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구가 없는 노란조끼 시위

프랑스에 대한 환상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프랑스에 가면, 안 하던 사랑도 할 것 같고, 누리지 못하던 자유도 만끽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많은 사람들은 프랑스를 찾아 나서는 이유이다. 프랑스는 유럽 관광지 1순위이다.

그런 프랑스가 요사이 환상을 깨뜨리는 생활의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5개월에 걸쳐 18차 집회까지 이어진 노란조끼 시위를 통해서, 프랑스의 경제 현실을 체감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폭력시위로 전환된 노란조끼는 약탈에, 방화도 서슴지 않는다.

잘 살아보겠다고 시작한 노란조끼 시위는 이상하게 변질되고 있다. 정권교체가 목적이라면, 5개월씩 질질 끌게 아니라 프랑스 대혁명 식으로 한바탕 뒤집어엎어야 한다. 정권 교체는 하는 둥 마는 둥 하는 주1회 집회로는 달성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그런데 노란조끼 시위를 보면, 정권교체가 목적인 것 같지도 않다. 정권교체가 목적이라면, 노란조끼 시위대는 시위에 참여하지 않는 일반 시민들을 설득해서 시위규모를 확대해야 한다. 하지만 노란조끼 시위에 대해 시민들의 시선은 냉랭하기만 하다.

그래서 노란조끼 시위는 정권교체가 목적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노동자의 권리 보장이나, 생활안정 쪽일 가능성이 높은데, 그런 목적이라면 이제는 시위 대신 대화와 타협을 선택해야 할 상황이다.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노사정 위원회 같은 범국가적 조직을 꾸린다든지 해서 시위대의 요구사항을 분명히 밝히고, 정부안을 수용해야 한다.

하지만 노란조끼 시위는 그런 모습도 아니다. 노란조끼 시위는 그냥 1주일에 1번씩 토요일에 모이는 주례행사로 변했다. 이제는 노동자들의 요구사항 개진보다는 경찰을 향해서 투석하고, 대치하는 투쟁방식이 습관처럼 자리 잡았다. 이 상태로 가다가는 노란조끼 시위는 출구도 없는 투쟁을 접을 수도 없는 상황이다. 한 마디로 답이 없다.

 

약탈과 방화가 시작되는 노란조끼 시위

2019년 3월 19일 토요일에 열린 노란조끼 18차 집회는 이제까지 해왔던 투쟁방식에서 한참 많이 벗어났다. 상점, 은행, 음식점 등이 약탈과 방화를 자행했기 때문이다. 르 몽드 등 프랑스 언론들은 프랑스 최대 번화가인 샹젤리제 거리의 유명 레스토랑과 상가 등이 복면을 쓴 일부 시위대의 습격을 받아 파손되고, 불탔다고 보도했다.

프랑스 내무부는 시위에 참가한 노란조끼를 7, 8천 명으로 추산했고, 이중 1,500명 정도를 극우, 혹은 극좌 성향의 선동분자로 규정했다. 크리스토프 카스타네르 내무장관은 집회에서 폭력사태가 빚어진 것은 “평화적인 시위대에 끼어든 전문 시위꾼들의 소행” 때문이라고 밝히며, “용인할 수 없는 행위들에 대해서는 매우 엄정하게 대처하라고 경찰에 지시했다.”고 말했다. 프랑스 경찰은 90여 명 정도를 현장에서 체포했다.

18차 집회로까지 이어진 노란조끼 시위가 폭력적 성향을 띄게 된 것은 마크롱 대통령의 대응자세에 대한 불만 때문이다. 지난 1월, 마크롱 대통령은 노란조끼 시위가 수그러들 기세를 보이지 않자, ‘국가 대토론’(Grand debat national)을 개최했다. 그리고 이로 인해서, 전국적으로 정부 주최의 토론회가 1만 건 이상 열렸다. 토론 참가 시민은 150만 명 이상이었고, 이들은 무려 1만 6천 권 분량의 요구사항을 제시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볼 때, 국가 대토론회는 프랑스 시민들의 호응을 받지 못했다. 시민들이 제시한 요구사항을 프랑스 정부가 제대로 수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가 대토론이 ‘국정 실패를 가리기 위한 술수’라고 비판하는 시민들까지도 있다.

