품 이미지. 사진= 본아이에프 홈페이지 캡처

본죽·죽이야기, 일반죽 시장 ‘하드캐리’…고품질·건강식 이미지로 승부수

간편죽에 대한 소비자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지만 죽 요리 자체가 지닌 ‘건강식’ 이미지 덕에 죽 전문점에서 바로 조리해 판매하는 제품의 인기는 꾸준히 높다. 우리나라에서 ‘일반죽’ 시장을 주도하는 업체는 본죽과 죽이야기다.

종합식품업체 본아이에프가 운영하는 본죽의 지난해 매출액은 2640억원으로 전년(2483억원) 대비 6.3% 증가했다. 동종업계 기업인 ㈜대호가가 운영하는 죽 프랜차이즈 죽이야기의 작년 매출액은 504억원으로 전년(478억원)보다 5.4% 늘어났다.

일반죽 시장 규모에 대해 리서치 업체 등에서 별도로 분석해 내놓은 수치는 현재 없는 상황이다. 다만 업계에서는 본죽, 죽이야기 등 두 업체의 매출액과 전국에서 운영되고 있는 죽 관련 사업장 등의 국세 통계 등을 감안할 때 작년 말 기준 규모가 4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본다. 본아이에프의 멀티 브랜드 ‘본죽&비빔밥카페’에서 기록한 죽 관련 매출액을 고려할 경우 두 업체의 시장 점유율은 90%에 달한다는 관측이다.

두 업체는 비슷한 시기에 법인이 설립되고 사업을 개시하는 등 궤를 같이 해왔다. 공정거래위원회 정보공개서에 따르면 두 업체는 2004년에 법인 등기한 데 이어 2008년 사업을 시작했다.

두 전문점의 공통적인 강점은 매장에서 매뉴얼화한 레시피에 맞춰 직접 조리한 죽 요리를 제공하는 부분이다. 이와 함께 일반죽이 간편죽에 비해 메뉴 수가 많은 부분도 차별적 강점이다. 본죽의 죽 메뉴 수는 28종으로 원재료 투입량에 따라 사이즈를 구분한 메뉴까지 포함하면 총 39종에 달한다. 죽이야기도 각종 재료를 조합한 메뉴의 시리즈 상품까지 포함해 35종을 보유하고 있다. 고객들이 직접 손질해 조리하기 어려운 원재료를 활용한 메뉴들을 선보이며 상품의 고급화·차별화를 도모함으로써 고객 수요를 충족시키고 있다.

소비자들은 전문점에서 판매하는 죽의 품질을 인정함에 따라 간편죽 대비 높은 판매가에도 꾸준히 구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원몰에서 판매하는 ‘동원 양반 야채죽’의 285g 기준 가격은 2500원이다. 본죽 ‘야채죽’의 가격은 680g에 8000원으로 285g 기준 3400원 정도다.

죽 전문점, 매출론 HMR 업체에 ‘한 수 위’…경쟁 통해 동반성장할 듯

일반죽, 간편죽 각 메뉴의 시장 규모로 비교할 땐 단가가 높고 고품질 상품으로 어필해온 죽 전문점이 경쟁 우위를 점한 모양새다. 다만 죽 전문점들도 HMR에 대한 고객 수요가 늘어나는 점을 감안해 간편식 제품을 적극 개발해 판매하는 등 전략 다변화를 꾀하고 있다.

본죽은 2012년 3월 간편식 브랜드 ‘아침엔본죽’의 제품 5종을 출시하며 간편식 시장을 공략하고 나섰다. 스프, 리조또 등 음식 성격이 죽과 유사한 음식을 HMR 형태로 개발하며 라인업을 지속 강화하고 있는 상태다. 아침엔본죽의 누적 판매량은 올해 2월까지 7년 간 2200만개에 달한다.

죽이야기도 현재 온라인 판매 플랫폼 ‘죽이야기몰’을 통해 대표 메뉴인 간편죽과 장조림류(직접 개발), 닭가슴살 등을 판매하고 있다. 편의점, 마트 등 오프라인 매장 공급을 위해 각 유통업체와 협의하고 있으며 오는 3분기 신메뉴 8종을 출시할 계획이다.

본아이에프 관계자는 “일반죽과 간편죽을 찾는 고객들은 각각 다른 니즈를 갖고 있지만 선호 고객층이 완벽히 나눠지진 않는다”며 “본죽은 시간·장소·상황(TPO)에 따라 달라지는 고객 니즈를 충족시키는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HMR 제조사들은 죽 전문점과 같은 전용 매장을 설립하고 있지 않지만 일반죽 못지 않은 품질이 구현된 간편죽을 개발하는데 공들인다. 전문점 못지 않은 상품군 규모를 갖추는데도 힘쓰고 있다.

동원F&B는 신제품 출시에 앞서 소비자 블라인드 테스트를 실시하는 등 출시 사전 준비에 만전을 기할 방침이다. 기존 제품에 대해서도 지속적인 품질 점검을 실시해 리뉴얼해나가는 등 제품군의 양적·질적 수준을 강화할 계획이다.

CJ제일제당은 다양한 원재료가 들어가면서도 김가루, 참기름 등 별첨 재료가 필요없는 제품을 꾸준히 개발해 출시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죽 전문점 제품과 같은 맛과 ‘비쥬얼’을 구현하는데 노력해나갈 방침이다.

정경희 CJ제일제당 식품연구소 연구원은 “CJ제일제당은 죽을 차세대 가정간편식의 대표 품목으로 삼고 상품성 강화에 모든 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라며 “비비고 죽이 일상적인 음식이자 국내 대표 죽 제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죽 시장 사업자들이 제품의 상품성을 강화하는데 치열하게 경쟁할수록 고객을 서로 흡수하는 등 수요간섭이 나타날 것으로 전망한다. 그러면서도 이 같은 추세가 이어짐에 따라 시장 규모가 더욱 커지고 소비자 수요도 늘어나는 등 순기능이 나타날 것으로 내다본다.

김익성 한국유통학회장(동덕여대 교수)은 “죽 시장은 건강, 음식 다양성 등에 대한 소비자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성장해왔다”며 “죽을 구매하는 고객층이 점점 확장되고 제품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사업자 간 경쟁이 심화할수록 업체 실적도 향상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