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박기범 기자]영국의 명예혁명은 프랑스 혁명, 16세기 종교 개혁과 다르게 재미가 없다. 명예혁명의 과정이 프랑스 혁명, 종교 개혁보다 짧고, '피'도 없다. 하지만 명예혁명은 민주자본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신뢰'를 국가 저변에 자리잡게 한 점에서 의미가 있다. 

'50대 사건으로 보는 돈의 역사'는 자본의 특징으로 역사를 해석한다. 역사를 통해 독자는 자본과 그 저변에 깔린 신뢰와 기대감을 느낄 수 있다. 

16c~18c 11번의 채무불이행을 했던 프랑스와 다르게, 영국은 명예혁명 이후 채무불이행을 하지 않았다. 신뢰가 높아진 영국이란 브랜드는 영국의 국채금리 하락을 이끌었다. 특히 1755년에는 2.74%까지 떨어졌다. 20일 현재 미국 30년물 금리가 2.83%라는 점을 고려할 때 엄청나게 낮은 수준이다. 

안정적으로 자금을 조달한 영국은 전쟁을 위한 재원을 쉽게 마련했다. GDP가 2배 이상 높았던 국가와의 전쟁에서도 '실탄'싸움에서 밀리지 않은 이유는 당시 영국 시장은 '신뢰'가 녹아있었기 때문이다. 

'50대 사건으로 보는 돈의 역사'는 돈을 중심으로 보는 '통사'다. 인물 중심의 기존 스토리텔링과 다르다. 이를테면, 19C 유럽 문화·경제사의 한편에 '인구론'의 저자가 맬서스라고 기억하는 식이다. 

반면 이 책은 인구 증가와 산업혁명의 상관관계를 짚는다. 저자는 '인구 과잉'이란 공통분모가 있는 일본과 영국의 차이를 인건비에서 찾았다. 

18c 중후반 당시 에도막부(일본) 역시 담보대출 시스템이 발달했다. 채무불이행시 연공(해마다 바치던 공물)을 바치는 모습은 현재의 회생파산제도나 미래현금흐름으로 신용을 보강한 담보 대출과 구조가 비슷하다. 금융의 수준은 영국만큼 높았다. 하지만 두 국가의 인건비는 큰 차이를 보였다. 일본은 낮았고 영국은 높았다. 

일본은 낮은 인건비를 최대한 활용하는 전략을 취했다. 반면 영국은 인건비가 압도적으로 높았기에 발명의 수요가 높았다. 역설적으로 영국은 식민지로 많은 사람이 이동한 탓에 인구압이 적어 산업혁명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자본 생산성이든 노동 생산성이든 '생산성'이란 키워드 아래 역사의 사례를 종합한 저자는 '생산성 증가가 빠른 혁신 국가에 투자하라!'는 투자에 대한 지혜도 전달한다. '역사는 반복된다. 다만, 형태를 바뀔 뿐이다'는 격언을 새기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충분히 흥미로운 결론이 될 것이다. 

◆불황에는 단호하게, 버블에는 과하게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 이후 미 연방준비위원회(이하 연준)은 제로금리, 양적완화 정책을 통해 미국 경제를 불황의 늪에서 끄집어냈다. 부작용 여부는 차치하자. 이와 대조되는 행보는 1980년대 일본이었다. 

당시 일본은 2차 세계 대전 패전 이후 한국 전쟁을 틈타 높은 경제 성장을 이뤘다. 1987년 일본은 호황의 절정이었다. 1965년부터 1986년까지의 평균 PER(주가수익비율) 23.6배였으나, 1987년의 PER은 49.2배였다. 쉽게 말해 1987년 일본 주식 시장은 전과 비교해 2배 이상 고평가된 상태였다. 부동산 시장 역시 1913년부터 1990년까지 약 31배 상승했다. 

고 성장 이후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이란 꼬리표를 달고 다니고 있다. '엔고'현상은 여전한 가운데 부동산 가격은 25년간 약 50%하락했고, 닛케이지수는 1991년의 2만6500을 넘지 못하고 있다. 아베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디플레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저자는 '일본 중앙은행이 정책 금리만 200bp 이상 내렸더라면 긴 불황을 겪지 않을 것'이란 주장이 담긴 보고서 하나를 소개한다. 보고서는 200bp 이상 급격히 금리를 낮춰 시장참여자들에게 디플레이션이란 글자를 머릿속에서 지울 필요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시장 참여자들에게 심어진 디플레 기대 심리는 인플레이션과 다르게 퇴치가 힘들기 때문이다. 

또한 다소 과한 정책이더라도 단호하게 행동하는 것을 주문했다. '기대감'이 키워드다. 그렇기에 불황이 닥쳤을 때는 즉각적이고 단호한 대책이 '건전 재정'보다 효율적이라고 판단했다. 

독일이 패전국으로 발권력을 남발해 생긴 하이퍼 인플레이션과 40% 이상의 고실업을 한 번에 해결한 배경도 '금본위제 포기'란 단호한 행동에 있었다고 저자는 풀이했다. 금본위제 포기를 통해 금리 인하 및 통화 공급 확대가 가능해져 경제 회복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에 외환위기가 벌어진 이유를 금융 시장 개방하는 가운데 고정환율제도를 유지했던 지점에서 찾았다. 환율이 고정된 탓에 환율의 자동조정 기능을 잃었고, 또한 정책 금리를 탄력적으로 운영하기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이러한 환경은 '차익거래'를 발생시킬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경상수지 악화, 기업의 실적 악화 등이 겹쳐져 외국인 투자자들이 국내 시장을 대거 이탈했기 때문에 IMF구제 금융을 한국이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고 저자는 진단했다. 

한국의 사례에서는 건전 재정에 대한 집착을 버리라고 주문했다. 한국의 사례뿐만 아니라 미국의 대공황, 독일의 하이퍼인플레이션,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에서도 유사한 결론을 내렸다. 

'신뢰와 기대감'이란 추상적인 개념이다. '50대 사건으로 보는 돈의 역사'는 이 추상적인 개념을 구체화 시키고 시점 시점마다 국가의 정책을 판단하는데 자양분이 될 것이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