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커뮤니케이션을 시작했을 때 참 힘겨웠다. 커뮤니케이션이 뭔지도 몰랐고, 업무를 가르쳐줄 선배 하나 없었다. 담당 기자가 뭔지, 기자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 지에 대한 감도 없었다. 더구나 거친 경상도 억양을 딴에 부드럽게 한답시고 목에 힘을 빼고 웃음기 많은 목소리를 내어도 까칠한 반응들은 여전했다.

“메일로 자료 하나 보냈습니다만, 혹시 더 필요한 자료 있으시면 알려주십시오.”

지금이야 이런 말을 웃으면서 하지만 그때는 달랐다. 지금과 톤도 달랐다. 연락하는 기자들과 안면조차 없었다. 지금은 기자들이 어디에 사는지, 결혼을 언제 했고, 아이는 몇 살이며, 무엇을 좋아하는 지도 훤하지만 그때는 미지의 두려움의 대상일 뿐이었다.

 

잘 해서 오래 하는 것이 아니라 오래 하면 잘하게 돼

말콤 글래드웰이 그의 베스트셀러 ‘아웃라이어’를 통해 제시한 ‘1만 시간의 법칙’은 스포츠 종목이나 장인들의 어려운 기술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커뮤니케이션 분야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처음부터 넉살이 좋아서 조직 분위기에 잘 스며드는 사람도 있지만 하루 아침에 이런 요령을 쌓기는 힘들다. 오랫동안 경험이 쌓이고 시행착오를 겪어야 길이 보인다. 무슨 일이든 오래 하면 잘 하게 되는 법이다. 일을 오랫동안 할 수 있게끔 하는 동력은 성취감에서 나온다. 돈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인정 받는 성취감이다.

커뮤니케이션 담당이 하는 일 대부분은 정해진 매뉴얼이 없다. 기본적인 원칙은 있지만 조금만 더 깊이 들어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같은 일이라도 언제 어떻게 진행되느냐에 따라 여론의 칭찬을 받기도 하지만 때로는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려운 업무라고들 한다.

법률에 입각하거나 수치에 의거한 업무라면 어떠한 경우에도 결론이 명쾌하다. 기업이 대출을 받는데 담보가치가 충분해서 이자율을 낮게 적용 받는 경우 한 해 동안 절약되는 금액이 얼마인지 정도는 계산하면 딱 나온다. 법률 위반이 되는 사안인가 그렇지 않은가는 경우에 따른 판단의 차이는 그렇게 크지 않다. 하지만 커뮤니케이션의 경우는 상황에 따라서 모든 것이 달라질 수 있다.

2010년 여름 신임 대표를 모시고 기자간담회를 진행한 적이 있었다. 출입기자들이 대부분 전기 또는 전자업종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하필이면 그날 팬택에서 베가아이언 신제품을 미디어에 처음으로 선보이는 날이었다. 사전에 삼십여 명의 기자들이 참석을 약속했지만, 더 크고 화려한 행사에 참석자들을 뺏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입이 바짝바짝 말랐다. 하지만 거의 모든 출입기자들이 간담회장을 찾아주었고, 성황리에 마무리 되었다. 후일담으로 들어보니 휴대폰 신제품 발표회장에는 주로 연차가 낮은 기자들이 가고 중견급 이상의 고참 기자들은 나와의 약속을 모두 지켜주었던 감사한 사례가 있다.

첫 기자간담회 경험은 2002년엔가 있었다. 그때는 뭐가 뭔지도 모르고 지나간 행사였다. 광화문 인근의 유명 호텔에서 진행했고, 20명 정도의 기자들이 참석했던 것 같은데, 대행사 직원이 알아서 하고 나는 걸리적 거리지 않도록 옆에서 구경이나 하는 수준이었다. 종합일간지, 경제지 및 전문지 등에서 몇 명씩 기자들이 참석한 것 같은데, 대행사 직원이 참석한 사람들 숫자에 전전긍긍해 하던 기억만 어렴풋하다.

2017년 1월 중순 국내 모 완성차업체에서 야심작으로 내놓은 신형 경차의 신차발표회에서 거의 예외 없이 언론사들은 행사와 자동차에 스포트라이트를 맞췄다. 대부분 화려한 행사와 회사의 야심 찬 포부를 소개했다. 그런데 그날 퇴근길에 페이스북에 올라온 지인의 글을 보던 중 의미심장한 기사를 하나 발견했다. ‘화려한 화면 속 간부들의 발연기 ‘엇박자’’를 꼬집은 내용이었다. 바이라인을 보니 나도 익히 잘 알고 있는 취재팀장이었다.

인지도가 높지 않은 매체의 기사라서 그냥 묻힐 수도 있다. 행사에 참여한 기자들의 시각이 제 각각이니 존중한다는 생각이라면 그 또한 대범하다고 여겨질 만 하다. 하지만 행사 직후 주최측 입장에서 잔칫날 찬물을 끼얹은 이런 기사에 못내 마음이 쓰였을 것은 분명하다.

