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십대 중반인 선배분의 얘기가 한동안 마음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건 나이든 분들의 이해되지 않는 면에 대한 불편함인 듯 했습니다.

일주일에 며칠씩 친구 분과 기원에 출근하는데, 제일 못 견디겠는 게

주변 노인들이 싸우는 거라 하네요. 안타깝다구요.

신선놀음인 바둑을 두면서 싸우는 사람들은 바둑을 둘 자격이 없다고 열을 냅니다.

그 직후, 지방에 잠시 다녀온 일이 있었습니다. 거기는 가로수가 소나무입니다.

거기서 만난 나무 박사 친구가 물었습니다.

소나무중 솔방울이 많이 달린 나무가 건강한가? 아니면 적게 달린 게 건강한 건가?

정답은 솔방울이 적게 달린 나무가 건강한 거라네요.

대로변 화단에 심긴 소나무들이 온갖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니, 빨리 자손을 퍼뜨려야겠다는 일념으로 저리 솔방울을 많이 맺게 되었다는 것. 반면 건강한 나무는 다음에도 기회가 있으니

그리 서두르지 않는 것. 문득 그 얘기를 들으니 중앙 차로 화단에 심겨진 솔방울이 많이 달린 나무가 나이든 분들 같아 보였습니다. 조급함, 성급한 마음들이 다 거기서

비롯된 건가하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작년 말 기준으로

약 78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15프로를 넘었다고 합니다.

작년 기준으로 위 노인 중 이십 프로가 홀로 살고, 십 프로가 치매 증세가 있다고 합니다.

우리 어른들이 이제까지도 쉽지 않게 넘어왔는데, 앞으로 갈 길도 만만치 않아 보입니다.

이탈리아에서는 노인 기준을 65세에서 75세로 상향하자고 논의를 한다는데,

문제는 숫자를 뒤로 물려도 우리 모두는 그 길을 가야하기에 더 생각하게 됩니다.

이렇게 여러 얘기를 듣고, 주변 상황을 살펴보니,

이건 노인 분들만의 얘기가 아니라 나이 들어가는 우리 모두의 얘기이기도 했습니다.

불편한 마음이 옅어졌습니다. 그래도 아쉬움은 남습니다.

그러다 주말 신문에서 어느 기업인의 인터뷰 기사를 보았습니다.

‘나는 뒤에서 불을 밝힌다. 내가 어두워야 리더가 빛난다’

기업에서 리더를 모시는 참모의 역할을 말한 건데, ‘리더’를 ‘자식’이나 ‘후배’로 바꾸니,

문자적으로 나이든 분들이 가져야 할 핵심 자세로 여겨졌습니다.

선배 중 한 명은 지금도 새로운 일들을 즐깁니다. 매번 만나면 과거 얘기가 아니라,

최근 겪었던 새로운 경험을 얘기해줍니다. 또 여러 분야를 공부한 팔십대의 심리학자가

나이 들어가는 것에 대한 반면교사로 얘기준 것도 관심을 끌었습니다.

나이 먹지(?) 않고, 늙어가는 것을 경계하라는 내용이었지요.

‘나이로는 노인이지만, 세상과의 상호작용은 여전히 미성숙한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계속 자신에게 초점을 맞춘다. 공감도, 사회도 알지 못한다.

다른 사람에게 가슴을 열 줄도 모른다... ‘ 내 얘기인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결국 제대로 나이 드는 것은 나이가 많은 사람들만의 얘기가 아니라, 전 인생의 과제라 생각되었습니다. 있는 그대로를 즐기되, 각 단계의 문턱에서 나이 먹는 수고를 해야 성장함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5월의 바람이 순하고 부드럽습니다. 이런 바람에 물들고 싶습니다.

바라기는 이 순하고, 부드러운 바람이 우선 내 몸에 제대로 기억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