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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민의 미래전망] 레이와(令和) 시대 개막과 헤이세이 시대의 마지막 총리 아베 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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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두드러진 아베 총리의 광폭 행보

아베 총리의 활약이 눈부시다. 국내외를 아우르는 광폭 행보뿐 아니라, 명분과 실리를 적절히 안배해온 전략 또한 탁월하다. 1885년 12월 22일 내각제를 실시한 일본에서, 아베 총리만큼 뛰어난 역량 발휘했던 총리는 없었다. 최연소, 최장수 총리답다.

96대 64명의 총리 중에는 1, 5, 7, 10대를 역임한 이토 히로부미부터, 제2차 세계대전을 이끈 40대 도조 히데키, 패전국의 멍에를 절묘하게 극복하고 미일안보조약을 체결해낸 45대와 48-51대 요시다 시게루, 일본 비핵 3원칙으로 1974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61-63대의 사토 에이사쿠, 일본 열도개조론의 64-65대 다나카 가쿠에이, 론야스 연합으로 신보수주의를 주창한 71-73대 나카소네 야스히로, 일본 우경화의 선봉 87-89대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있지만, 아베 총리의 족적을 따를 수는 없다.

최근 보여준 활약만 봐도, 아베 총리의 활약이 얼마나 대단한지 단숨에 확인할 수 있다. 우선, 내정 관련 부분을 살펴보면, 2019년 4월 14일에는 방호복 대신 양복 차림으로 후쿠시마 원전을 방문해서 안전성을 입증하려 노력했고, 4월 16일에는 임기를 마치고 다음 달에 본국으로 돌아갈 청융화(程永華) 주일 중국대사를 관저로 초청해 오찬을 대접했다. 4월 21일 실시된 오사카와 오키나와 보궐선거를 진두지휘했다.

밖으로는 납치문제 해결과 동시에 북일 수교 달성을 위해 김정은 위원장에게 지속적으로 러브콜을 보내왔고, 영토분쟁지역인 쿠릴 열도 4개 섬 반환을 위해 러시아와 협상을 벌였으며, 일대일로를 추진하는 중국과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 중이다. 또 오는 6월 오사카에서 개최 예정인 G20 정상회담의 성공을 위해 22일부터 7일간 북미와 유럽 6개국 순방에 나섰다. 집권 8년째를 맞은 총리의 행보답지 않은 광폭 활약이다.

 

아베 총리의 활약에 가려진 레이와 시대의 개막

2019년 5월 1일, 일본은 새 시대로 접어든다. 1989년 1월 7일에 즉위한 아키히토(明仁·86) 일왕이 생전 퇴위하고, 아들 나루히토(德仁·59) 왕세자가 새 일왕으로 즉위하기 때문이다. 나루히토 일왕의 연호는 레이와. 따라서 2019년은 레이와 원년이다.

일왕의 즉위는 일본 사회에서 무엇보다 중요하다. 실질적 통치를 하지는 않아도, 일왕은 국가와 국민통합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 국민들은 일왕의 즉위를 중의원 선거를 통한 정권 교체나, 신임 총리의 취임보다 더 심도 깊게 받아들인다.

그런데 최근 일본 언론 보도를 보면, 아키히토 일왕 퇴위와 나루히토 새 일왕 즉위보다 아베 총리의 행보가 더 비중 있게 취급되는 느낌이다. 물론 북한 비핵화 관련한 동북아 정세부터 미중 무역협상과 관련된 세계 패권전쟁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향방을 결정지을 중요 사건들이 연일 발생하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긴 하다. 세계는 지금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한 1945년 8월 이후 가장 혼란한 긴장 관계 속으로 진입하고 있고, 일본 역시 그런 흐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루히토 새 일왕 즉위를 앞둔 지금, 아베 총리가 눈에 띄는 행보로 시선을 집중시키는 것은 납득하기 힘든 면이 없지 않다. 1989년부터 시작된 31년간의 헤이세이(平成) 시대가 끝나고, 레이와 시대가 새롭게 개막되는 상황이라면, 아베 총리 스스로 운신의 폭을 좁히는 것이 신하된 도리이다. 2019년 2월 24일, 도쿄 국립극장의 아키히토 일왕 재위 30주년 기념행사에서 그랬던 것처럼, 아베 총리는 일왕의 안녕을 위해 만세를 부르는 1억 2,500만 신민 중 한 명인 까닭이다.

