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국내 모빌리티 업계가 사실상 무정부 상태로 빠져들고 있다. 택시업계의 강공모드에 각 진영의 분열이 벌어지며 충돌의 연속이 이어지는 가운데 정부는 사실상 손을 놓고있기 때문이다. 사태가 더 악화되기 전 정부가 어떻게든 중재자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사회적 기구 합의...전쟁의 서막
사회적 대타협 기구가 지난 3월 7일 합의안을 발표하며 카풀을 둘러싼 ICT 업계와 택시업계의 갈등은 수습단계에 접어들었다. 당시 합의안에 따르면 카풀은 출퇴근 시간으로 명시된 오전 7시에서 9시, 오후 6시에서 8시까지만 운행되며 토요일과 일요일은 물론 공휴일에는 운행을 할 수 없다. 여기에 플랫폼 택시의 상반기 출시를 비롯해 초고령 운전자 개인택시의 다양한 감차 방안을 추진하고 기사들의 처우개선을 위한 월급제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각 이해 당사자들이 적절히 합의할 수 있다는 믿음이 조심스럽게 형성되던 시기다.

그러나 합의안은 또 다른 분란의 씨앗이 됐다. 당장 ICT 업계에서는 사회적 대타협 기구에 참여한 카카오 모빌리티와 중소 카풀 스타트업의 입장이 갈렸다. 카풀 스타트업은 합의안에 명시된 카풀의 제한적 허용을 두고 이미 택시와 대리운전 플랫폼을 가진 카카오 모빌리티에 유리한 결정이라고 반발했다. 카풀은 아니지만 11인승 밴 기반의 쏘카 VCNC도 카풀 스타트업과 비슷한 목소리를 냈다. 이는 카카오 모빌리티가 전체 ICT 모빌리티 업체의 대표성을 가지지 않는다는 주장으로 이어졌다.

택시업계도 분열됐다. 법인택시 기사들은 회사를 대상으로 기사 월급제 등을 빠르게 이행하라고 촉구하는 한편, 이와 관련해 자정 활동 의지까지 보이며 대립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개인택시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사회적 기구 합의안 사각지대에 방치되며 ‘얻은 것이 없다’는 허탈함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들은 면허 시세가 하락하는 가운데 카풀의 등장 자체가 큰 위협이라는 주장을 펼치며 전방위적 공세에 나섰다.

업계에서는 사회적 기구 합의안에 나오는 3가지 화두 모두 '실패'했다고 본다. 법인택시 기사의 처우 개선은 회사와 기사들의 줄다리기가 지금까지 이어지며 결론이 나오지 않고 있고 카풀의 제한적 허용에 대해서는 풀러스 등 카풀 스타트업의 반발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합의안이 발표됐으나 이는 또 다른 고통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는 평가다.

사회적 기구 종료 후 각 업계가 분열양상을 보이는 가운데, 최근에는 개인택시 업계와 쏘카의 VCNC가 주로 충돌하고 있다. VCNC의 타다가 불법이라는 주장을 펼치며 연일 압박의 수위를 올리고 있다. 최근에는 국회, 더불어민주당사, 자유한국당사에서 실력행사에 돌입하기도 했다.

VCNC 타다는 전열을 추스리는 한편 예정했던 로드맵에 따라 비즈니스를 전개한다는 방침이다. 지난 3월 전기 자전거 일레클에 투자해 마이크로 모빌리티 시대를 준비하는 한편 타다 프리미엄을 4월 인천에서 가동했다. 서울시에서는 논란이 있었으나 최근 수습 국면으로 확인됐다. 기초체력도 탄탄해지고 있다. 쏘카의 VCNC 타다가 서비스 시작 6개월만에 회원 50만명, 차량 1000대, 1회 이상 운행 드라이버가 4300명을 확보한 장면이 눈길을 끈다. VCNC는 타다 베이직을 시작으로 다양한 사용자의 이동을 해결하고자 신규 서비스 출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실시간 호출 서비스인 타다 베이직을 시작으로 예정된 일정에 맞춰 이용 가능한 타다 에어, 타다 VIP 밴, 타다 프라이빗과 같은 사전 예약 서비스를 출시한 장면이 대표적이다.

택시와 손잡은 카카오 모빌리티의 ‘난감’
사회적 기구 합의안 도출 후 각 진영의 분열이 빠르게 벌어진 상태에서, 최근 개인택시업계의 VCNC 타다 공격은 연일 강력해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나서 이 혼란을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으나, 아직은 아무것도 정해진 바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카카오 모빌리티도 나섰다. 카카오 모빌리티와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 전국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 전국민주택시노동조합연맹 등 택시4단체는 23일 규제 혁신형 플랫폼 택시 출시 촉구를 위한 공동 성명서를 발표하며 “사회적 대타협 기구 합의 이후, 현재까지 정부와 여당 그 어느 누구도 이를 이행하기 위한 후속조치를 전혀 이행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고 포문을 열었다.