이제는 식상하게 들리는 말이지만, 많은 범죄자를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억울하게 당하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마찬가지로 잔칫날에 여러 사람이 즐겁고 배부른 것도 좋지만 행여나 배 곯는 사람이 없어야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회사 측에서 나선 발표자들이 잡스처럼 화려하고 세련된 발표를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는 매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는 기자가 있었는데도 제대로 커뮤니케이션 하지 못한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언론사도 기업이라, 기업 간의 공무겠거니 싶지만 결국 개인과 개인의 관계 요소에 좌우된다. 광고주에게는 더 신경 쓰이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 보다 관계가 우선이다. 비즈니스로 맺어진 관계의 생명은 결코 길지 않다.

예전에 수주가 제법 많았을 때는 보도자료 감이 될만한 것은 1억불 정도가 기준이었다. 회사 규모가 있었기 때문에, 그런 규모 있는 건들만 해도 심심찮게 나갔다. 그때의 영업실적은 그 전 2-3년간의 노력의 결과였지만, 회사가 어려워지자 규모 있는 수주 실적이 드물어졌다. 때문에 긍정적인 요소가 될만한 웬만한 사안이라면 박박 긁어 모아서 자료로 만들어야 했다.

 

가슴의 상처와 비지땀, 적어도 1만시간은 겪어야 돼

어느 날 그리 큰 규모의 내용은 아니었는데, 자료를 내고 보니 하필 삼성, SK, 현대차 그리고 LG에서 각각 자료들을 내놓은 날이었다. 대부분의 경제신문들은 산업면에서 톱은 삼성, 우측에 SK, 톱 하단에는 현대차 그리고 LG의 기사가 나머지 공간을 차지했다. 그런데 한 유력 경제신문에서 우측 하단에 단신으로 내가 낸 기사가 게재됐다. 지면상에서나마 재계 최상위권 기업들 틈바구니에 끼게 되어 뿌듯했다. 아침부터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고 있는 여러 후배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형, 도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형네 기사가 삼성, SK, 현대, LG랑 한 지면에 실린 거예요?”

같은 업종에 종사하고 있는 커뮤니케이션 담당자들이 인정해 주는 것에 더 뿌듯했다. 오랫동안 매체와 기자와 꾸준하게 커뮤니케이션 해 온 결과였다. 그런데 갑자기 윗선에서 전갈이 왔다. 분위기가 심상찮았다. 이유인즉슨 삼성 기사는 대문짝만했고, SK도 사진과 함께 길게 게재됐고, 다른 기사들도 규모 있게 나왔는데, 우리 뉴스는 한쪽 귀퉁이에 조그맣게 실려서 자존심 상한다는 것이었다.

뭐라 대꾸하기가 힘들었다. 그 산업면에 실린 대기업들은 연간 광고비며 홍보 예산도 대단하고 언론사에 신경 쓰는 것이 장난 아니었다. 하지만 단신 기사는 담당 기자와의 특별한 인연, 담당 데스크와 오랜 친분, 그리고 매체 관련 대소사를 가리지 않고 챙겨온 덕분에 나온 결과였는데, 성과로 인정 받기는커녕 알아주어야 할 사람들이 거꾸로 해석해서 혼쭐나기도 하는 것 또한 커뮤니케이션 경험이다.

반면 야심차게 진행한 기획건이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비참한 결과를 맞이할 때도 있었다. 한번은 유력 종합 일간지에서 당시 건설 중이던 당진 공장에 방문해서 현지 르뽀 기사를 썼다. 매체가 공 들여서 지면 하나를 통으로 채웠다. 기사는 사진과 함께 멋들어지게 나왔다. 하지만 그날이 최악의 날이 될 줄은 몰랐다. 같은 날 그 매체와 경쟁 관계에 있는 다른 유력 매체에서 우리 회사와 경쟁사를 비교 분석해서 크게 싣는 바람에 회사가 발칵 뒤집어졌다. 업계 1위였다가 금융위기로 쪼그라든 수년간의 실적비교가 표와 함께 나왔다. 

기사 내용이야 이미 다 알려질 대로 알려진 것들이었다. 문제는 굳이 경쟁사와 비교하여 기사가 나왔다는 데에 있었다. 가슴 한 켠에 또 하나의 커다란 생채기가 생긴 날이었다. 대문짝만한 기사의 성취감은 온데간데 없었다. ‘최소한의 상도의가 있어야 하는 것 아냐?’

시뻘겋게 불호령 하는 최고 경영진 앞에는 그룹의 주요 임원들도 함께였다. 강남으로 기자를 만나러 헐레벌떡 갔다 오고, 다시 신문사로 뛰어가 사정도 했다. 비지땀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1만 시간 이상을 단련해야 제대로 된 커뮤니케이터가 된다. 커뮤니케이션 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말이 있다. ‘회사가 망하면 제일 마지막에 회사 문은 사장과 커뮤니케이터가 같이 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