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글로벌 부품 및 기반 인프라 업계에 변화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반도체부터 통신 네트워크 장비 시장 전반에서 기존 강자들이 시대의 흐름을 읽어내지 못하고 휘청이기 때문이다. 당장 근원적인 위협이 시작됐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탄탄대로를 달리던 거인들이 최근 상당한 위협에 직면한 것은 분명하다는 평가다. 그 중심에 삼성전자의 엔드투엔드 플랫폼 전략이 존재한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 5G 시대를 맞아 각 ICT 합종연횡이 벌어지고 있다. 출처=갈무리

기술경쟁 어려워...몸집 줄인다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수퍼 사이클(장기호황)이 종료된 가운데, 삼성전자에 이어 D램 시장 2위를 달리던 미국의 마이크론은 최근 감산결정을 내렸다.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 무너진 상태에서 D램과 낸드플래시 물량을 기존처럼 동일하게 출하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판단이다.

현재 시장 상황만 보면 당연한 선택으로 보인다. 시장조사업체 디램익스체인지는 올해 글로벌 D램 시장을 두고 전년 대비 17.5% 줄어든 약 92조4000억원으로 전망했다. 낸드플래시도 가격 하락폭이 커지며 올해 상반기 어려운 시장을 예고하고 있다. 수요와 공급이 무너지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 등에 따르면 새롭게 가동되는 300mm 웨어퍼팹만 모두 9곳이며 이는 2007년 12곳에 이어 두 번째로 최대 규모다. 공급 과잉 논란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글로벌 파운드리 3위 사업자인 글로벌파운드리(GF)도 비슷한 결정을 내렸다. 미세공정 기술경쟁이 뜨거운 가운데 최근 7나노 공정 포기를 선언하고 일부 인프라를 매각하는 수순을 밟고있기 때문이다. GF는 지난해 기준 파운드리 시장에서 점유율 50.8%로 1위를 달리는 TSMC에 이어 점유율 8.4%를 가진 3위 업체다. 삼성전자는 14.9%로 2위, UMC가 7.5%로 4위, SMIC가 5.1%로 5위다.

GF의 엑시트 행보는 뚜렷하다. 아랍에미리트 국영기업인 ATIC가 GF의 최대주주인 가운데, ATIC로 주도로 GF는 지난 1월 싱가포르 팹3E를 매각한 데 이어 최근 팹7 매각에도 나섰기 때문이다.

GF의 7나노 포기 선언은 더욱 치열해지는 기술경쟁 레이스에서 활로를 찾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판단도 주효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매각을 시도하게 됐으며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UAE 왕세제가 지난 2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직접 찾아 GF 매각을 제안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SK하이닉스에도 비슷한 제안을 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결과적으로 불발됐으나 GF가 파운드리 시장에서 사실상 철수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올해 삼성전자로부터 글로벌 전체 반도체 시장의 왕좌를 탈활할 것으로 예상되는 인텔도 마냥 평탄한 길만 걷는 것이 아니다. 5G 모뎀칩 시장에서 완전 철수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5G 인프라 자체에 대한 투자를 유지하면서 전체 시스템 반도체 시장의 장악력도 확실히 가져간다는 방침이지만, 미래 유망 먹거리 중 하나인 5G 모뎀칩을 놓치는 것은 그 자체로 뼈 아프다는 평가다.

인텔은 글로벌 시스템 반도체 시장의 강자로 군림하며 서버와 PC용 칩세트 시장을 좌우했다. 다만 통신 모뎀칩 시장에는 상대적으로 이른 1990년부터 뛰어 들었으나 퀄컴 등과의 경쟁에서 밀려 사실상 명맥을 유지하지 못했다.

▲ 인텔은 5G 시대에서 한 발 늦어졌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최진홍 기자

이런 상황에서 초기 애플 아이폰에 모뎀칩을 제공하던 인피니온을 인수하는 한편, 퀄컴과 애플의 특허분쟁까지 벌어지자 새로운 기회를 잡았다. 인피니온은 아이폰4 전 모델에 모뎀칩을 제공했던 노하우가 있으며, 퀄컴이 애플과의 계약을 끊자 인텔이 애플의 새로운 희망으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최신 아이폰에 인텔의 모뎀칩이 탑재된 이유다.

호시절은 오래가지 않았다. 애플과 퀄컴이 17일 전격적으로 분쟁을 종료했기 때문이다. 애플과 퀄컴은 두 회사의 특허 분쟁과 관련해 모든 소송을 중단하고 전격적인 합의를 이뤘다. 애플이 퀄컴에 대해 일회성으로 특허 라이선스 비용을 지불하는 한편 2년 연장 옵션의 6년 단위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합의는 4월1일 기준이다.

삼성전자의 갤럭시S10 5G 등 5G 스마트폰이 벌써 시장에 풀린 상태에서 인텔의 5G 모뎀칩은 2020년은 되어야 양산이 가능했다. 이런 상황에서 마음이 급한 애플은 퀄컴에 화해의 제스쳐를 보내며 5G 모뎀칩 수급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는 평가다. 직후 인텔은 5G 모뎀칩 개발 중단을 선언했다. 애플이라는 파트너가 사라진 상태에서 5G 모뎀칩에 집중할 동력이 사라졌다는 평가다.

통신 네트워크 장비의 강자 노키아도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미국 CNBC는 골드만삭스가 노키아의 투자 등급을 중립에서 매각으로 조정했다고 15일 보도했다. 5G 시장에서 노키아가 삼성전자와 에릭슨 등과의 경쟁에서 제대로 된 존재감을 보여주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기 때문이다. 특히 삼성전자와의 경쟁력이 위협적이다. 시장조사업체 IHS에 따르면 5G를 포함한 글로벌 통신 네트워크 시장은 2017년 기준 화웨이가 28%의 점유율로 1위를 달리고 있고, 에릭슨이 27%, 노키아가 23%, 중국 ZTE가 13%를 기록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3% 수준이다. 다만 지난해 노키아는 22%로 소폭 내려앉았고 삼성전자는 5%로 성장했다. 글로벌 통신장비 시장에서는 올해 에릭슨이 점유율 24%로 1위를 달릴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삼성전자는 21%, 노키아는 20%가 예상된다.

‘모든 것 다 가진’ 삼성전자

마이크론과 GF, 인텔, 노키아 중 당장 존폐를 걱정할 수준은 GF 외 없다. 마이크론은 여전히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강자며 인텔은 전체 반도체 업계의 일인자다. 노키아도 아직 통신 장비 네트워크 시장에서는 손에 꼽히는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다만 마이크론이 감산을 결정할 정도로 격변하는 시장에 반응하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며, 인텔도 AMD 등 많은 경쟁자들로부터 왕좌를 위협받고 있다. 노키아도 통신 네트워크 경쟁력에 최근 의문부호가 달리고 있다.

이 대목에서 삼성전자의 엔드투엔드 플랫폼 경쟁력에 주목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석권한 상태에서 파운드리와 시스템 반도체 전반으로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으며, 특히 파운드리에서는 EUV 중심의 5나노 공정 기술개발에 성공할 정도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모바일 AP인 엑시노스 시리즈도 갤럭시 인기에 힘입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아직은 도전자의 입장이지만 통신 네트워크 시장에서는 단기간에 높은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가 5G 정국으로 이어지면 기지국부터 단말기, 반도체에서 인공지능 전략을 모두 가져가고 있는 삼성전자 엔드투엔드 인프라 전략이 더욱 탄력받을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