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김승현 기자] 국내 자산유동화증권(ABS) 발행시장이 빙산의 일각만 공개된 것으로 나타났다. 빙산은 95%가 물 속에 잠겨있어 수면 위로 보이는 부분이 극히 일부다. ABS 발행시장을 빙산의 일각이라고 비유한 이유는 금융당국과 국내 신평사들이 공개한 2018년 ABS 발행규모가 어마어마한 차이를 나타냈기 때문이다. 양사의 시장 통계 차이가 시장의 투명성을 저하시킨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나이스신용평가와 한국기업평가가 공개한 2018년 국내 ABS 발행 총액은 각각 193조원, 194조8500억원으로 전년 대비(9.0%, 8.3%) 증가했다. 반면 금융감독원은 49조4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14.2%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금감원과 신평사의 ABS 발행총액이 현저한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통계에 상법상 유동화회사(SPC)를 통한 유동화를 포함하는가, 포함하지 않는가의 차이 때문이다. 금감원은 ABS 발행시장 통계에 상법상 SPC를 통한 유동화를 포함하지 않는다.

한기평에 따르면 2018년 거래건수기준 상법상 SPC의 거래 비중은 전체 ABS 발행시장의 92%를 차지하며 주류로 자리 잡았다. 즉 공시의무 부담이 없는 상법상 SPC를 통한 유동화가 대부분이며, 이를 포함하지 않는 금감원의 통계는 ABS시장의 극히 일부라는 셈이다.

나신평에 따르면 2018년 공시의무가 있는 자산유동화법상 설립된 SPC를 통해 발행된 유동화증권 금액은 41조9000억원으로 2017년 대비 12.9% 감소했다. 반면, 상법상 설립된 SPC를 통해 발행된 유동화증권 금액은 151조1000억원으로 2017년 대비 17.1% 증가했다. 한기평은 2018년 거래건수 기준으로 부동산 PF 유동화의 518건 중 508건(98.1%), CDO의 708건 중 692건(97.7%)이 상법상 유동화회사를 통해 거래된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한기평은 상법상 유동화회사가 증가한 결정적 원인으로 ‘규제 회피 목적’의 유동화거래가 상법상 유동화회사로 쏠린 점을 꼽았다. 유동화 전문회사는 감독당국의 부동산 PF ABS 발행기준 강화와 차익거래 목적의 유동화 규제 등의 영향으로 발행절차가 번거로워 회피한다는 설명이다.

한기평이 신용평가를 실시한 거래를 기준으로 집계한 신용등급 미공시 유동화 거래 현황에 따르면 2014년 이후 신용등급 미공시 자산유동화 기업어음(ABCP) 발행은 중단됐다. 반면, 미공시 유동화사채 발행은 증가했다. 규제가 강화된 ABCP와 달리 미공시 유동화사채는 증권신고서 제출의무가 없고 신용평가나 신용등급 공시에 관한 규제를 적용받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사모거래 비중이 높은 ABCP 발행시장은 현황파악이 어려운 상황이다. 한기평에 따르면 2018년에 발행된 ABCP 1313건은 전부 상법상 유동화회사를 통해 발행됐다. 더불어 2018년 ABCP 발행금액은 2017년 대비 15.4% 증가한 150조7000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전체시장의 77.3%를 차지하는 금액이다.

양승용 한기평 연구원은 “과거에는 오토론, 신용카드채권 등 소비자금융채권 유동화에서 조기상환위험을 통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ABCP 거래가 폭넓게 활용되었으나 최근에는 소비자금융채권 유동화가 침체된 상태로 유동화전문회사의 ABCP 발행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면서 “전자단기사채법 시행, 증권신고서 제출의무 강화 등 2013년 이후 시행된 CP규제 강화는 유동화회사 형태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규제가 시행된 2014년부터 자산 유동화 시장의 단기화가 나타났다. 장기 기업어음(CP) 발행 시 증권신고서를 제출해야 하는 규제를 회피하기 위해 장기 자금을 단기로 쪼개 차환 발행하는 사례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즉 규제를 회피하기 위해 단기화 현상이 나타나면서, 기업의 유동성 위험이 증가하는 모습이 나타났다.

▲ 상법상 유동화를 통해 발행된 ABCP는 전체 ABS시장의 77.3%를 차지한다.

한기평이 발표한 2012년 ABS시장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ABCP와 자산유동화전자단기사채(ABSTB) 등 유동화 증권의 만기가 짧아지는 추세를 보였다. 당시 전체 거래되는 CP 중 1년 이상 장기 CP의 비중은 30.5%를 차지했다. 그러나 규제가 시행된 같은 해 5월 이후 약 19%로 줄어들었다. 반면 증권신고서 제출 의무가 면제되는 사모 ABSTB 발행이 증가하면서 3개월 미만의 초단기 거래 비중이 ABSTB 거래 비중의 40%로 증가했다. 이는 규제를 회피하기 위해 기업이 신고서 제출 없이 3개월 단위로 잘라 차환하는 구조의 ABCP 발행을 늘렸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이에 양승용 연구원은 “미공시 유동화사채 발행 증가로 유동화 시장의 투명성 저하 등 과거 ABCP가 일으켰던 부작용과 문제점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가 존재한다”면서 “투자자, IB 등 관계자들에게 ABS시장이 거래되는 기반 등 정확하고 많은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2006년부터 상법상 유동화회사를 통한 거래를 집계 발표하고 있다”고 말했다.