 

노란조끼 시위 지도자 공격

그런데 2019년 3월 19일, 이번에는 색다른 상황이 발생했다. 노란조끼 시위대 지도자급 인물의 집과 차량에 노란 페인트가 뿌려진 것이다. 일명 노란 페인튼 습격이다.

노란조끼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사람이니, 집과 승용차에 노란 페인트를 뿌려서 주거지를 공개하겠다는 의도였다. 승용차 바퀴도 훼손했다. 피해 당사자는 에릭 드루에. 화물 트럭 기사인 드루에는 시위를 주도하며, 전면에서 시위대를 이끈 인물이다.

파리 근교 자택에서 봉변당한 드루에는 “나를 비난하는 익명의 편지들은 자주 받지만, 이런 일은 처음 당한다. 아주 비열한 행위”라고 비난했다. 그리고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 지난 토요일, 드루에와 대치했던 경찰은 드루에를 보호하는 입장이 되었다.

 

3월 19일 새벽, 드루에의 집에 페인트를 뿌리고, 승용차 바퀴를 훼손한 괴한들은 노란조끼 시위에 불만을 가진 사람으로 추정된다. 프랑스 현지에서는 다양한 가능성들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18차 집회에서 노란조끼 시위대에 의해 약탈과 방화 피해를 입은 샹젤리제 거리의 상인일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트럭 운전사들의 시위로 인해 손해를 입은 물류업자라는 말도 있다. 이외에도 여러 집단이 용의자로 거론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시위에서 테러로 접어든 노란조끼 시위에 대한 특정 집단의 공격도 테러 양상이라는 사실이다. 투석에 이어, 약탈 방화로까지 이어진 노란조끼 시위 지도자의 집에 폭력적 경고가 전해진 것은 향후 사태가 심상치 않게 전개될 것임을 암시한다. 정부와 시민간의 갈등이 시민과 시민간의 갈등으로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기 극복의 열쇠를 쥔 마크롱 대통령

프랑스는 지금 뒤죽박죽이다. 18차 집회까지 이어진 노란조끼 시위대와 관계없이, 매주 토요일 파리 시내 곳곳은 기후 변화 대책을 촉구하는 ‘세기의 행진’ 등 각종 환경과 복지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이들 시위의 핵심은 하나, “정부가 틀렸다.”이다.

“정부가 틀렸다.”는 말은 ‘마크롱이 틀렸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 말은 2017년 5월 8일의 프랑스 대통령 선거 제2차 투표에서 마크롱을 선택했던 프랑스 시민들 자신들의 결정이 틀렸음을 자인하는 말이기도 하다. 물론 시위에 참가한 시민들의 의견이다.

지난 2017년, 프랑스 국민들은 41살 젊은 정치인 마크롱을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경력 대부분을 기업에서 쌓은 마크롱을 선택한 것은 그만큼 새로운 프랑스에 대한 기대가 충만했기 때문이었다. 때 묻지 않은 마크롱은 다를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마크롱 대통령의 허니문은 2개월을 못 넘겼다. 마크롱 대통령은 신생정당 앙 마르슈를 창당하고, 연정 파트너 민주운동과 전체 2017년 6월 18일 치러진 프랑스 총선에서 577석 중 350석을 획득했지만, EU 잔류, 노동법 개혁, 테러 예방 조치, 경찰권 확대 등의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프랑스 시민들의 신망을 잃기 시작했다. 국민정서를 감안하지 않은 일방통행식의 권위주의적인 태도가 문제였다. 노란조끼 시위를 야기한 원인 중 하나였던 부유세 삭감 반대도 그와 같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IT전자가 중심이 되는 4차 산업 혁명의 변화에도 쉽게 적응 못하는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이 취임한 2017년에는 GDP 순위 만년 세계 6위 자리를 인도에 내주고 7위로 주저앉았다. 그리고 이제 8위 브라질과의 격차도 줄어들고 있다. 프랑스의 위기이다.

18차 노란조끼 시위가 격화된 3월 16일, 스키리조트에서 휴식을 취해 구설에 오른 마크롱 대통령. 5달째 이어진 노란조끼 시위에 대해 ‘손 놓고 있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대안 제시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어쨌든 노란조끼 시위는 프랑스 국가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치명적 요인이다. 프랑스 국민들은 지금 ‘국가의 위기는 지도자의 능력 한계로부터 시작된다.’는 말을 떠올린다. 마크롱 대통령은 위기를 어떻게 돌파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