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전현수 기자]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을 많이 하는 증상을 질병으로 분류했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국내 질병분류 체계에도 이를 적용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나 게임 업계 및 게이머들은 이 같은 결정에 반발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의 국제질병분류(ICD)가 한국표준질병분류(KCD)에도 적용이 될지 관심이 모인다.

▲ 아이들이 게임을 하고 있다. 출처=이미지투데이

WHO는 지난 25일(현지시각) 스위스 제네바에서 제72차 세계보건총회를 열고 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안(ICD-11)에 게임장애를 질병으로 분류하는 안건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WHO가 게임이용 장애에 대해 내놓은 진단 기준은 세 가지다. ▲게임 이용을 할 때 시작지점과 빈도수, 강도, 지속시간, 중단, 맥락 등을 조절하지 못하거나 ▲삶의 다른 관심사보다 게임이용을 우선시해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고 ▲게임 과몰입이 부정적인 결과를 불러옴에도 계속하는 증상이 최소 12개월 이상 지속되는 경우를 의미한다.

게임장애에 부여된 질병코드는 6C51이다. 도박중독(6C50)과 함께 ‘중독행동’ 범주에 분류됐다. ICD-11 개정안은 194개 WHO 회원국에 2022년부터 권고된다.

▲ ICD-11에 등재된 게임장애 질병 코드. 출처=ICD-11

우리나라의 경우 KCD라는 분류 체계가 있으며 이는 통계법에 근거해서 개정된다. KCD의 개정은 5년 주기로 한다. 오는 2020년 KCD의 8차 개정을 시행할 예정이고 WHO의 ICD-11 개정안의 권고는 2022년 이므로 게임장애 질병분류 국내 도입은 2025년 이후로 예상된다. 

보건복지부는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이다. 복지부는 오는 6월 중으로 게임이용장애 대응 민관협의체를 구성하겠다고 지난 26일 밝혔다. 협의체는 관련 부처와 단체, 전문가들로 구성될 예정이며 관련 현안을 논의하고 대책을 마련한다. 

복지부의 빠른 대응은 예견된 일이다. 복건복지부 박능후 장관은 지난해 10월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WHO에서 최종적으로 게임장애를 질병화하는 것으로 확정하면 이를 바로 받아들이겠다"고 말한 바 있다.

국내 도입, 될까?

세계보건기구 가입국이 모두 WHO의 권고안을 받아들여야하는 건 아니다. 다만 27일 복지부 관계자는 “KCD 등재는 법에 따라 하게 돼있는 것”이라면서 “통계법 제22조에 따르면 ICD가 개정이 되면 이를 KCD에 반영해야 한다고 적혀있다”고 말했다. 등재 시기의 경우 우리나라의 사정이나 준비 상황에 따라 조정이 가능하지만 반영은 반드시 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통계법 제22조 (표준분류) 1번에는 “통계청장은 통계작성기관이 동일한 기준에 따라 통계를 작성할 수 있도록 국제표준분류를 기준으로 산업, 직업, 질병ㆍ사인(死因) 등에 관한 표준분류를 작성ㆍ고시하여야 한다. 이 경우 통계청장은 미리 관계 기관의 장과 협의하여야 한다”고 적혀있다. 

같은 내용을 통계청에 문의한 결과 게임장애 질병코드 KCD 등재 여부는 아직 확답을 주기는 힘들다는 입장이다. 통계청 관계자는 “그동안 ICD의 권고를 따르지 않은 사례는 없었던 건 사실”이라면서도 “다만 이번 개정안의 경우 양적으로 내용적으로 많은 게 변해서 검토를 마친 후 관련 부처와 기관, 협회의 의견을 들어봐야 알 수 있을 거 같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ICD에는 코드와 질병명만 있었고 크게 논란이 된 건이 없었지만 이번엔 질병의 정의가 추가됐고 논란이 되는 부분도 많아 신중한 검토를 할 계획이라는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KCD 개정은 통계법에 따라 통계청이 결정하는 것이며 단독으로 결정하지는 않고 여러 의견을 수렴한다”면서 “이번 게임장애 질병코드 등재의 경우에도 조사가 더 이루어져야 확답을 할 수 있을 거 같다”고 덧붙였다.

보건복지부가 게임장애 질병코드 국내 도입에 긍정 의사를 밝힌 가운데 문화체육관광부와 게임 업계 등에서는 반대의사를 강력히 표명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WHO의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분류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문체부 박승범 게임콘텐츠산업과장은 27일 연합뉴스를 통해  WHO의 결정에 추가로 이의를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체부는 앞서 WHO에 게임장애 질병코드 등재에 반대하는 서한을 전달한 바 있다. 

공동대책 준비위원회(공대위)는 25일 성명을 발표하고 “세계보건기구의 게임장애 질병코드 지정에 대해 강력한 유감을 표함과 동시에 국내도입을 반대한다”면서 “질병코드 지정은 UN 아동권리협약 31조에 명시된 문화적, 예술적 생활에 완전하게 참여할 수 있는 아동의 권리를 박탈하는 행위이며 미국 정신의학회의 공식 입장과 같이 아직 충분한 연구와 데이터 등 과학적 근거가 확보되지 못한 상황에서 WHO의 게임장애 질병코드 지정은 너무 성급한 판단이라 생각되며 이에 대해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공대위는 한국게임학회, 한국게임산업협회 등 협단체 53개와 대학 31개 총 84개 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국내 개별 게임 업체들은 SNS를 통해 반대 의사를 피력하고 있다. 엔씨소프트, 네오위즈는 각사의 공식 페이스북을 통해 게임이용장애의 질병코드 등재를 반대한다는 카드 뉴스를 개재했다. 카카오게임즈의 남궁훈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게임에 몰입하는 것은 현상이지 원인이 아니다”면서 “원인을 찾아야 치료할 수 있고, 게임도 제대로 이해 못 하는 정신과 의사들이 아이들과 제대로 소통할 리 없고, 제대로 치료될 리 만무하다”고 의료계를 비판 한 바 있다.

해외 게임 산업계도 WHO의 결정에 반발하고 있다. 한국게임산업협회가 포함된 전세계 게임산업협단체는 WHO 회원국들을 대상으로 ICD-11에 게임이용장애를 포함하는 결정에 대해 재고를 요청 해줄 것을 촉구하는 성명을 27일 발표했다.

국내 도입되면?

만약 ICD 개정안에 따라 게임이용장애가 국내에 질병으로 등재되면 게임과몰입자들은 의사의 진단에 따라 환자가 되고 일반 다른 질병처럼 병원에서 해당 질병병을 가지고 치료를 받게 된다. 관련 학회와 의협에서 향후 표준 진료지침을 마련할 것으로 전망된다.

게임 산업은 위축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서울대학교 산학협력단이 내놓은 ‘게임 과몰입 정책 변화에 따른 게임산업의 경제적 효과 추정’에 따르면 게임 과몰입 질병코드화로 인한 국내 게임시장 위축 규모는 2023년 1조 7796억원, 2024년 3조 1833억원, 2025년 4조 1945억원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