 

1989년과 1926년, 일왕 교체기의 혼란한 정국

20세기, 2차례 일왕 즉위가 있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공교롭게 정국이 혼란했다.

우선 이번에 퇴위하는 아키히토 일왕이 즉위한 1989년. 74대 총리 다케시다 노보루(竹下登)가 6월 3일 물러났다. 1987년 11년 6일 취임한 다케시다 노보루 총리가 76명의 정치인이 관련된 리쿠르트 뇌물공여 사건이 터져 돌연 불명예 사임한 것이다.

이후 75대 총리로 지명된 우노 소스케(宇野宗佑). 1951년 정치에 입문, 방위청, 과학기술청, 행정관리청, 통상산업성, 외무성 장관을 역임한 38년 정객 우노 소스케는 미국 언론 발 게이샤 스캔들과 참의원 선거 참패의 책임을 지고 69일 만에 퇴진했다.

   
뉴시스

1989년 8월 10일, 아키히토 일왕 취임 이후 3번째 가이후 도시키(海部俊樹) 총리가 취임했다. 우노 소스케 총리의 돌발사임으로, 노동정무성, 관방성, 문무성 장관 경험이 전부인 가이후 도시키가 총리로 발탁됐다. 그리고 헤이세이 시대는 겨우 안정됐다.

아키히토 일왕의 아버지 히로히토 일왕이 즉위한 1926년 12월 25일. 일본 정국의 혼란은 1989년보다 더했다. 병색이 깊은 아버지 요시히토 일왕을 대신해서, 1921년부터 대리청정을 한 아키히토 일왕은 즉위 전에 벌써 6명의 총리와 손발을 맞췄다.

상징적 대표가 아닌 실질적 통치자 히로히토 일왕. 히로히토 일왕은 대리청정을 시작한 1921년부터 1922년 사이에도, 정통관료 출신 다카하시 고레키요(高橋是清) 총리를 일본제국 해군대장 출신 가토 도모사부로(加藤友三郞) 총리로 교체했다. 이후 4년간 4명의 총리를 교체했고, 1926년 세모 일왕으로 즉위한 뒤 4개월 만에 대장성 관료 출신 와카쓰키 레이지로(若槻禮次郞) 총리를 내리고, 일본제국 육군 대장 출신 다나카 기이치(田中義一) 총리로 올렸다. 잦은 총리 교체를 통해 왕권을 강화한 것이다.

 

레이와 시대의 개막과 아베 총리의 운신

나루히토 일왕의 취임을 앞둔 최근, 연호 레이와를 고안한 것으로 알려진 나카니시 스스무(中西進) 오사카여대 명예교수가 난데없이 일본의 군국화에 대해 경고하고 나섰다. 나카니시 교수는 2019년 4월 20일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은 종전 후 70년간 어떻게든 군국화를 막아 왔다. 군국화해선 안 된다”고 주장한 것이다.

아베 총리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알려진 레이와. 아베 총리는 “사람들이 아름답게 마음을 맞대면 문화가 태어나고 자란다는 뜻이 담겼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일본 정부는 ‘레이와’의 영어식 의미로 ‘아름다운 조화(beautiful harmony)’로 부연했다.

그런데 레이와의 전거를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단가집 만요슈(萬葉集)의 ‘初春令月 氣淑風和(새봄의 좋은 달, 기운 맑고 바람 자다)’라고 밝힌 나카니시 교수가 일본 군국화를 경고하고 나선 것이다. 왜 그랬을까? 나카니시 교수는 “전후 약 70년간 일본 국민은 자국의 군국화를 그럭저럭 막아낸 덕분에 평화를 지켜 왔지만 지금 어려운 국면이 펼쳐지고 있다”며 평화를 강조한 이유를 설명했다. 한 마디로, 아베 총리가 장기집권하면서 우경화와 군국주의 성향을 보이는 것에 대해 경계의 목소리를 낸 것이다.

레이와 시대가 개막되면, 광폭 행보의 아베 총리도 헤이세이 시대 마지막 총리라는 꼬리표를 달아야 한다. 그런데 최근 패배한 보궐선거를 보면, 여론이 아베 총리에게 우호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소비세 증세 연기와 더불어, 승산 없는 중, 참의원 동시선거설로 구석으로 몰리는 느낌이다. 아베 총리의 향후 행보가 궁금하다.

이성민 미래전략가 expert@econovill.com

기사승인 2019.04.24  10:3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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