이들은 “정부는 플랫폼 택시 출시와 관련하여 어떠한 회의도 공식적으로 소집한 바 없다”고 비판하는 한편 “현재의 갈등과 불신을 화해와 상생으로 전환하고, 택시업계와 모빌리티업계가 서로 윈윈 할 수 있도록, 정부와 여당에 규제 혁신형 플랫폼 택시의 출시를 위한 여건 조성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주장했다.

카카오 모빌리티와 택시 4단체는 이번 성명서 발표를 통해 모빌리티 혁신에 나서지 않는 정부의 개입을 촉구하는 한편, 플랫폼 택시를 위한 기본적인 합의를 강조했다. 카카오 관계자는 “플랫폼 택시와 관련해서는 지속적으로 논의하고 있으나 명확한 로드맵은 나오지 않았다”면서 “지지부진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정부가 자기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여기서 카카오 모빌리티의 난감함을 보여주는 문구가 나온다. 바로 “정부 여당의 소극적인 태도로 인해 사회적 대타협 기구의 합의 정신은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으며, 불법적인 유사 택시업종의 여객운송 질서를 문란 시키는 행위는 아무런 대책 없이 방치되어 왔다”는 부분이다. 이러한 표현은 개인택시업계가 VCNC 타다를 비판할 때 즐겨 사용하는 문구다. 다음 창업자 출신인 이재웅 쏘카 대표는 친정에게 일격을 당한 셈이다.

업계에서는 카카오 모빌리티가 진심으로 VCNC 타다를 ‘불법적인 유사 택시업종의 여객운송 질서를 문란 시키는 행위’로 보지 않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카카오 모빌리티는 이번 성명서를 준비하며 해당 문구의 삭제를 주장했으나, 택시업계의 강경한 반대에 직면해 뜻을 이루지 못했다는 말이 나온다. 이는 카카오 모빌리티가 택시업계와의 협력까지는 목표를 달성했으나, 추후 협상 진행 과정에서는 주도권을 완전히 상실했음을 의미한다. 일각에서 최근 웨이고 플랫폼 택시를 두고 이견과 불만이 속출하고 있다는 말이 나오는 가운데, 카카오 모빌리티의 고민이 깊어지는 이유다.

▲ 박재욱 VCNC, 이재웅 쏘카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임형택 기자

정부, 이제 나서야
국내 모빌리티 업계가 사실상 무정부 사태로 치닫는 가운데, 정부는 아직까지 명확한 방침을 밝히지 않고 있다. 대신 개인택시업계의 비판을 받고 있는 이재웅 쏘카 대표를 비판하고 있다.

실제로 최종구 금융위원회 위원장은 22일 은행연합회 행사 후 기자들과 만나 이 대표를 겨냥한 발언을 쏟아냈다. 최 위원장은 "혁신 사업자가 택시 사업자에게 거친 언사를 하는 것은 너무 이기적"이라면서 "사회 갈등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을 같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뒤처지는 계층에 대한 보호를 어떻게 할 것이냐가 정부로선 중요하고 어려운 과제"라면서 "합의를 아직 이뤄내지 못했다고 해서 경제정책의 책임자를 향해 ‘혁신의지 부족’ 운운하는 비난을 멈추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최 위원장의 발언은 이 대표가 지난 17일 페이스북을 통해 타다에 대한 비판을 이어가는 개인택시업계를 질타한 장면과, 지난달 홍남기 경제부총리에 대한 쓴소리를 한 대목을 염두에 뒀다는 분석이다. 다만 장관급 인사가 담당 업무가 아닌 다른 영역의 인사를 두고 직설적으로 질타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에 이 대표가 반발하고, 최 위원장이 재차 반박하는 패턴이 벌어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정부의 명확한 역할론을 주문하고 있다. ‘말’로만 다양한 가능성 타진 및 모든 사람을 보다듬는 정책의 마련을 말하지 말고, 택시업계와 ICT 업계의 시너지를 위한 구체적인 액션플랜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카카오 모빌리티가 택시 4단체의 성명서와, VCNC 타다의 주장도 모두 이를 가리키고 있다. 심지어 지향하는 결과는 다르지만 택시업계도 원하고 있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상식적인 정부의 판단이 중요하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